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인순이와 착한 상우는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2007년을 빛낸 드라마로 손색이 없는 KBS 2TV <인순이는 예쁘다>(정유경 극본, 표민수 연출)는 이렇게 끝났다.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마침표를 찍은, 참으로 예쁜, 그래서 착한 여자 인순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유명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 드라마였다.

<인순이는 예쁘다>는 '여고생이 우발적 사고로 살인 전과자가 된다'는 이야기 출발점의 법적 타당성은 다소 부족하지만, 전과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그럴 듯하게 묘사하면서 극적 개연성을 확보함으로써 단순한 트랜디드라마에서 벗어나 적잖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김인순(김현주 분)'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와 살면서도 밝고 명랑하게 자란다. 하지만 고교 시절 과실치사로 친구를 죽이게 되고, 그래서 수감 생활을 하고 나와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그런 인순이가 '어머니(나영희 분)'를 만나고, 어린 시절 첫사랑인 '유상우(김민준 분)'와 함께 우리 사회의 편견을 치유해가는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최악의 조건을 가졌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기를 믿어준 고교 시절의 담임선생님이 가르쳐 준 주문 "인순이는 예쁘다"를 되뇌이면서 세상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어느새 인순이가 사랑스러워지고, 또 그런 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난 사랑스럽고 예쁘고 훌륭해. 난 특별한 존재야. 난 선택받았어!"라는, 중독성 강한 인순이의 주문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아무리 사랑스럽고 훌륭한 존재라 하더라도 '전과자'라는 사회적 낙인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이 현실이다. 오랜 수감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인순이를 반기는 것은 냉정한 사회적 시선뿐이다. 어머니조차 연극배우라는 자신의 유명세에 흠집이 생길까 두려워 딸의 존재를 숨길 정도이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인순이는 죽음을 결심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살을 결심한 인순이가 엉뚱하게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하면서 졸지에 '지하철녀'로 불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인순이는 이렇게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된다.

스타는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킬 대상을 찾아 나선 대중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스타는 유통 기한이 짧은 이미지 과잉 시대의 영웅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인순이는 바로 끊임없이 '화제 거리'를 찾는 대중의 시선에 포착된 허상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라디오 생방송 중의 실수가 '순수함'으로 포장되었다가 주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시선들'이 찾아낸 정보(인순이는 살인 전과자이다)에 의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시 주목받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냄비 근성을 잘 보여준다. 온전히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혼란에 빠졌던 인순이는 자신이 외우는 주문처럼 '사랑스럽고 예쁘고 훌륭하며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자기 자리를 찾는다. 물론, 우리 사회의 지극히 평범한 남자의 시선을 대변했던 어릴 적 친구 상우와 더불어….

▲ KBS <인순이는 예쁘다> 제작발표회에서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표민수 PD와 배우들 ⓒKBS
누군가의 자식이자 형제이며 부모이고, 또 누군가의 친구이자 선후배라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자신을 흔드는 것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해타산에 민감한 우리 사회에서 인순이와 상우의 사랑 이야기가 동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같은 점 때문에 <인순이는 예쁘다>는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담백하게 보여준, 참 예쁘고 착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순이는 예쁘다>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참 예쁘고 착한 드라마였다. 표민수 PD의 감각적인 연출 덕분이다. 표민수 PD는 극적 개연성 없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난무하는 우리 드라마 풍토에서 꿋꿋하게 삶의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연출자이다. <인순이는 예쁘다>에서도 이런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순이가 어릴 때 헤어진 상우를 우연히 다시 만나 '선생님'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을 자백하는 장면, 인순이의 선생님에 대한 편견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상우의 말을 대사와 음악을 적절히 활용하여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장면, 사회적 편견 때문에 괴로워하던 인순이가 자살을 생각하면서 "누구도 찾지 않고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영원히 사라지기로 했다"라고 독백할 때 주변 풍경을 흑백으로 처리하고 인순이만 칼라로 보여준 장면 등은 표민수 PD의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런 점에서 <인순이는 예쁘다>는 규모만 크고 실속이 없어 진정성을 느끼기 힘든 블록버스터 드라마들과는 질적으로 차별화된다.

드라마는 끝났는데, 고모에게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를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며 방황하다가 어머니가 연기하는 연극 공연장을 찾아가 "갈 곳 없는 내 신발, 이 자식이 저지른 짓이다"라고 말하는 인순이의 독백이 아직도 귓가에 어른거린다. 이름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만 살인 전과자라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앞서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다가 찾아간 공연장 앞에서 뜬금없이 자기 신발을 타박하는 장면에서 인순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유경 작가와 표민수 PD의 감각이 돋보인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방송사 기자 상우나 사회적 시선만 신경 쓰는 연극배우 어머니가 전과자 인순이를 통해 진짜 사랑의 힘을 깨우치면서 속물근성을 버리고 참된 사람이 되면서 '사람'과 '사랑'의 진정성을 보여준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는 끝났지만, 우리 사회의 편견은 여전히 견고하기에 '인순이'는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 옆에서 조용히 주문을 외운다. "난 사랑스럽고 예쁘고 훌륭해. 난 특별한 존재야. 난 선택받았어!"라고…. 힘들 때마다 들려오던, "인순아!"라는 상우의 말에 다시 용기를 얻고 씩씩하게 자기 길을 걸어간 인순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석진아!"라고….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