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의 베일이 벗겨졌다. 아직 1회 밖에 안 되었기에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1회를 본 소감은 B급 드라마라는 것이다. 손발이 오글거려 더 이상 봐 줄 수 없었던 도망자는 추노 감독과 작가가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정반대의 결과를 내 놓았다. 비덩 이정진이 도망자 때문에 남자의 자격에 불참하면서 도망자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홍콩, 일본 등 해외 로케이션이 유난히 많았던 도망자이기에 뭔가 재미있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비도 나오고, 이나영도 나오고, 오지호에 다니엘 헤니 그리고 성동일까지...

시티헌터야, 신불사야?

비의 종횡무진 액션은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음질은 영화 음질 같은데 비의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비의 캐릭터는 어릴 적 즐겨보던 시티헌터 주인공과 똑같았다. 여자를 밝히는 능력 있는 탐정. 그를 쫓는 경찰과 개성 있는 그의 친구들. 스토리는 시티헌터를 다시 보고 있는 듯 했다.

화면은 추노가 아니라 신불사였다. 추노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화려한 액션 장면은 어디가고 조잡한 화면이 난무했다. 특히 액션에 있어서는 너무도 빈약해 보였다. 혼자 원맨쇼를 하는 비를 보고 있으니 신불사에서 원맨쇼를 했던 송일국이 떠올랐다. 신불사에서 그 조잡했던 본부가 그대로 비의 본부가 되어 있었다. 최첨단을 달리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영 뒤떨어져 보였다.

또 한 가지 오버랩되던 것이 있었는데 그건 홍콩 영화였다. 80년대 즐겨보던 홍콩영화보다 못한 액션과 영상, 그리고 그와 비슷한 스토리가 B급 드라마로 전락시키고 만 것 같다.

몰입 불가

드라마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개연성 없는 전개는 너무도 불친절했다. 자막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설명하기 바빴던 도망자는 아무런 설명 없이 캐릭터들의 대사 속에서 과거를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다쳐도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들떠 있어서 몰입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조연 배우들이야 양념을 치기 위해 과장된 몸짓과 상기된 목소리를 낸다 쳐도, 주연 배우들까지 다들 들 뜬 몸짓과 상기된 목소리로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어 극의 흐름 전개가 빠르다는 느낌보단 컬트를 보는 듯 딱딱 끊기는 느낌이었다.

비가 능글맞은 연기를 할 때는 재가 왜 저러나 하는 심정이었다. 오글거리는 말투하며 이해 안 되는 행동들, 그러면서 갑자기 진지해지는 모드는 너무 기복이 심해서 울렁거릴 정도였다. 이정진의 진지함 역시 진지하게 다가오지 못했고, 절에서의 스님과 이나영의 대화는 너무 어설펐다. 좀 더 템포를 늦췄어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타이밍

도망자는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 추석 때 김탁구 스페셜을 방송하면서 구미호는 이 틈을 타서 2회 연속 방송해 버렸다. 20% 시청률이 넘으며 구미호는 김탁구 시청률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고, 도망자의 오글거리는 스타트는 구미호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게다가 다음 주에 바로 시작하는 대물에는 도망자에 실망한 사람들이 대거 합류하지 않을까 싶다.

도망자는 첫 회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죽을 쒔고, 이는 대물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좋은 타이밍에 시작하는 대물은 처음부터 주목을 받게 될 것이고, 만약 대물이 첫 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도망자는 나쁜 남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심하면 장난스런 키스로까지...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대물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거나 권상우 뺑소니 영향이 생각보다 클 경우 그 타격은 바로 도망자에게 올 것이기 때문이다. 장난스런 키스가 아예 무관심 속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미 다 찍어 놓았겠지만, 2,3회부터는 템포를 좀 늦추고 음향 좀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빠른 전개와 웅얼거리는 말은 드라마를 B급으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만 보여준 1회는 실망 그 자체였다.

초호화 캐스팅과 해외에 돌아다니며 200억 가량의 높은 제작비용을 들인 도망자가 과연 명성에 걸맞는 걸작이 될지, 빛 좋은 개살구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도록 하자.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tvexciting.com 운영하고 있다. 바보상자 TV 속에서 창조적 가치를 찾아내고 픈 욕심이 있다. TV의 가치를 찾아라! TV익사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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