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요. 정규 앨범을 발매하면서 세 곡을 한꺼번에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던 2NE1과 YG의 전략은 이런 것이었나 봅니다. 최대한 대중을 향한 노출을 극대화시키고 단숨에 각종 음원 사이트를 점령하면서 그나마 대형 가수들의 컴백이 한산했던 9월 한 달을 온전히 그녀들의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분위기가 다른 각각의 곡들마다 담겨져 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명분도 타당하지만 단순히 그런 욕심으로 밀어붙인 것만은 아니란 것이죠.

확실한 성공입니다. 각 곡의 정도 차이가 있지만 모든 타이틀곡이 비교적 고른 사랑을 받으며 음원 차트의 수위를 차지했었고 정확한 측정이 힘든 음반 판매 역시도 조금은 민망한 부풀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활동했던 여자 아이돌 중에서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니까요. 점점 더 팬클럽의 크기와 팬들의 열성도에 의한 세력 싸움이 되어 가고 있는, 그래서 방송사마다 순위가 오락가락한 순위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모든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곡으로 1위 트로피를 거머쥔 것 역시 마땅히 평가받을 만한 성공입니다. 자기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로맨스라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존재하는 경쟁률에 맞추어 그에 걸맞은 순위를 얻어냈다면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9월의 승자는,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2010년 하반기의 승자는 아직까지는 단연 1년차 신인 여성그룹 2NE1이에요.

하지만 이런 성공 역시도 무척이나 짧고 제한적입니다. 많은 기대, 대단한 기세를 몰고 단숨에 각종 차트를 점령해버렸던 그녀들도 결국 3주의 고비를 넘지 못했어요. 가을 분위기와 함께 예비역으로 돌아온 성시경은 떠오르는 대세 아이유와의 솔로곡으로 차트 점령에 나섰고, 남성 아이돌의 강력한 차기주자 비스트 역시도 정규 앨범으로 정상을 노리고 있습니다. 유력한 신인상 후보 미스에이도 신곡과 함께 또 한번의 성공을 자신하구 있구요. 쟁쟁한 후발 주자들의 등장과 함께 2NE1의 천하도 가을과 함께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이죠.

특정한 가수나 그룹 개인의 성공 여부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짧아진 노래들의 수명, 일반 대중들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일부분만을 위한 가요에 대한 말을 하고 싶은 것이죠. 탄탄한 지지자들과 뛰어난 전략, 개성 있는 장점을 보유하고 있는 2NE1 마저도 한 달이면 저물어져버리는, 그래서 3개의 타이틀곡 같은 최단기간동안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에요. 2NE1의 노래가 과연 얼마나 더 울려 퍼질 수 있을까요?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기세가 꺾여버린 그녀들은 아마도 다른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10월 중순이 넘어서면 역시 조용히 사라져 버릴 거예요.

결국 그런 것입니다. 지금 한국 가요계에서 노래 한 곡으로 한 달 이상을 정상에서 버틸 수 있는 가수란 존재하지 않아요. 가요계 모든 장르를 섭렵하고 있는 아이돌이건, 과거의 화려한 명성과 두터운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관록의 솔로 가수이건 상관없습니다. 모두 그저 하나의 유행처럼 고작 몇 주 전에 발표된 노래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신곡을 소비하고, 또 다시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그러니 1위곡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알 수 있을 리 없고, 3~4주 만 지나도 이 노래가 언제적 누구의 노래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충분히 기억 속에 스며들고 노래와 함께 추억을 만들며 함께 살아갈 여유도, 기회도 사라져 버린 것이죠.

이러니 노래는 점점 더 가벼워지고, 컴백은 빨라지고 유행은 더 짧아질 수밖에요. 금세 잊혀져 버릴 노래에 혼과 열정을 쏟아 붓는 것이 어리석은 세상이 되어 버렸고, 그럴수록 얄팍해진 노래들에 대중들은 외면과 무시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서 2NE1의 롱런을 기대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어요. 어떤 그룹이든지, 무슨 모습으로 등장하든지 오랜 시간 동안 버티며 대중들의 관심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그래서 아직도 노래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대도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네요. 대단하고 확실한 성공이지만 우울하고 씁쓸한 3주 천하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