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자신의 조카를 부정 채용하고, 돈을 받고 연봉계약직 직원을 채용하고, 정기적으로 부하 직원에게 금품을 상납받은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일까?

경찰서? 법원? 그것도 아니면 감옥? 하지만 상식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 회사 자체 감사를 통해 위와 같은 비리가 사실로 밝혀지고도 멀쩡히 회사 잘 다니는 사람이 있다. 아니, 도대체 어떤 회사냐고? 바로 '공영방송' KBS다.

KBS 안전관리팀 비리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이는 바로 최우식 안전관리팀장이다. 안전관리팀 비리와 관련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그는 지난해 KBS 특별감사에서 조카 부정채용, 금품수수, 화염병투척사건 조작 등의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돼 '파면'을 요구받은 바 있다. 당시 비리 핵심 연루자들도 파면, 감봉 등 중징계를 요구받았다.

▲ 5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디어행동은 9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안전관리팀 최우식 팀장을 비롯한 9명에 대해 배임수재, 업무상 배임, 업무방해,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곽상아
하지만 김인규 사장 취임 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감사팀이 전폭 교체된 이후 최 팀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모씨가 감사를 진두지휘했고, 그 결과 최 팀장의 '파면'은 '감봉 1개월'로 대폭 낮아졌다. 다른 비리 연루자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게 됐다.

1,2차 감사 결과가 확연히 다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KBS는 시민사회의 감사자료 공개 요청을 거부했으며, 감사 내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별다른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KBS가 안전관리팀 비리를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관련기사: KBS, '안전관리팀 비리' 감사 결과 왜 뒤집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KBS 사내 게시판을 통해 "2차 감사에서 거짓증언을 강요받았다"고 양심선언을 한 이가 있다. 바로 김원태 안전관리팀 직원.(▷관련기사: KBS 안전관리팀 직원 "거짓증언 강요받았다")

88년에 입사한 김씨는 7일 <미디어스>와 만나 "최 팀장은 업적도 많고 성실해서, 청경들 사이에서 대단한 리더로 꼽혔으나 어느 순간부터 부패가 시작됐다"며 "2차 감사는 애당초 이 문제를 덮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적 비리가 일거에 없어지리라 기대하지는 않으나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양심선언을 하게 됐다"며 시종일관 진지하게 안전관리팀 비리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말하는 도중 때때로 분노했으며, 때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 양심선언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사실 최우식 팀장은 업적도 많고 성실해서 청경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리더로 꼽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부패가 시작됐다. 내가 특별히 용기가 있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나는 정말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구조적 비리가 일거에 없어지리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길 바라기 때문에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리게 됐다."

- 글을 올린 이후 조직 내에서 따돌림과 같은 압박이 있지는 않았나.

"왜 없겠느냐. 글을 올린 이후 최우식 팀장이 면담을 하자고 하더라. 그런데 아직도 본인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어서, 5분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 '검찰 조사에서는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글에 대해 다른 청경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나를 따르는 몇몇 후배들은 좋은 반응을 보였다. 대개의 사람들도 나하고 일대일로 있으면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전체가 함께 있을 때는 모두 권력에 고개를 숙인다. 한마디로 아양떠는 거다. 선배들이나 후배들 모두 마찬가지다. 최우식 팀장이 그 자리에 있는 한, 많은 청경들이 진실을 이야기하긴 힘들 것이다."

- KBS는 2차 감사에 대해 "보다 심도있는 감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라고만 밝히며 구체적 자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2차 감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결과다. 최 팀장이 평소 자기 후배라며 친분을 과시하던 이가 2차 감사를 총괄지휘하게 됐다. 2차 감사는 애당초 이 문제를 덮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명절이나 연말에 금품을 낸 게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현재 KBS에는 연봉계약직 청경이 50여명인데 그중 돈 주고 들어온 이들이 적으면 15명, 많으면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작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술자리 등에서 '나는 얼마 주고 들어왔다. 누구는 얼마 줬다더라'고 밝힌 애들을 합치면 그정도 된다.

회사 측이 이 문제를 비호하고 있는 것은 최우식 팀장이 사내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실세들과 굉장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1차 감사결과 보고서에는 최우식 팀장이 청경들에게 녹음기를 가져가게 하고, 조사받은 내용을 말하게 하는 등 허위진술을 주도한 사실이 나온다. 당시 기억을 떠올린다면?

"지난해 특별감사가 시작됐을 당시, 일반 청경 대원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굉장했다. 반·조장, 대장들이 조회시간 마다 '조직 살리는 게 우선이다' '우리를 살릴 사람은 바로 최우식 팀장이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주입시키고 압박했으니까. 일종의 '정신교육'이다.

근무 도중에 감사실 조사받으러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반·조장의 통제가 가능할 수밖에 없다. 조사를 받고 내려오면 반·조장이 '감사실에서 뭘 물어봤느냐. 뭐라고 대답했느냐'라고 물어본 뒤, 그 내용을 최 팀장한테 보고했다. 어떤 질문을 했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에 대해 (최우식 팀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청경들도 있었다."

- 2차 감사때는 어땠나.

"정신교육은 있었으나 녹음기를 가져가게 하는 일은 없었다. 왜냐면 2차 감사는 최우식 팀장을 도와주기 위해 시작된 감사였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1차 감사에서는 감사팀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2차 감사에서는 1시간도 안 걸리더라.

그래서 오히려 내가 '왜 채용비리, 금품상납, 시간외 실비 부정지급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느냐. 당신들은 감사팀 아니냐'라고 물었다. 내가 묻고 나서야 '그렇다면 말씀해보시죠'라고 하더라. 애초부터 제대로 감사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거다."

- 1차 감사에서 적극적으로 응했던 직원들이 갑작스러운 지역발령 등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총 2명이다. 감사실에 가서 사실대로 이야기했다가 찍힌 거다. 보복 성격이 있기 때문에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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