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히 다릅니다. 주제가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참여했던 이들의 규모가 다르고 달성을 위한 과정이, 도전을 위해 투여한 시간이, 구성과 편집이, 무엇보다도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모델 장윤주를 비롯한 패션업계 종사자들과 함께 달력모델 콘테스트를 차용한 2010년 달력특집을 진행하고 있는 무한도전과 음악 감독 박칼린의 사람들과 더불어 남격 합창단을 구성해서 8주간의 하모니 특집을 훌륭하게 완료한 남자의 자격은 이렇게 닮은 것이라곤 별반 보이지 않는 다른 소재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이 두 프로젝트는 묘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전문가들의 도움과 참여로 그들을 멘토로 삼아 성장을 거듭하며 최종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출연진들은 외부 전문가인 장윤주와 박칼린에게 메인 MC의 자리를 양보하고 그들이 제시하는 주제와 방향에 맞추어 과제를 수행해 나갑니다. 그 결과물이 한 장의 멋진 사진이 되었든, 하나의 울림으로 다듬어진 하모니가 되었든 멤버들은 한 사람의 도전자로서 가르침에 충실하게 따르며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달력특집과 하모니 편에서 운전을 위한 방향키는 멤버들의 손에 잡혀있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유사한 구성의 특집에서 무한도전과 남자의 자격의 사람들은, 그리고 멘토이자 메인MC의 자리에 등극한 박칼린과 장윤주는 각자의 역할과 수행 방식에서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무한도전은 장윤주를 그들의 일원으로 편입시켜 버린 반면, 남자의 자격은 박칼린과 합창단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으니까요. 이 차이는 단순히 개인의 매력과 자질, 영향력과 도전의 차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 그것이 매주 도전 주제가 바뀌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이 두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무한도전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중심에 멤버들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습니다. 어떤, 무슨 과제를 수행하든 간에 외부의 참가자들은 무도의 일원으로, 도우미로 참여할 뿐 그 내용은 매번 과제를 수행하는 멤버들의 캐릭터에 따라 변화하고 무한도전 식으로 변형됩니다. 확고한 자신의 틀을 가지고 이들 전문가들을 무도의 세계에 초대해서 함께 즐기고 나누는 것이죠. 스포츠 댄스 때도, 에어로빅 도전 때도, 봅슬레이나 최근의 프로레슬링 특집에서도 기타 유사한 여러 장기 프로젝트에서도 무한도전은 무한도전이었고 참가한 전문가 집단들도 그런 분위기에 젖어들어 때로는 망가지고 희화화되면서도 기꺼이 그 파티를 즐겼습니다. 매번 선생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달력특집에서도 역시 최고의 모델인 장윤주 역시도 연극에서 발연기를 펼치며 미숙하지만 유쾌한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냈죠.

반면 남자의 자격은 매번 도전 때마다 멤버들의 모습을 살짝 뒤에 숨기면서 그 공백에 일반인을, 혹은 전문가들의 아우라를 살짝 덧입힙니다. 하모니 편에서 박칼린과 합창단원들이 그토록 주목받고 아직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정작 그 성공은 남자의 자격 멤버들과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철저하게 하모니 편에서 도전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참가자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한정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모니편의 주인공은 남격의 아저씨들이 아니라 박칼린 개인과 배다해를 비롯한 합창단원이었어요. 그것은 이번 초심찾기 특집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무언가 해야 할 일들이 제시되고 수행하지만 그 속에는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의 노고가, 부활 초심 밴드의 아저씨들의 열정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개콘의 개그맨들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외부 참가자들이 없는 경우에도 틈틈이 일반인들의 경험과 체험이 슬그머니 겹쳐지죠. 남자의 자격에서 어떤 주제가 되었든 온전하게 기존 멤버들만이 부각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이것은 그만큼 남자의 자격이 서있는 토대가 아직 확고하지 않는, 혹은 유연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이 비워놓은 빈자리에 박칼린 같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이가 등장하는 경우 프로그램 자체가 순식간에 먹혀버리고 마는 것이죠. 엄밀히 말하자면 하모니 편의 남자의 자격은 그전의 여러 도전들과는 전혀 다른, 그것 하나만 뚝 떨어뜨려 독립편성을 시켜도 어색하지 않은 이질적인 시간이었습니다. 하모니 편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환호와 현재 남자의 자격간의 연결점은 별로 없어요. 그렇기에 초심 특집을 통해 처음 그때로 돌아가자는 이들의 시도는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도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멋진 선생님, 박칼린의 매혹적인 마법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멤버들 자체의 출발점을 돌아보고 그들의 매력을 회복하는 쉼표가 필요했으니까요.

반면 최고의 모델을 발연기 연기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누구와 함께 하든지 능숙하게 무한도전화 시켜버리는 김태호 월드의 견고함과 노련함은 남자의 자격의 미숙하고 서투른 모습과 비교되긴 하지만, 동시에 남격이 가진 일반화의 매력을 앗아가 버립니다. 이젠 무한도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알아야할, 그들의 도전에 참여하기 위해서 넘어야할 은근한 심리적인 장벽이 은연 중에 존재한다는 것이죠. 매번 특집을 통해 일상의 작은 깨달음을 시청자들과 공유하며 멤버들이 비워놓은 자리에 함께 하자며 권유하는 남자의 자격과는 달리, 무한도전은 7명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고, 그 과정이 주는 감동과 깨알 같은 재미를 안겨주면서 시청자들을 그들의 식구, 동반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강력하고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쉽고 편하게 즐기기에는 다소 어려운 코드를 포함하고 있어요. 몰라도 재미있지만 알면 훨씬 더 즐거운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깊이와 완성도는 이런 다소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게 달력특집과 하모니 편이, 장윤주와 박칼린의 프로그램 속에서 역할과 모습의 차이가 주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매주 다른 주제를 가지고 내용을 진행하는 유사한 포맷의 방송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이 추구하는 지향하는 목표와 주제들 대하는 방식, 그들의 경험과 완성도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는 것이에요.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구성을 이렇게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나더군요. 그러니 우린 이 잘 짜여진 프로그램의 각기 다른 매력과 재미를 누리며 그 발전을 지켜보면 그만입니다. 평균이하 사람들의 무한한 도전, 중년 아저씨들의 일상 속 새로운 경험하기는 모두 놓치기 힘든 매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시청률이 어떠하든, 대중적인 인기가 얼마나 되었든 간에 저에게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의 최고의 예능방송은 이 두 프로그램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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