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러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해찬 대표는 지난 16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국회의장-5당 대표간 만찬에서,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제1당은 (정당투표에 따라) 차지할 의석을 지역구 당선자로 다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많이 가지기 어렵다”며, “그럴 경우 직능성, 전문성을 가진 비례대표의 영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제1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물론 이 발언은 말도 안 되는 발언이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수를 가져가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것이다. 그 결과 자기 정당이 배분받는 비례대표 의석 숫자가 줄어든다면 그것은 어느 정당이든 감수해야 할 일이다. 그것에 대해 불만을 얘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비례대표에 대한 이해찬 대표의 인식부터가 잘못됐다. 비례대표 의석은 정당지도부가 영입을 명분으로 ‘밀실공천’을 하는 용도로 더 이상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비례대표 의석은 기본적으로 정당지지율과 의석비율을 일치시키기 위해 배분되는 것이고, 누가 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될 것인지는 당원.지지자들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여전히 ‘영입’ 운운하는 것은 당원, 지지자들도 잘 모르는 사람을 비례대표 후보로 ‘밀실공천’해 온 흑역사를 되풀이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 자체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해찬 대표측은 뒤늦게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조만간에 기자간담회를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가 그런 얘기를 전혀 한 바 없다면, 여러 언론이 보도했을 리도 없고, 당일 만찬에 참석했던 다른 정당에서 비판성명을 낼 이유도 없다.

이해찬 대표만이 아니다. 여러 경로로 민주당의 내부 분위기를 파악해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에 내심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 이유는 이번 6.13 지방선거 결과를 볼 때, 지금 선거제도로 2020년 국회의원 총선을 치르는 것이 민주당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얄팍한 계산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문희상 국회의장 등 여러 민주당 정치인들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2020년 총선 전까지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행 선거제도가 유지될 경우, 2020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지난 2016년 총선결과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당시에 새누리당이 300석중 2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우세했고, 실제로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그렇게 자만을 해서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총선결과는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의 총선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승자독식의 선거방식으로 300명중 253명의 국회의원을 뽑기 때문에, 수도권과 같은 경합지역에서는 작은 표 차이로도 의석수가 확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 정당의 당론과 대선공약을 뒤집는 것이고, 유권자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점이다.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단, 전국을 6개 권역을 나눠 실시) 도입을 권고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를 맡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당론으로 채택했었다. 그리고 그 당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또한 2012년, 2017년 대선당시에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시했다.

그런데 지금 지지율이 자기정당에게 조금 유리하게 나온다고 해서, 자기 정당의 당론과 대선공약을 파기한다는 것은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것은 공약을 믿고 투표한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행위이기도 하다.

셋째, 고 노무현 전 대통령때부터 주장해 왔던 선거제도 개혁의 기회가 왔는데, 이를 걷어차 버리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온갖 오해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개혁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본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노무현의 친구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선거제도 개혁에 관해서는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선거제도 개혁의 기회가 온 것이다. 몇십년 만에 온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만 마음을 먹으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 시민사회의 지지속에 선거제도 개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도 선거제도 개혁을 강하게 반대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걷어차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안다면 땅을 치고 통곡하지 않을까? 몇십년 만에 어렵게 온 기회를 노무현을 따른다는 더불어민주당이 걷어차버리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아직 늦지는 않았다. 마지막 기회는 있다. 이해찬 대표,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은 지금이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고 추진하길 바란다. 의석 확대 문제가 난관이라고 하지만, 특권 폐지를 전제로 국민들을 설득해나가면 될 일이다. 그 일은 시민사회와 전문가들도 함께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만약 끝내 이해찬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해찬 대표는 여당 대표는 물론 더 이상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자기 당의 당론과 대선공약도 파기하는 정치인은 더 이상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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