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는 강원도 철원의 화살머리고지. 그곳은 65년의 시간 동안 역사의 숨결을 머금은 채 금단의 지역 비무장지대(DMZ)를 외로이 지키고 있었다. 남과 북의 병사들이 오랜 한을 품은 채 잠들어 있는 그곳에 길이 3km(남측 1.7km,북측 1.3km) 폭 12m의 남북전술도로가 22일 개통됐다.

이 금단의 지역에 남북을 잇는 전술도로가 개통된 것은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전쟁 때 사망한 남북한 병사들의 유해를 남북 공동으로 발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개설된 도로지만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지우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로 가는 혈맥 하나를 뚫었다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곳 화살머리고지에서 남북의 군인들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는 장면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감개무량이라 할 수밖에 없다.

남북이 22일 오후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인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술 도로를 연결한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사진은 최근 도로연결 작업에 참여한 남북인원들이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인사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연합뉴스]

지나는 길목에 ‘군사분계선’ 표지판이 보이지만 남북을 가로막는 어떤 장애도 없는 최초의 남북 연결도로가 마침내 뚫린 것이다. 남북전술도로의 본격적 활용은 내년 4월께라고 한다. 이 도로는 완성이 아닐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서울과 북한의 원산을 잇는 도로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화살머리고지 인근의 또 다른 격전지 백마고지로 남북공동 유해발굴이 확산될 것이며, 그 주변에는 생태공원이 들어설 수도 있다. 너나할 것 없이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했던 과거의 격전지에 비로소 평화의 보상이 돌아온 것이다.

기쁜 소식은 더 있었다. 남북철도 연결사업에 대한 대북제재 예외 인정 문제에 대해서 “가까운 시일 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말도 전해졌다. 1차 한미워킹그룹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미국은 철도연결을 위한 조사사업에 대해 아주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면서 남북철도연결에 대해 희망적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남북철도 연결 사업은 아마도 평양 옥류관 냉면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자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망이라지만 막상 실현이 되면 낭만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업이기도 하다. 남북의 철도 연결은 신 실크로드의 완성을 의미한다. 한반도를 출발해 중국과 러시아 방면으로 엄청난 물류의 이동이 가능해진다. 남북철도 연결이 가져다 줄 이득과 편리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국민이 희망하는 것이다.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이 성사됐던 2007년 5월 열차가 경의선 남측통문을 지나 북측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엔의 대북제재는 사실상 미국이 키를 쥐고 있다. 근래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쌓는 외교에 힘입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완화에 힘을 싣고 있어 실질적으로 미국만 동의하면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가 일단 대북제재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남북철도 연결 사업이 의제에 올랐고, 그에 대해서 희망적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수확이자 희소식이다.

우선 남북철도 연결 사업 이전에 남북공동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 8월에는 유엔군사령부가 군사분계선 통과를 승인하지 않아 경의선 철도공동조사에 차질이 생긴 적이 있었다. 시작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크다. 게다가 2차 북미정상회담도 전과 달리 해프닝 없이 성사될 것이라면 공동조사의 예외인정은 남북철도 연결 사업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점칠 수 있기도 하다.

같은 날 동시에 듣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희망적인 소식이 두 가지를 접했지만 나라는 더 시끄러운 이슈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그만큼 남북 평화사업이 지난하다는 의미도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길은 본래 길이 아닌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가고 또 가고, 막혀도 돌아가지 않고 기어이 또 가는 끈기의 소산이 길이다. 국내외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는 세력이 엄연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평화의 길도 뚫리고, 번영의 철도도 반드시 놓이게 될 것이다. 잠시 잊었던 평화와 번영의 희망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게 됐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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