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앞 바다에서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한 60대 어민이 음독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10일 오전 8시10분께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이모씨 집에서 이씨가 신음하고 있는 것을 아들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기름유출 사고로 인한 절망과 ‘생활고’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 어민의 죽음이지만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60대 한 어민의 단순 자살사건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현지 주민들의 ‘상황’이 어떤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한겨레 1월11일자 12면.
피해지역 어민의 상황 상징적으로 보여준 죽음 … 언론은 ‘외면’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이후 대다수 언론은 피해규모나 사태의 심각성에만 주목했을 뿐 이번 사고의 원인과 책임규명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자원봉사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는 식이거나 아니면 태안이 다시 살아난다는 식의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자원봉사는 아름답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피해와 절망적인 삶이 이런 손길과 정신만으로 회복되기는 어렵다.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의 손길 못지않게 구체적인 피해보상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역할을 담당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언론이다. 하지만 정작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음독자살한 60대 어민의 죽음과 관련해 정부나 삼성중공업 못지 않게 언론 또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60대 어민의 죽음은 대다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0일 방송3사 메인뉴스를 비롯해 11일 대다수 신문들도 이 사안 자체를 다루지 않았다. 이 사안만 다루지 않은 게 아니라 피해지역 어민들이 삼성중공업을 항의 방문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요구사안을 전달한 사실 역시 보도하지 않았다.

▲ 한겨레 1월11일자 12면.
60대 어민의 음독자살과 피해지역 어민들의 삼성중공업 항의방문. 죽음과 항의방문이라는 두 가지 사안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정서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이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 말은 언론이 당연히 주목을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언론은 ‘대놓고’ 이 사안들을 무시했다.

피해지역 주민들, 삼성중공업 항의방문 … 언론 ‘침묵’

▲ 국민일보 1월11일자 2면.
“건국 이래 최악의 바다 재앙을 일으킨 삼성이 지금까지 피해 어업인들에게 한마디 위로나 사과의 말도 없이 그저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 어민들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피해지역 어민들이 삼성중공업을 항의방문하면서 주장한 발언이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방문한 이들 주민들은 △기름유출 사고 피해지역의 지원대상 범위 확대 △손해배상 전 영세 어업인에 생계비 지원 △어항 개발 등 피해지역 개발대책 등을 담은 건의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의 주된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이천 화재사건 보상문제는 적극적으로 보도 … 문제는 결국 삼성인가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경기도 이천 화재와 관련한 유가족 보상문제는 언론이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상을 두고 난항을 겪고 있다는 ‘상황’은 기름유출 사고나 이천 화재사건이나 똑같은데, 언론의 비중과 주목도는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차이는 단 하나다. 이천 화재사건은 코리아냉동이라는 회사이고 기름유출은 삼성중공업이라는 점. 같은 다섯 글자지만 언론의 ‘대접’은 상상을 초월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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