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동이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어느 틈엔가 동이는 연잉군의 배필도, 장무열에 대한 뒷조사도 완벽하게 준비해두었다. 그것도 모른 채 초짜 중전 인원왕후는 연잉군을 궁궐에서 쫓아내기 위한 외통수로 착각한 혼례를 강행시킨다. 결과적으로 소론과 인원왕후는 연잉군을 내쫓기는커녕 오히려 숙종의 결심을 자극하는 계기를 주고 말았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벌어질 이이명과의 독대를 대신할 동이와 숙종과의 대단히 위험한 대화가 오고가게 했다.

숙종은 연잉군 문제가 무사히 해결되고 동이와 함께 후원 산책을 나선다. 신하야 사관의 배석이 필수지만 왕과 후궁과의 산책은 그런 법도에서 자유로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산책에서 숙종은 동이에게 왕으로서, 아비로서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동이 역시도 대답하기 지극히 곤란한 질문이다. 적어도 이 동이독대만은 작가의 절묘한 한수였기에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역시나 동이의 대답이 왕세제라면 억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장희빈의 죽음을 목격한 세자가 보위에 오를 경우 벌어질 피바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있지만 장희빈 사사 후 20년이 지난 정유독대 시점까지 병약한 경종을 숙종은 못마땅해 했다. 게다가 후사도 잇지 못했으니 숙종은 오랜 고민 끝에 경종이 아닌 연잉군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벌어진 것이 정유독대라고 볼 수 있다. 정유독대 이후 곧바로 세자의 대리청정 교지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대리청정이 긍정적으로 보자면 보위를 이을 세자에게 국정경험을 쌓게 하는 훈훈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 세자의 무능을 밝혀 폐세자의 구실로 삼을 수도 있는 무서운 독배가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사도세자라 할 수 있다. 사도세자는 대리청정을 계기로 역모에 몰리게 되고 결국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영조가 훗날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것도 어찌 보면 아버지 숙종에게 배운 독수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유독대는 세자를 버리기 위한 숙종의 승부수였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숙종 사후 경종은 정유독대의 장본인 이이명을 포함한 노론 중심대신 네 명을 죽이고 수백 명을 처벌하는 신임사화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신임사화에도 노론의 무리수가 있었다. 폐세자 전략이 숙종의 사망으로 수포로 돌아가자 위기를 느낀 노론이 왕세제 주청을 올린 것이다. 경종이 서른 넘도록 후사를 얻지 못했고, 인원왕후 역시도 마찬가지라 타당성은 갖췄으나 결국 사화의 계기를 제공하고 말았다.

숙종의 폐세자 의도는 자신의 이른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노론의 왕세제 전략은 경종의 죽음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병약하다 하나 경종이 즉위하고 4년 만에 죽지 않고 더 오래 살았더라면 영조대왕의 존재는 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종 독살설이 근거를 떠나 정황상 설득력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숙종은 왜 경종을 버리려고 했을까? 무엇보다 생모 장희빈의 사사를 경험한데다가 병약하여 붕당에 휘둘릴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특히나 부관참시까지 서슴지 않았던 연산의 전례가 두려웠을 것이다. 동이를 만나 연잉군의 갈 길이라는 선문답 비슷한 말로 동이에게 유도질문을 던진 숙종이 그런 말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후사가 없는 경종의 트라우마는 누가 봐도 걱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동이를 총애하는 숙종 입장에서 자연 연잉군에게 마음이 가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이미 국본에 오른 세자를 쉽게 폐위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동이의 목숨을 건 결단이 필요로 한 오랜 투쟁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잉군의 갈 길 운운한 숙종은 동이에게 뭔가 굳은 결심을 요구하게 될 거라 보인다. 물론 여전히 착한 동이 케릭터를 유지하려고 하며 경종과 연잉군 둘 모두 왕위에 오르게 하자는 제안을 할 것이다.

그러나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경종과 영조 모두가 왕위에 오르게 하자는 말 자체가 평화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것이 문제다. 대궐귀신이 다 됐다는 동이의 평화적 왕세제론보다는 차라리 폐세자로 선택하는 것이 개연성도 있거니와 착한 동이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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