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고등군사법원이 부하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소령에게 1심 징역 10년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시민단체와 정당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등군사법원 2부(부장 신동욱)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A 소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소령은 2010년 B 대위(당시 중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소령은 B 대위가 성 소수자라는 점을 이용해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행으로 B 대위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이들의 상관이었던 C 대령은 B 대위가 피해상담을 했을 때 성폭행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고등군사법원 재판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B 대위는 2017년 여군 수사관에 피해 사실을 알렸고, 수사가 시작됐다. 같은 해 9월 A 소령과 C 대령은 해군 경찰에 구속됐다.

군사법원은 1심에서 A 소령과 C 대령에게 각각 징역 10년, 8년 형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일관되고 상세한 진술을 하고 있으며 병원 진료 내역을 고려했을 때 범죄사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A 소령과 C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8일 “폭행·협박을 인정하기 어렵고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과장·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C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19일 같은 이유로 A 소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반발에 나섰다. 군인권센터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일 법원 앞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의당은 20일 브리핑에서 “사건이 너무 오래되어 피해자의 진술을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1심을 뒤집었다”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당은 “군내에서 벌어지는 성폭행은 계급에 의한 위력이 추가로 작용하는 악질적인 범죄”라면서 “군대가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군사법원에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만 주는 군사법원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녹색당은 19일 <성 소수자와 여성에게 대한민국은 지옥이다> 논평에서 “재판부라기보다 성범죄 공범에 가깝다”면서 “판사의 삐뚤어지고 왜곡된 성 관념이 그대로 드러나 ‘상호 동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것을 평생 가져본 적이 있을지 의심케 한다”고 비판했다.

녹색당은 “여성이자 성 소수자라는 것을 ‘약점’으로 삼고 직속 부하를 수차례 성폭행한 파렴치한 군인을 ‘무죄’로 풀어준 대한민국 군사법원의 끝을 알 수 없는 여성 혐오와 성 소수자 탄압에 숨통이 막힌다”면서 “일말의 인간성도 찾기 어려운 두 가해자에게 상고심은 반드시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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