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축구는 참 많은 일들을 이뤄냈습니다. 여자 축구의 쾌거도 있었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분 좋았던 쾌거를 꼽는다면 바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을 이뤄낸 남아공 월드컵 소식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치열한 내부 경쟁 속에서 전력을 끌어올리며 '유쾌한 도전'에 성공한 태극전사들의 활약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쾌거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아쉽게 고배를 마시고 그리 달갑지만은 않게 월드컵을 보낸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부진한 경기력 때문에 또는 '불의의 부상'으로 안타깝게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선수들은 그야말로 '칼을 가는' 심정으로 언젠가 올 지 모를 대표팀 복귀를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기다린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부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국 2010년 국내에서 갖는 사실상 마지막 A매치, 그것도 자존심이 걸린 한일전 평가전 엔트리에 포함된 '재발탁 태극 전사'들이 승부를 펼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활약에 어떻게 보면 한일전의 승패도 엇갈리고 다가오는 아시안컵 본선의 전망도 밝힐 것으로 기대됩니다.

▲ 신형민 선수 ⓒ 연합뉴스
지난 4일 발표한 한일전 엔트리에서는 특이하면서도 새롭게 발탁된 선수가 없었던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단 두 번이었지만 파격적인 신예 대거 발탁을 해온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의 선수 기용 스타일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신 '돌아온 태극 전사'들의 면면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지난 5월,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다 최종에서 아쉽게 탈락한 구자철(제주), 신형민(포항)을 비롯해 유병수(인천), 황재원(수원), 김신욱(울산) 등 허정무호에서 잠깐 발을 담갔다가 나왔던 태극전사들이 모두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또 최성국(광주)이 2년 만에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고, 잠시 조광래 감독의 '중대한 지적'을 받고 대표팀에서 나왔던 이승렬(서울)도 달라진 모습으로 2달 만에 다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최근 컨디션이 좋아 한일전에서도 좋은 활약이 예상된다고 조광래 감독이 기대하면서 발탁한 케이스입니다. 공교롭게 모두 각 소속팀에서 최근 경기력에서 좋은 면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일전에서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 가능한 멤버들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큽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시안컵 본선 엔트리 구성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경쟁과 기회가, 팀에는 적지 않은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병수와 김신욱은 허정무호에서 간만 봤다가 제대로 기량 한 번 보여주지 못하고 대표팀과 인연이 없던 선수들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팀 공격력에는 큰 영향을 주기가 어렵다고 예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월드컵 꿈을 일찌감치 접은 뒤 자신의 기량 향상에 매진한 끝에 유병수는 17골로 득점 선두, 김신욱은 개인 최다 기록은 9골-2도움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공격수가 갖춰야할 결정력과 비교적 공격력 면에서 조광래 감독의 눈에 들며 대표팀에 다시 오를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발탁된 최성국은 더 합니다. 지난 2008년 10월,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이후 2년 동안 단 한 번도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이전에도 2007 아시안컵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붙박이 기회를 얻지 못했던 최성국은 서서히 잊혀지는 공격수로 전락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에 군에 입대한 뒤, 광주 상무에서 전천후 공격수로 이름을 날리면서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말년 병장으로 전역 10여일을 남겨둔 시점에서 마침내 대표팀에 오르는 꿈을 꾸었습니다.

구자철과 신형민은 월드컵 최종엔트리 문턱 앞에서 좌절됐던 아까운 선수들이었습니다. 수비형 중앙 미드필더로서 굳은 일을 다 했던 신형민,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패싱 플레이가 돋보인 구자철은 현재보다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밀려 탈락했다는 인식 때문에 씁쓸하면서도 그에 따른 좌절감이 한동안 막대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자신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알아내고 변화를 모색한 두 선수는 월드컵 이후 팀내 주축 선수다운 활약을 보여주며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엔트리 탈락의 쓴맛을 본 지 5개월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승렬의 케이스는 조금 다릅니다. 사실 월드컵 이후 이승렬의 행보는 상당히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이승렬이 다소 최전방 움직임에서 아쉬움이 많다면서 지난 달 열린 이란전에서 자극을 주기 위해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해 이승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월드컵 이후 조금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승렬은 이를 악물었고, 최근 6경기에서 4골-3도움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내며 '감 잡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많이 좋아졌다고 판단한 조광래 감독은 이승렬을 다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일전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다시 돌아온 태극 전사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장이 되기 위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더 혼신의 힘을 다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유병수와 김신욱이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고 각오를 밝혔을 만큼 다시 돌아온 태극 전사들의 강한 의지가 엿보여지는데요. 기존 선수들만큼이나 기량도 좋고, 동기 부여도 높은 '돌아온 태극 전사'들의 좋은 활약에 한일전의 전망도 더욱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번 한일전을 통해 명예 회복도 하고 대표팀 롱런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는 '돌아온 태극 전사'들이 누가 될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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