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명승부가 펼쳐진 한일전은 그동안 양 국 축구 스타들의 등용문이 돼 왔습니다. 워낙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다보니 이 경기에서 골을 넣어 승리를 쟁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면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이기기 위해 주축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치는가 하면 의외의 선수가 맹활약해서 경기 자체를 반전시키는 사례들을 보면 참 흥미롭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73번째 한일전이 12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가운데 그동안 한일전을 빛내며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살린 태극전사들을 한 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어떤 선수가 지금까지 열린 한일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이번 한일전에서 새롭게 스타로 거듭날 만 한 또 다른 '한일전의 사나이'는 누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난 5월 한일전에서 선제골을 터트린 박지성 ⓒ연합뉴스
황선홍-이민성-차범근, 왕년의 한일전 사나이들

'한일전의 사나이'로 떠올릴 만한 선수를 꼽는다면 바로 '황새' 황선홍입니다. 일본전에서만 5골을 터트렸을 만큼 일본만 만나면 기가 살아난 플레이로 좋은 활약을 펼친 황선홍이었는데요. 골을 넣은 상황마다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새로 쓰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전에서 회심의 헤딩골과 패널티킥골로 4강행을 결정지었는가 하면 1998년 잠실에서 열린 친선전에서는 가위차기 슛으로 골을 성공시키며 온 국민을 흥분에 빠지게 만든 것이 황선홍이 한일전에서 보여준 대표적인 장면들입니다.

단 한 골이기는 하지만 정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했던 '도쿄대첩의 사나이' 이민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997년 9월,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1-1 동점 상황이던 후반 42분 통쾌한 왼발 중거리포로 일본의 골망을 시원하게 가른 그 장면은 이민성을 일약 국민적인 스타로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성실한 플레이가 보기 좋았던 이민성의 이 골은 한국 축구 역사에도 길이 남는 대단한 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차범근도 대표적인 '한일전 사나이'로 꼽힙니다. 1975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차범근은 월드컵, 올림픽 예선 등에서 일본을 상대해 꾸준하게 골을 넣으며 통산 6골로 한일전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로 현재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현재 한일전에서 6골을 넣은 선수는 1954년부터 59년까지 한일전에 나섰던 최정민과 차범근이 '유이'합니다) 또 올림픽대표 시절부터 시작해 1998년 아시안게임에서 2골을 뽑아내며 1990년대 중후반 '일본 킬러'로 각광받던 최용수, 2000년과 2003년 경기에서 골을 뽑아내며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을 상대로 2골을 기록하고 있는 안정환도 한일전 사나이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주목받던 선수들이었습니다.

새롭게 떠오를 만 한 '한일전의 사나이' 누가 있나?

그렇다면 이번 73번째 한일전에서 '한일전의 사나이'로 거듭날 만 한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요? 공교롭게 이번 엔트리에는 일본만 만나면 유독 큰 힘을 발휘했던 선수들이 대거 투입돼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경기에서 골을 넣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박주영(AS 모나코)은 이번에도 일본 골문을 정조준합니다. 당시 전반 6분 만에 골을 넣은 뒤 일본 서포터를 향해 뚫어지게 쳐다보는 세레머니를 펼쳐 눈길을 끈 '캡틴' 박지성이 이번에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를 모읍니다. 박주영도 최근 소속팀에서의 부진을 씻고 이번 일본전에서 필드골로 부진 탈출의 신호탄을 쏘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아컵에서 골을 넣은 이승렬(FC 서울)도 '차세대 일본 킬러'로 꼽히고 있습니다. 지난 달 열린 이란전에 발탁되지 못한 아쉬움을 딛고 다시 기량을 회복하며 대표팀에 재승선한 이승렬은 일본과의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조광래 감독에 확실한 눈도장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왼발의 달인' 염기훈(수원 삼성)도 지난 2008년 2월,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아컵에서 왼발 발리슛으로 골을 넣은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경기에서 맹활약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 한.일 프로축구 올스타전(조모컵 2008)에서 K-리그 최성국이 전반 첫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성국(광주 상무)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일전의 사나이'입니다. 지난 2002년 3월, 청소년대표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냈던 최성국은 이듬해 열린 U-20(20세 이하) 월드컵 16강전에서도 선제골을 기록하며 강한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이어 2008년 한-일 올스타전이었던 조모컵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며 대회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데 이어 이듬해 열린 조모컵에서도 골을 뽑아내 자존심을 살린 바 있습니다. 자신의 장기인 빠른 발과 정확한 슈팅 능력으로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한 번 기분 좋은 추억 만들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일본 J리그파들의 활약도 기대되고 있는데요. 특히 현재 J리그에서 11골을 기록하며 득점 3위에 올라있는 조영철(알비렉스 니가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에서 잇달아 골을 뽑아내며 확실한 '일본 킬러'로 일찍부터 명성을 날리고 있는 조영철은 J리그에서 뛰면서 일본 수비진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A매치 데뷔 3번째 경기 만에 골을 뽑아낼 지 관심사입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축구 한일전. 홈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10년 동안 이기지 못한 한(恨)과 2010년 한일전 전 경기 싹쓸이라는 과제를 남기고 있는 이번 한일전에서 과연 새롭게 떠오르는 '한일전의 사나이'는 누가 될 것인지 경기를 하루 앞둔 지금,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습니다. 역시 선수 시절 일본을 만나 상당한 활약을 보여줬던 조광래 감독이 경기를 지휘해서 흥미롭게 여겨지고 있는데요. 승부사 기질이 대단한 조광래 감독 아래서 더욱 독한 모습을 보여줄 태극전사들 가운데 어떤 선수가 홈팬들을 제대로 열광시킬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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