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 논란을 보고 있자면 좀 서글퍼진다. 입씨름에 가까운 이런 논란이 정치의 영역에서 공론장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이른바 ‘혜경궁 김씨’ 트위터에 올라왔다는 글들을 보면 이건 정치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적 문제(?)에 가까운 걸로 보인다. 쓴 사람이 누구든 간에 제대로 된 윤리관을 갖춘 사람이 쓴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현들이다.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왔지만, 경찰이 이재명 도지사의 배우자 김혜경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를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문제의 계정 이용자는 역시 김혜경 씨 본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진실은 수사와 재판까지 다 끝나야 밝혀질 것인데 이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나름의 결론을 미리 판단할 수밖에 없다(사실 지리한 재판 과정까지 거쳐 결론이 나더라도 이재명 도지사는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라면 정치적으로 승복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다).

하여간 사태가 이렇게 되자 정신적 문제는 다시 정치적 문제로 환원되었다. 이재명 도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 문제를 다시 언급하면서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도지사 측의 주장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을 판단하려면 대상 자체가 허위사실이 맞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에 관한 형식의 외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실제 내용은 결국 이 문제를 권력쟁투의 틀로 가져가겠다는 포석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도지사는 경찰의 판단에 대해서도 “경찰이 권력을 택했다”는 등의 표현을 써온 바 있다. 이번 사건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자신을 정치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기획된 음모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는 암시를 한 것이다. 이재명 도지사의 이런 주장은 지금까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임종석 비서실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연관된 사건을 놓고 청와대와 틈을 벌리려 애를 써온 보수세력들의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효과를 더 강화시켜주는 것 같다. 당장 중앙일보 등이 과감한 해석이 담긴 기사를 내놓고 있는 배경에도 이러한 의도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도지사의 이런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재명 도지사를 증오해 온 지지자들은 제명이나 출당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해찬 대표는 당장 이 사건에 대한 조치를 내리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를 두고 이재명 도지사의 출당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해찬 대표가 이재명 도지사와 정치적 특수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중앙일보 등이 여기에 또 맞장구를 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집무실로 들어가며 검찰의 압수수색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라는 것은 원래 기만적인 것이니 그런 측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판단은 나중에 하더라도 이해찬 대표의 고민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해찬 대표는 연일 ‘20년 집권론’을 내세우며 장기집권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재명 도지사에 대한 신중한 접근도 이러한 판단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을까 한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초기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재집권은 기정사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전임 정부의 파탄, 대통령과 여당이 누리는 높은 인기, 풍부한 차기 대권주자 존재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은 어떤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강도가 약화된 게 사실이지만 비교적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임 정부의 파탄에 대한 기억은 이 정부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가려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기 대권주자와 관련해선 어떻게 봐도 다소 암울해진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해찬 대표로서는 크게 두 가지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첫째는 싫든 좋든 이재명 도지사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힘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심증이 넘쳐나더라도 혐의가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시점에 이재명 도지사를 정치적으로 ‘정리’하기는 부담이 있다. 당적이 없어진 이재명 도지사가 집권당과 대통령을 어떤 방식으로 공격하며 부담을 가중시킬지는 장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둘째로 이재명 도지사의 제명이나 출당 조치 등을 허용할 경우 지지층이 분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단결된 지지를 총선까지 이어가 국회 다수파를 점하도록 하고 이를 근거로 해서 정권재창출까지 모색한다는 이해찬 대표의 ‘20년 집권’ 구상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사실 이 정권의 주류 세력이 선거-정치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는 지난 대선 기간에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절대로 유리한 조건 형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어설프게 명분을 내세우다 실리를 놓치는 일 같은 것은 안 하는 거다. 그게 이 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이 불충분한 수준에서 봉합되고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유이다.

‘혜경궁 김씨’ 트위터 논란 자체가 다수 국민에게 의미를 가지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일 것 같다.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극단적 표현들, 특히 세월호 참사 관련 글들은 정치의 언어로서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거짓 해명으로 유권자를 기만하는 정치인은 우리 정치가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권력 지형 변동에 관한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이해찬 대표의 ‘20년 집권론’이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있다. 물론 이해찬 대표가 말하듯 사회의 근본적 매커니즘을 바꾸기 위해서 특정 정치세력의 장기집권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정치세력이 명확한 개혁의 의지를 갖고 있고 이를 지지자들에게 설득하는 데 성공할 때에야 가능하다.

즉, 개혁을 꿈꾸고 실제로 추진하는 20년 집권이 될 때에만 이 주장이 정당화되고 또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개혁을 추진하다 보면 그에 어울리는 차기 대권주자가 또 만들어질 수 있다. 어떤 개인들의 운명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개혁의 과제를 틀어쥐고 큰 걸음으로 나아가는 집권세력의 모습을 좀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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