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은 댓글 전쟁을 방관하고 있다. 댓글을 좋아요 순으로 배열해 경쟁을 부추긴다" - 3월 20일자 중앙일보 <"댓글, 2시간이면 없는 여론도 만든다">

"댓글의 순기능보다 폐해가 너무 커졌다. 댓글 폐지는 세계적인 추세" - 4월 26일자 중앙일보 <네이버가 댓글 없애야 하는 4가지 이유>

[미디어스=전혁수·윤수현 기자] 지난 봄, 한국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인 드루킹 김동원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경제공진화모임’ 회원들과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사용해 조직적으로 댓글을 조작해왔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김경수 경남지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정치권은 난리가 났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제기됐고, 결국 허익범 특검이 수사에 나섰다.

드루킹 사건으로 포털은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됐다. 많은 언론이 한국의 뉴스공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에 집중 포화를 가했다. 네이버를 언론사로 봐야 한다는 주장부터 아웃링크를 도입해 페이지뷰를 언론사가 직접 가져가야 한다는 요구까지 제기됐다.

지적 중 하나가 댓글 정렬방식이었다. 당초 네이버는 인링크 뉴스의 기사 하단에 댓글을 배치하고 공감순으로 상단에 노출되도록 해왔다. 하지만 여러 언론을 통해 공감순 댓글 배열이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조작의 핵심인 만큼 이를 없애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네이버는 이를 수용해 정치기사에 한해 최신순으로 댓글을 배열했다. 또한 댓글 열어보기 아이콘을 클릭해야 기사의 댓글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 지난 5월 9일 서울 네이버 파트너스퀘어에서 열린 '네이버 뉴스 및 뉴스 댓글 서비스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관련 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요구를 주장한 것은 대형 신문사들이었다. 중앙일보는 댓글 정책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지난 3월 20일 중앙일보는 <"댓글, 2시간이면 없는 여론도 만든다"> 기사에서 "포털은 댓글 전쟁을 방관하고 있다"며 "댓글을 '좋아요' 순으로 배열해 경쟁을 부추긴다. 관심을 끄는 댓글엔 '다수가 평가 중인 댓글입니다. 위 댓글에 대한 의견은?'이라는 안내 문구도 붙인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댓글을 보여주지 않거나 언론사에 맡기고 있는 글로벌 포털들의 경향과 반대"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4월 18일 중앙일보는 <'매크로' 조작 못 막은 네이버…전문가 "손님끌기식 댓글 정책 수술해야"> 기사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서 포털들의 기술적인 한계가 드러나면서 국내 댓글 정책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4월 26일에는 아예 네이버 댓글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앙일보는 <네이버가 댓글 없애야 하는 4가지 이유> 칼럼에서 "(드루킹 사건의) 근본 해결책은 네이버 뉴스 댓글을 없애는 것"이라며 "댓글의 순기능보다 폐해가 너무 커졌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댓글 폐지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언론이 아니라 플랫폼인 네이버는 (댓글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중앙일보 4월 26일 <네이버가 댓글 없애야 하는 4가지 이유>

중앙일보가 이러한 주장을 펼친지 수개월이 흘렀다. 네이버는 뉴스 댓글 운영을 개별 언론사에 맡기기로 했다. 언론사는 자신들이 네이버에 송고한 기사의 댓글 정렬방식, 노출여부 등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최신순, 순공감순, 공감비율순, 답글순, 과거순 등 기사 하단에 배치할 5가지 댓글 정렬방식도 복수로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앙일보는 어떤 댓글 정렬방식을 택했을까. 폐지 대신 댓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중앙일보는 정치섹션 기사 하단의 댓글을 댓글 열어보기 아이콘 클릭 없이 바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선택할 수 있는 5가지 정렬방식을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중앙일보는 사회, 경제, 국제, 생활, 오피니언 등 5개 섹션에서는 최신순, 순공감순, 공감비율순 3개 방식의 댓글 정렬방식을 선택했다. 네이버 댓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댓글을 없애는 게 근본 해결책이라던 중앙일보가 선택한 댓글 정렬방식이다.

▲중앙일보 정치 섹션 뉴스 댓글 화면 (사진=네이버 뉴스 화면 캡쳐)

다른 언론사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국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은 정치 섹션 기사에 하단에 댓글을 노출하고 순공감순(공감 댓글-비공감 댓글) 정렬을 우선 노출하고 있다. 이들은 순공감순 댓글 정렬의 부작용에 대해 비판을 해오던 언론사다.

한국일보는 1월 22일 <댓글 의혹 수사 의뢰한 네이버, 책임의식은 충분한가> 사설에서 "댓글에 공감, 비공감을 표시하는 장치는 표현의 자유를 넓히는 효과가 있겠지만 그보다 이용자를 자사 사이트에 오래 머물게 하려는 상업적 논리가 앞선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5월 9일 <네이버, 뉴스편집 개편만으로 댓글 폐해 막을 수 있겠나> 사설에선 공감·비공감을 "댓글 조작을 조장했던 이런저런 장치"라고 표현했다.

한국경제는 4월 24일 <공감순 나열·ID 불법거래·매크로…댓글 여론조작 부른 ‘3대 적폐’> 기사에서 순공감순 댓글 정렬에 대해 "네이버가 ‘댓글 전쟁’을 조장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네이버 댓글창은 '여론의 창' 아닌 '어그로 전쟁터'> 기사에선 "기사는 대충 읽으면서 네티즌끼리 독한 댓글로 치고받는 ‘싸움 구경’을 더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았다"면서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악의적인 글을 남기는 이른바 ‘어그로’도 하나의 놀이처럼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의 댓글 정책 변화 안내문. (사진=네이버 뉴스 화면 캡처)

서울경제는 5월 3일 <"여론몰이 깃발 꽂자"...10분 안에 승부 나는 '베스트 댓글'> 기사에서 순공감순 댓글 정렬을 여론몰이의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서울경제는 정치 섹션을 포함한 모든 기사의 댓글을 순공감순으로 정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문화일보는 <포털 댓글 기능 폐지 않는 한 ‘매크로’ 차단 불가능>·<‘댓글 꾼’ 놀이터 된 포털… 0.015%가 인터넷 여론 좌지우지> 등의 보도에서 네이버 댓글 정책을 비판했었다. 현재 문화일보는 정치 기사 하단에 댓글을 노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 같은 언론사들의 댓글 정렬방식 선택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최진봉 교수는 "댓글 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사가 선택권을 가진 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댓글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갔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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