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가 50% 아래로 떨어지는 흐름이 명확해졌다. 거의 모든 지역과 연령대에서 지지율 하락세가 완연하다. 근 20년간 다른 세대와 비교해 특별히 진보적 성향을 보여 왔던 지금의 40대에서만 확실한 지지세가 유지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절대적 숫자만 놓고 보면 절망적 상황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크게 요동쳤던 한국 정치의 구도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수순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다. 과거 지금의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다 탄핵 이후 더불어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계층이 빠져 나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어떻게 보면 ‘정상화’라는 거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리얼미터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민주당으로 기울어져 있던 중도층에서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섰다”고 썼다. 중도층은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정권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상대적으로 빨리 내리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렇더라도 이 국면이 ‘정상화’를 넘어 어떤 ‘위기’를 예고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경제 혹은 민생과 관련한 대목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실제 그동안 고용 관련 수치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통계 결과가 계속해서 공개된 바 있다. 경기 문제로 기반이 취약한 자영업자들이 맨 먼저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 역시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취임 초 정치적 이유로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다 경제 문제로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에서 김영삼 정권과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영삼 정권의 경제 정책은 안정화 및 시장원리 강화와 대기업 위주 경기부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문제를 키워 위기를 자초했다. 이 결과 가장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내세운 정부가 오히려 가장 친재벌적인 체제를 만들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공안통치와 노동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가 동원되었고 결과적으로 정권은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

김영삼 정권의 가장 큰 실책인 외환위기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첫 번째는 박정희 정권 이후부터 축적돼 온 체제적 위기가 적절한 방식으로 전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이 혼란 속에서 추진한 상반된 경제 정책들은 서로 충돌하며 각각의 효과를 무력화시켰다. 유지가 돼야 할 규제는 풀고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할 부분에선 개입하면서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두 번째는 정권이 위기의 순간에 미시차원에서의 관리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IMF와의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 강경식 당시 부총리를 교체해 혼란이 야기된 일 등이 그렇다. 일부 경제 관료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IMF 체제가 ‘축복’이 될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덜 파국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소화할 가능성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정권의 위기관리능력 부재는 가장 파국적 사태를 만드는 결과를 불러 오고야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알베라르 아이콘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권도 이와 같은 전례를 되풀이하게 될까? 대외환경의 변화로 당시와 같은 파국적 결과를 반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걸로 보인다. 위기가 현실이 되더라도 1997년과는 다른 형태로 닥칠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정권이 갖고 있던 한계를 이 정권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지율의 하락 추세가 이어져왔던 지난 반 년 동안 이 정권이 추진해온 정책들을 보면 혼란의 연속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효과도 분명치 않은 규제완화를 통해 대기업들의 투자 유도에 몰두하면서도 경제민주화나 사회적 대화의 틀을 실효적으로 만드는 것에는 별다른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주택자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내놓으면서도 종부세 인상안이나 금융소득 과세 등에 대해선 솜방망이(?)로 일관했다.

위기관리능력에도 의구심을 갖게 되는 사례가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충돌 구도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 구도를 조기에 정리하지 못한 대가는 정부가 일종의 아집으로 불가능한 개혁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만을 남기는 것이었다. 최근 청와대 직원들의 음주운전 등 일탈행위와 심지어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소속 직원들까지 부적절한 일에 연루된 사건 등은 위기관리능력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되고 실수를 했다면 이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계획을 다시 세우고 대안을 고안해내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보수언론이 무책임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즉, 아직 만회의 기회는 남아 있다.

그럼에도 우려가 되는 것은 전문가들이 경제나 민생 문제를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음에도 단기간에 이 대목에서 그럴듯한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진지한 대안을 준비해봐야 실제 효과를 국민들에 체감하게 되는 것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일 것이다. 그마저도 대외환경의 변화에 성과 여부가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측면도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적어도 지금의 고통은 일시적인 것이고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비전을 정권이 제시할 수 있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대로 가면 내년에도 경제 상황의 실질적 개선은 어렵고 암울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국면으로 보인다.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개혁’이다. 전임 대통령을 탄핵하고 수많은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등장한 정권이라면 당연히 개혁에 동의하는 이들과 함께 개혁적 과제들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 여당은 “이 정권에서 개혁은 핑계에 불과하고 오로지 자기들끼리 나눠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보수언론의 흑색선전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물론 이는 보수언론의 주장이 사실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스스로 개혁을 믿고 이를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질 때만 지지율의 변화 추이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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