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주당이 지난 19대 국회부터 당론으로 삼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가 비판에 나서자,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을 뺐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자신들이 과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한 적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거부 비판에 "사실 아니다" 해명

16일 문희상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의장-여야 5당 대표 부부동반 만찬에서 이해찬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현재 지지율로 볼 때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다수 확보해 비례 의석을 얻기 어렵다"며 "그렇게 되면 비례의석을 통해 직능대표나 전문가들을 영입할 기회를 민주당이 갖기 어려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21일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에서 손학규 대표는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확인시켜줬다. 손 대표는 "이해찬 대표는 지난 16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부부동반 만찬 자리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발언했다"며 "저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밝혔다.

손학규 대표는 "이해찬 대표는 후에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며 조건부 해명을 내놨지만, 선거제 개혁 의지가 없는 민주당의 본심을 단적으로 보여준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손 대표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은 촛불의 명령일 뿐더러 지난 총선, 대선에서 민주당 공약이었다"며 "이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고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은 20일 박주현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그동안 초지일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해왔다. 대통령도 나서서 주장해왔다"며 "그런데 이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절호의 기회가 왔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는데, 유불리를 따지며 말을 싹 바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21일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논평을 내고 "지방선거 이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원내외 정당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민주당의 행태를 볼 때,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당장의 눈앞의 지지율에 연연해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며 "민주당이 당리당략에 따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공약을 파기할 경우 결코 좌시하고 있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비판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해명에 나섰다. 이날 오전 민주당은 홍익표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부 언론이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한다고 보도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당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한 바 있고, 이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해명했다.

민주당은 "이미 밝힌 것과 같이 대표성과 비례성에 기초한 선거제도를 일관되게 주장해왔고, 이러한 방향 하에 정개특위에서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한다거나 공약을 뒤집었다고 하는 기사는 전혀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권역별? 연동형? 민주당의 '말장난'

민주당은 자신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고 해명했다. 대선과 총선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한 것이 아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용어를 명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연동형과 대비되는 말은 병립형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차이점은 두 제도 모두 비례대표를 가지고 있지만 의석 계산 방식이 다르단 점이다. 10석 총 의석수가 있는 선거구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각각 5석씩 있다고 가정하자. 선거 방식은 현행과 같이 지역구 1명, 비례대표에서 1정당을 선택한다.

만약 A정당과 B정당이 지역구에서 3명, 2명을 배출하고, 정당 투표에서 각각 40%, 60%를 득표했을 경우 현행 병립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정당투표를 비례대표 5석에만 반영해 A, B정당에 각각 2석, 3석을 배분한다. 여기에 지역구 3석, 2석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A, B 정당은 각각 5석씩의 의석을 갖게 된다.

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체 의석수를 정당투표에 연동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10석 중 A당이 4석, B당이 6석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역구에서 A당이 3명, B당이 2명을 배출했기 때문에, 비례대표는 A당에 1명, B당에 4명이 배분된다. 전체 의석수와 정당 득표율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또한 민주당이 논평에서 얘기한 '권역별'이라는 것은 선거의 단위를 '권역'으로 나눠서 진행할 것인지, '전국단위'로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는 상관이 없단 얘기다.

▲지난 2015년 11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선거구 획정 논의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5~2016년 당시 제기됐던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서 등장했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정확히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의미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나눠서 진행하자는 의미였단 얘기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대1로 맞추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할 것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우리가 주장한 건 그게(선관위 안)이 아니라 다른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며 "그때는 지역 독식 문제 의식을 갖고 접근했던 것이고, 지금은 정당이 받는 표에 대한 비례성, 대표성의 문제이다. 문제의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기반으로 석패율제 도입 등을 주장했단 얘기다.

그러나 민주당이 2016년 4·13 총선 선거구 획정 당시 선거제도 개혁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보도를 검색만 해봐도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던 것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1월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박수현 당시 원내대변인은 "저희가 이 문제(선거구 획정)와 관련해서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였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저희당이 주장한 것이 아니고, 중앙선관위가 망국병인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혁안으로 여야가 논의하라고 권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마치 다른 안을 주장하다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란 얘기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이 내놓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법안도 여러 건이다.

민주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소극적

이럼에도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성을 두고 주저하는 이면에는 결국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지속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소극적 입장으로 전환했다. 정권이 바뀌어 자신들에게 현행 선거제도가 유리하다고 판단되자, 입장을 뒤집었단 얘기다.

이번 정개특위에서도 말로는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50%를 상회하고 있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자유한국당이 20% 내외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선거제도가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란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의원들도 있으나 소수라는 후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손학규 대표가 주최한 <변화의 시대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 토론회에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솔직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대선공약이었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진정성이 있느냐고 하는데, 공약한 게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진 않는다"면서도 "그런데 이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하면, 제가 아는 정치 상식으론 안 되는 방식이다. 제가 생각하는 바로는 선거제도 개혁은 각 당, 각 정치행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만약 소선거구제를 바꿔서 지금보다 (민주당이) 의석을 잃는다면 다른 곳에서 보상이 있어야 한다"며 "다른 걸로 절충, 보상이 되는 이해관계 조정이 이뤄져야 선거제도가 바뀐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국민 여론이 대세가 돼서 압박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가닥을 잡았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지난 17일 노컷뉴스는 "여권에서 나오고 있는 '이른바 소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 병립형'은 비례대표의원 수를 권역별로 할당해 지역별 정당 지지율로 비례대표 수를 나눠 갖자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이러한 안은 선거제도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며 "비례의석이 몇 석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권역까지 나누면 비례성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하 공동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하자는 게 분명히 민주당의 당론이었다"며 "박주민, 김상희 의원이 발의한 안에도 그렇게 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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