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여성이 대다수인 방송작가들이 임신·출산에 대한 자기 선택권을 침해받고 있으며 육아와 직업 활동 양립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별칭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 이미지)는 지난 20~26일까지 방송작가 모성보호에 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포함한 총 222명(기혼 105명, 미혼 117명)의 여성 응답자가 설문에 응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작가 직종은 임신 결정에 있어 자기 선택권을 침해받고 있다. '본인이 원할 때 자유롭게 임신결정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는 응답이 70.8%(153명), '예'라는 응답이 29.2%(63명)으로 조사됐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임신결정이 자유롭지 않은 이유'로는 '임신과 일을 병행하기 힘든 높은 노동강도'가 66.1%, '휴가 및 휴직혜택 전무'가 25.3%, '임신 이후 해고 등 불이익 예상' 7%, '동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1.6% 로 나타났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 겪었던 임신·출산 관련 부당한 언사와 행위를 묻는 질문에는 "맘놓고 밤샐 수 있는 젊은 애들 쌨는데 누가 애보러 가야하는 애엄마 쓰겠냐", "(임신한 작가에게)배불러 회사다니는 거 보기 안좋다. 윗분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를 임신한 작가에게)임신은 잘 되네", "아줌마가 되더니 감이 떨어졌다", "임신하면 그만둬야지", "(밤샘 작업으로 유산을 경험한 작가에게)며칠 쉬더니 얼굴이 좋아보인다. 애는 또 금방 들어선다" 등의 답변이 줄을 이었다.

'방송작가가 경력을 이어가는데 결혼과 임신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가 55.1%, '그렇다'가 23.9%로 나타나 79%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전혀 그렇지 않다는 5.9%에 불과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이유로는 '밤낮 없는 불규칙한 노동으로 건강에 해가 될까봐'가 38.1%, '일을 멈추면 경력이 단절되어서'가 35.1%, '기혼/유자녀 작가에 대한 비선호도' 17.3%, '결혼/임신과 동시에 해고 될까바'가 9.4%로 조사됐다.

특히 '프리랜서'에 속하는 방송작가들은 출산 휴가를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임신출산을 경험한 115명의 응답자에 대해 '임신출산 휴가를 사용한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71.3%는 임신출산휴가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휴가를 썼다고 응답한 28.7% 중 62%는 출산을 위해 아예 일을 그만두었다고 응답했고, 26%는 다른 작가에게 잠시 일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무급 출산휴가를 냈다고 답했다. 유급으로 공식휴가를 받았다는 응답자는 1명에 불과했다.

출산휴가를 사용했다는 응답자를 상대로 휴가기간을 묻자 '1개월 미만'이라는 응답이 67%로 높게 나타났다. 일반 직장인들이 3개월의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받는 것과 비교하면 방송작가들의 상당수는 임신출산휴가를 쓰더라도 제대로 된 산후조리조차 하지 못한 채 업무에 복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수고용직에 해당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다. '작가들의 모성권 보호를 위해 가장 시급히 도입해야 할 제도'를 묻는 질문에 유급출산휴가, 결혼·출산시 해고되지 않을 조항, 재택근무의 공식 노동 인정, 경력단절 시기에 대한 보상, 워킹맘인증을 위한 재직증명서 발급 등이 차례로 꼽혔다. 기타의견으로는 실업급여 혜택, 강도높은 노동환경 개선 등이 제시됐다.

이미지 방송작가지부장은 "정부가 매년 저출산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프리랜서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모성보호권에는 소홀해왔다는 사실이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며 "방송작가의 94.6%가 여성이지만, 여성을 위한 모성보호제도는 전무하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방송사들은 이제라도 작가들의 모성보호권 보장을 위한 사회제도 마련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작가지부는 "최근 한국방송협회 등 방송계 7개 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에는 '독립창작자는 고용형태나 임신·출산·육아 등의 조건에 따라 임금 및 해고·면직 그 밖의 노동조건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인권 선언이 단지 보여주기식 쇼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뒤따라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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