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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착한 펀드'와 혁신적 포용국가소득주도성장 2선 후퇴? 사회적 타협 아닌 대기업 금융 의존 심화 우려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11.19 08:52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는 등장하는 용어가 매우 복잡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다양하고도 어려운 용어의 미로를 헤치고 나면 남는 결론은 매우 간명하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계된 일은 어떤 방해에도 개의치 않고 무조건 추진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문제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제일모직 지분으로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이를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한다는 시나리오가 ‘방침’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산정돼야 했기 때문에 이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 바이오로직스를 고평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를 고평가하기 위해선 다시 이들이 바이오젠과 합작해 만든 삼성 바이오에피스 주식을 과대평가해야 했다. 삼성 바이오에피스 주식을 과대평가하니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장부상에 이들이 가진 지분의 시장가액만큼 부채를 반영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되면 삼성 바이오로직스는 장부상으로 자산보다 부채가 큰 상태, 즉 자본잠식에 빠지게 되고 그럴 경우 상장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게 한겨레 등 보도로 알려진 삼성 내부 문건이 가리키는 바다.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상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할 하나의 근거였을 것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게 합병 당시 이재용 부회장에 유리한 근거를 만들기 위해 삼성 바이오로직스를 무리하게 고평가 했다는 의혹을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5년 삼성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 시장가액으로 장부에 반영했고 삼성 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 평가차익을 거뒀다. 이 덕에 상장도 잘 마무리 됐다.

계산대로라면 여기서 문제가 깔끔하게 해소되는 거였지만 참여연대 등이 종속회사가 관계회사로 바뀐 근거를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상황이 꼬였다. 상황을 잘 관리했으면 금융감독원과 증권선물위원회도 과실로 판단했을 텐데 내부고발이 문서의 형태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결국 꼬리가 길어서 밟힌 셈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자본시장의 기본질서 자체의 부실함이다. 주주자본주의의 대전제는 기업의 투명한 운영이 가능해야 한다는 거다. 기업이 스스로를 성실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시장이 정확하게 투자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따로 회계법인 등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이 결과를 공개하는 등의 과정은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삼성 바이오로직스 문제에 있어서는 이 전제 자체가 붕괴했다. 회계법인들은 삼성이 원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려주는 역할을 자임했고 감독 당국은 삼성이 물어보고 싶은 것만 물어보고 원하는 답변을 받아간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관성적 태도로 일관했다. 어차피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 것 아니냐는 식의 안이한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내부고발자의 문건으로 상황이 뒤집혔지만 앞서의 이런 상황들은 삼성이 언론을 통해 내놓는 스스로의 방어논리가 되고 있다. 정권마다 금융당국의 판단이 달라지고 있어서 바이오 관련 산업의 미래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에 반도체 호황이 끝날 거라는 전망이 많은데 아마 이것까지 엮어서 경제위기론은 삼성위기론과 결합해 더 덩치를 키울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8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 삼성 바이오에피스 대표를 대동한 바 있다. ‘메시지’는 이미 명확한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주주자본주의 논리와 금융의 역할에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정부는 부동산 투자로 쏠린 유동자금을 자본시장으로 유도하겠다며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철저한 시장 논리를 통한 자본투자가 될 경우 미래 가치가 있는 산업이 성장하고 이게 다시 기업가 정신을 자극해 기술혁신이 이뤄진다는 식의 혁신성장론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에는 이를 넘어선 ‘착한 투자’도 등장하는 모양이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라는 KCGI(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의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 9%를 매입 공시해 2대 주주가 된다는 것이다. 한진칼의 지분구조는 조양호 회장 등 오너 일가가 30% 가까운 안정적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소액주주 등 지분이 40% 이상이다. 최근 오너 일가의 전횡 때문에 주식 가치가 떨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만큼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 해임 등을 놓고 표대결을 벌이는 경우 그레이스홀딩스의 승산 가능성이 있다고들 본다는 거다.

여기서도 8%를 좀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중요하다. 이 정권은 국민연금이 기업의 긍정적 활동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늘 강조하고 있다. 만일 여러 조건이 충족될 경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조양호 회장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럴 경우 오너 일가의 파탄적 경영에 주주자본주의적 원리가 제동을 거는 모범사례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니겠냐는 회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는 자신들을 단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 이른바 “벌쳐 펀드”와는 다르다고 설명하지만 결국 이익의 실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전제라면 시장원리에 의한 판단이 반드시 공공선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사모펀드가 오늘은 오너 일가의 전횡을 막는 도구가 되지만 내일은 정리해고와 직장폐쇄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사례는 주주자본주의의 논리에 기댄 ‘경제민주화’의 오늘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다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를 보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경제 정책에 중점을 뒀지만 앞으로는 경제와 사회 정책을 통합해 복지와 혁신을 함께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면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주도하는 사람은 김수현 정책실장”이라고 했다고 한다. 해석하면 소득주도성장론은 명예롭게 2선으로 물러나도록 하고 새로운 레토릭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걸로 이해된다.

비유하자면 ‘혁신’이란 개념 속에는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삼성 바이오로직스와 시장의 원리로 경제민주화를 성사시키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각기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은 ‘광주형 일자리’라는 지역 사업에 가두고 산업구조 전반의 키는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여전히 쥐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김수현 정책실장을 운동권 출신의 앞뒤 꽉 막힌 사람으로 묘사하는 상황에 굳이 혁신적 포용국가를 그가 주도한다고 강조한 것에도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부 언론에 의하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전 정부도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다”면서 ‘초이노믹스’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게 처음이 아니다. 스스로를 급진적 정치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만, 우리가 경제 문제에 있어서 ‘좀 더 나은 박근혜 정부’를 갖게 된 것에 불과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청와대 인사들이 마치 그런 것처럼 말하고 있다. 20년 집권을 위한 포석인가? 궁금하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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