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관련 분야를 취재하면서 몸소 느낀 나만의 공식 하나가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시사 보도프로그램 이름이 바뀌게 되면, 그 프로그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의 운명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 설사 이름이 바뀐 뒤 프로그램이 계속 되더라도, 날카로운 시선이 무뎌진 시선으로 바뀌는 것, 그 프로그램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은 순간이었다. KBS <시사투나잇>이 그랬고, <미디어비평>이 그랬다.

▲ <후플러스> 홈페이지 캡처
그래서 나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프로그램 이름을 바꾸라고 압박을 가하는 방송사 경영진들의 요구에 제작진이 응하는 순간을 볼 때면, 곧 다가올 프로그램의 폐지 운명(?)을 느끼게 된다. MBC가 구성원들의 반발에도 <뉴스후>에서 <후플러스>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더욱 그랬다. <후플러스>의 끝이 불현듯 떠올랐다.

결국, MBC는 오는 11월 개편을 앞두고 <후플러스>와 <김혜수의W> 폐지를 공식화 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편안을 ‘선택과 집중’으로 표현하며 “보도는 공영성을 강화하고, 오락은 더욱 재미있게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나는 MBC의 이러한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도의 공영성을 강화한다는 MBC의 설명을 믿는 이들이 몇이나 될 까 싶다. MBC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제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높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걸까.

폐지 소식을 접한 많은 시청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많이 아쉽다. 아쉬움을 넘어 섭섭한 마음도 크다.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나는 4년 전, 한 아이에 대한 후원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월, 그 아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큰 지진이 발생했다. 그 나라는 아이티였다. 후원을 담당하는 기관에서는 내가 후원하는 아이의 생사가 확인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수 개월이 지난 뒤, 아이로부터 편지를 받고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됐지만) 한국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가 살아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계속해서 매달 4만5천원의 후원금을 입금하는 것과 아이티 참사에 대한 언론 보도를 수시로 접하는 것밖에 없었다.

▲ <김혜수의 W> 홈페이지 화면 캡처
국제 시사 문제를 다루는 <W>는 국내 여러 언론 가운데서도 유달리 아이티의 소식을 상세히 전했다. 먹을 것이 없어 진흙쿠키를 먹는 아이티 아이들의 충격적인 모습도 전했고, 대지진 이후 아이티 참사 현장을 전했고, 지진 참사 6개월 뒤 아이티의 변한 모습도 전했다. 그래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 많이 고마웠다. <W>가 아니었다면, 내가 후원하는 아이가 살고 있는 삶의 단면들을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 이 뿐이 아니다. <W>는 여성, 인권, 아동 등 TV 하나로 나와 국제 사회를 연결해 주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절대 폐지되어서는 안 되는 완전 소중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후플러스> 폐지 역시 아쉽다. 속 편하게 낄낄대며 웃을 수 예능 프로그램의 즐거움 보다는, 사안이 주는 무거움 때문에 때로는 괴롭고 반성하게 되더라도 사회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사 보도프로그램을 즐겼던 나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정부를 향한 일침보다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고, 권력과 자본 그리고 힘을 가진 이들의 문제점을 아무 비판 의식 없이 다루는, 연성화 된 시사 보도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던 터라 <후플러스>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물론, <뉴스후>와 비교했을 때 날카로움과 비판 의식이 다소 줄어든 것은 아닌가, 사안이 지나치게 가벼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후플러스>는 최근까지도 권력을 가진 자들, 자본과 힘을 가진 자들을 향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힘든 상황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제작진들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기도 했다.

나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MBC가 불편하다. 권력과 자본, 정권이 불편해 할 법한 시사 보도프로그램을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축소 혹은 폐지하고 예능 프로그램으로 채우는 MBC가 불편하다. 어느 순간부터 MBC를 볼 때마다 공영방송으로서 책무를 감당하기 보다는 자본의 논리로 시청률과 수익에만 급급한 상업방송의 모습이 자주 떠오른다.

조금씩 변하고 있는 MBC의 행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 듯 하다. 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는 오늘(1일) 치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필자는 미국 학생들에게 미국 언론구조의 문제점에 대해 강의할 때마다 문화방송(MBC)을 성공적인 공영방송 모델 사례 중 하나로 소개하고, 미국에도 문화방송과 같은 공영방송이 생겨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문화방송을 미국이 모델로 삼아야 할 성공적인 공영방송의 사례로 들 수 없을 듯하다. 지난 28일 문화방송이 발표한 가을 프로그램 개편안을 보면 문화방송이 더 이상 공영방송이기를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후플러스>와 <김혜수의 W> 홈페이지에는 폐지를 반대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가득하다. “이젠 경영진을 비판하기도 민망합니다”라는 시청자의 한 마디가 유독 눈에 띈다. 공영방송의 가치를 외면하고, 시청자들의 여론을 외면한 채 ‘경쟁력’이라는 그들만의 이름으로 개편을 강행하고 있는 김재철 MBC 사장과 경영진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문득 후회가 된다. 아주 가끔, 목요일 밤 <후플러스> 대신 <해피투게더>를 보며 낄낄댔던 일, 그리고 금요일 밤 <김혜수의 W>를 대신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일이.

마지막으로, 수없이 반대를 외쳤음에도 경영진의 결정 한 마디에 프로그램을 떠날 수 밖에 없는 <후플러스>와 <김혜수의W> 제작진을 향해 수고했다는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넨다.

▲ <후플러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청자 의견 화면 캡처

▲ <김혜수의 W>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청자 의견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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