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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소녀’- 각자의 욕망 속으로 ‘사라져버린’ 소녀 실종사건, 그 속에 숨어든 진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11.26 18:26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위험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이것은 사실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 
                                       -이승우, <모르는 사람들> 중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단순히 맹목적 소비가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이들의 '불순한 음모'에 대한 의심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 때문에 '가짜'가 만들어지는가? 그에 대한 생각을 <안개 속 소녀>를 통해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소녀가 사라졌다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 이미지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외딴 마을, 크리스마스를 앞둔 며칠 전 소녀 애나 루가 사라졌다. 흔한 10대들의 가출? 하지만 부모들은 순종적이며 성실했던 딸이 그럴 리가 없단다. 결국 돌아오지 않는 소녀, 마을 경찰들은 수사를 시작하는데 이곳에 형사 보겔(토니 세르빌로 분)과 젊은 형사가 합류한다. 

이른바 '큰' 사건에 대한 감이 남다른 보겔은 이 외딴 마을의 사건에서 전 국민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 냄새를 맡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자신을 이런 외딴 마을의 사건이나 맡도록 만들었던 기차역 폭파 사건의 오욕을 만회하기 위해 소녀 실종사건의 사이즈를 키우려 '언론'을 부추긴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없이 조만간 문을 닫을 거라는 식당 주인에게 했던 보겔의 장담대로, 아니 그가 언론과 세상에 던져주는 '편집'된 사건에 맞춰 외딴 마을은 북적인다. 어머니의 슬픔은 전 국민의 슬픔이 되어 애나의 집 앞에는 애나의 귀환을 바라는 촛불들이 줄을 서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심에 부응할 만한 또 다른 먹잇감, '용의자'가 필요하다 생각했던 보겔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소년의 카메라에서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특정해내 은밀한 척 언론에 흘린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집 창문 밖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폭죽처럼 터진다. 언론은 우리 언론이 가십을 다루는 예의 방식으로 용의자의 신변을 낱낱이 까발린다. 

무엇이 중한디? 사라진 소녀보다 각자의 욕망이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 이미지

안개에 뒤덮인 마을, 그 스산한 배경만으로도 충분히 '미스터리'했던 영화는 하지만 보겔의 등장과 함께 미스터리보다 더 미스터리한 ‘욕망의 용광로’로 변화된다. 

노회하면서도 예리한 형사 보겔. 그가 사건을 진두지휘하면서 소녀의 실종사건은 전혀 다른 각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사건의 진실이 궁금한 관객과 마치 실랑이를 벌이듯 그는 과연 '수사'를 하는 것인지, 이 오지로 밀려난 자신의 ‘한풀이’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보겔만이 아니다. 그의 초빙으로 달려온 베테랑 여기자를 비롯한 언론들도, 그런 보겔을 물먹였다는 변호사도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먼저이다. 심지어 영화 후반부에 결정적인 단서를 들고 나타난, 나이든 여기자의 진심조차 의심스럽다. 그녀가 원하는 건 진실일까? 역시나 보겔과 같은 명예회복일까? 그런 상황에서 외려 용의자로 특정된 가난한 가장의 처지가 안타까울 지경이고,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정신과 상담을 해온 플로레스(장 르노 분)가 '객관적'이어 보인다.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 이미지

그런 의미에서 증오가 중심이었던 과거의 사건과 달리, 오늘날의 사건들이 '돈과 욕망'이라는 마티니 교수(아레시오 보니 분)의 강의는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주제에 가장 가닿는다. 결국 사건의 수사, 소녀의 실종보다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널뛰던 인물들의 욕망은 그것으로 인해 주인공들을 함정으로 밀어 넣고, 사건의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아니 그들의 욕망은 정확하게 또 다른 욕망의 낚시밥이 된다. 

소녀의 가방은 돌아왔지만, 결국 소녀는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과연 그녀를, 아니 그녀의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 건 영리한 범인 때문이었을까? 저마다의 욕망에 춤추던 한 편의 쇼와도 같았던 수사 때문이었을까? 

<안개 속 소녀>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범죄심리학자 도나토 카리시의 베스트셀러 <속삭이는 자>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출간 즉시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600만부가 팔린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 움베르토 에코, 존 그리샴 등이 수상한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었고, 그 여세를 몰아 이 작품의 감독으로 데뷔했다. 

영화 <안개 속 소녀> 포스터

영화는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듯, 128분의 런닝타임 동안 줄곧 모호한 안개 속에서 그보다 더 의뭉스러운 인간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고심한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스토리로 치자면 <너를 기억해>와 비교되며, 뜻밖의 반전은 거의 <유주얼 서스펙트>급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이탈리아' 영화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 뜻밖의 아이러니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끈기를 가지고 진득하게 128분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단 의미이다. 애초에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처럼 썼다는 도나토 카리시. 과연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어, 스타 감독이 될 수 있을까? '이탈리아 미스터리'에 대한 우리 관객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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