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한국 언론사의 편집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신문법 개정, 대주주 지분 소유제한, 언론사 소유 구조 변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2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편집권 독립과 신문 진흥’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현직 언론인들은 편집권 침해 실태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홍제성 연합뉴스 기자는 자사의 편집권 독립이 언론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홍제성 기자는 “타사 기자들과 데스크는 연합뉴스를 통해 뉴스 흐름을 읽고,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연합뉴스가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떻게 의제를 설정하느냐가 전체 언론사의 보도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홍제성 연합뉴스 기자, 신정원 뉴시스 기자, 장형우 서울신문 기자 (사진=미디어스)

홍제성 기자는 “그러나 연합뉴스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왔는가에 대해서는 반성할 부분이 존재한다”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연합뉴스는 정부 홍보 기사를 남발하고 불공정 보도를 일삼는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을 홍보하는 기사를 작성하고, 한명숙 전 총리 재판 기사를 불공정하게 작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연합뉴스 노조는 2012년 103일간 파업을 했고, 박정찬 당시 연합뉴스 사장의 퇴진을 이뤄냈다. 또 자사 기자들의 투표로 편집총국장을 뽑는 제도를 마련했다.

홍제성 기자는 “박근혜 정부 시기 취임한 박노황 전 사장은 취임 직후 편집총국장 제도 무력화를 시도했다”면서 “편집총국장 임면동의제를 하지 않기 위해 ‘편집국장 직무대행’이라는 꼼수를 썼고, 콘텐츠융합 상무라는 자리를 신설해 경영진이 편집권에 간섭하는 길을 열어놨다”고 지적했다. 홍제성 기자는 “이후 연합뉴스 기사는 친정부·친재벌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었다”고 강조했다.

신정원 뉴시스 기자는 “최근 뉴시스에서 (기업에) 우호적인 기사로 광고를 따내거나 불리한 기사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엿 바꿔먹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정원 기자는 “기업에 비판적인 시리즈를 기획해 광고비를 유인하는 사례도 발견됐다”면서 “일부 데스크는 실적 부담 때문에 돈벌이에 치중한다는 내부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8월 뉴시스의 염 모 부국장은 광주광역시의 한 제조업체 대표로부터 기사 게재 중단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법원은 염 모 부국장에게 징역 8월과 추징금 85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신정원 기자는 “언론사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 인식 때문에 발생한 참극”이라고 평가했다.(관련기사 ▶ 검찰, 뉴시스 부국장에 구속영장 청구)

신정원 기자는 “뉴시스의 단체협약서에 편집권 독립 및 공정 보도에 관한 규정이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 됐다”면서 “편집국장 임면동의제 도입 요구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신정원 기자는 “경영진이 노동조합이나 내부 자정 기능을 무시하는 경우에는 (편집권 독립 쟁취에)한계가 있다”면서 “(편집권 독립을)강제할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편집권 독립과 신문 진흥’ 정책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장형우 서울신문 기자는 언론사 소유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서울신문의 지분은 기획재정부·포스코·KBS 등 정부 우호지분이 61%, 우리사주조합이 39%를 가지고 있다.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장형우 기자는 “정부 소유 지분이 61%이기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는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사람을 서울신문 사장으로 가게 하고 편집권을 장악하려 들었다”고 밝혔다.

장형우 기자는 “서울신문은 4대강 등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비판보다는 옹호 기사를 썼고 정권의 코드를 맞추기 위한 사정 수사에 대해선 무비판 경마 중계식 보도를 했다”고 말했다. 장형우 기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는 기자들의 취재 활동을 막았다”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사내에서) 나오자 ‘헌법 기관을 수호해야 한다’는 변명을 했다”고 지적했다.

장형우 기자는 “현재 정부는 착한 정부라고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사장이나 정권이 (서울신문에) 지시를 안 해도 편집국 내부에서 자기검열을 하고 ‘알아서 기는’ 느낌이 있다”고 밝혔다. 장형우 기자는 “서울신문 내부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편집권 독립은)필요하다”면서 “내부의 약속이나 노사 간 협의로 (편집권 독립이)안 된다면 (법으로)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신문법상 편집자율권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하고 ▲신문 대주주의 소유제한에 관한 규정 신설하고 ▲편집인의 개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봉현 위원은 “현행 신문법은 ‘편집인의 자율적 편집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자율적 편집의 개념이 모호하다”면서 “편집자율권 확대의 요건인 신문 대주주의 소유제한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봉현 위원은 “편집인이란 용어 또한 모호하다”면서 “신문사 사장이 편집인을 겸하는 경우 발행과 편집의 동일시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봉현 위원은 “이는 (사주가) 경영권과 편집권을 일체화하고 상하 종속관계를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면서 “편집인이라는 명칭을 폐지하고 편집국장에 관한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왼쪽부터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윤석빈 전국언론노동조합 특임부위원장 (사진=미디어스)

윤석빈 전국언론노동조합 특임부위원장은 “정부가 언론에 무조건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비판했다. 윤석빈 부위원장은 “최근 한국신문협회와 일부 정치인은 ‘신문은 공공재이니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하지만 민간기업이니 규제를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서 “하지만 언론이니까 무조건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윤석빈 부위원장은 “단순히 언론사로서 지원을 주장하기보다 먼저 좋은 언론이 되어야 한다”면서 “좋은 언론에 대해서만 정부의 지원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빈 부위원장은 “단지 발행 부수가 더 많다는 것만으로 좋은 언론이 될 순 없다”면서 “이제 신문법은 더 많은 지원금을 만들고, 이를 좋은 언론에 주기 위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대광 경향신문 기자는 “신문을 비롯한 언론 산업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제도화될 경우 국민의 세금이 특정 사주에 흘러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치밀하고 전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대광 기자는 “국내 몇몇 언론사에서 실현되고 있는 우리사주조합이나 국민 주주 형태는 독립성 보장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서 “재단법인 형태로 (언론사를)한정하는 것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편집권 독립과 신문 진흥’ 정책토론회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외래교수가 사회를,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윤석빈 전국언론노동조합 특임부위원장이 발표를 맡았다. 토론자로는 홍제성 연합뉴스 기자, 신정원 뉴시스 기자, 장형우 서울신문 기자, 이승환 경남도민일보 기자, 한대광 경향신문 기자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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