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나누고 우리 편은 단결시키는 게 ‘프레임 전략’의 핵심이다. 요즘 여의도를 달구는 이슈들을 종합해보면 여기에 해당하는 맥락이 눈에 들어온다. 주로 보수야당 중심의 움직임이 부각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문재인 정권의 후반기 상황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프레임 짜기는 안보와 경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3당합당 이래 보수세력이 ‘반공보수’와 ‘시장보수’의 연합으로 존재를 유지해왔는데 박근혜 정권 이후 이 틀이 깨졌으므로 이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인식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상황을 30일 자유한국당이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작성된 연구용역결과 보고서의 내용과 함께 보면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자유한국당이 적대적 대북관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중도층의 지지 상실 요인이지만 경제와 관련한 대목에선 그렇지 않다고 봤다. “경제 및 복지 쟁점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한국당에 대한 지지철회를 초래한 것은 아니다”란 것이다. 그래서 강경한 대북 안보 프레임을 버리고 건설적이고 차별화될 수 있는 경제정책 등을 내세우는 게 대안이라는 게 이 보고서의 주장이라고 한다.

이 보고서는 의원 총회 자리에서 발표됐는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던 모양이다. 어차피 다 아는 얘기를 거창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상당수 의원들이 자리를 이탈해 김성태 원내대표가 쓴웃음을 지어야 할 정도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반응이 이렇게 미적지근한 이유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앞서 표현한 ‘반공보수’, 계파적으로 보면 구 친박계의 반발이 문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김병준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자유한국당은 ‘국가주의 대 자율주의’ 등의 이념구도를 상정하며 상기의 보고서가 주장한 것과 유사한 행보를 보이는 듯 했다. 일부 논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결국 혁신은 인적청산을 동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친박계를 어찌할 것이냐의 문제가 번번이 다시 쟁점이 되었다. 전원책 변호사가 조강특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태극기 부대 입당 문제 등 때문에 이 점이 새로운 변수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유한국당 내의 잠복해있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에 불과하다.

대북 정책에 대한 태도 차이는 자유한국당 뿐만이 아니라 바른미래당의 입장에서도 분열 요인이 되고 있다. 거칠게 나눠 국민의당 출신 인사들은 이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반적 평가나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 처리 등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내보이고 있지만 바른정당 출신들은 이에 대한 얘기가 한 마디 나올 때마다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를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하기 때문에 계산이 더 복잡하다.

이런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보수야당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공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보수세력은 벌써 며칠째 임종석 비서실장이 선글라스를 쓰고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에 비서실장이 청와대를 비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물론 반론이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굳이 ‘선글라스’를 ‘자기 정치’와 연결하고 차지철, 최순실의 사례까지 동원해 비난하는 것에는 나름의 의도가 있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오후강원도 철원군 육군 5사단 비무장지대 GP 고가초소를 방문해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의도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청와대가 주도하는 정책 아젠다의 배후에 ‘전대협 출신’으로 요약되는, 친북적 학생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최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보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먼저 만났다고 해서 화제가 된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보수세력은 최근 청와대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적 과속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미국의 정책 담당자가 ‘배후’와 직접 대화하기 위해 온 게 아니겠냐는 거다.

국정감사에서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기업인들의 방북 당시 “목구멍으로 냉면이 넘어 가느냐”고 말한 사실이 쟁점이 된 것은 ‘운동권 출신’들이 주도하는 정부의 북한에 대한 저자세가 기업에 부담을 안기게 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평화가 경제라는 슬로건을 뒤집어 “경제가 평화다”란 구호도 내놨다.

‘운동권 출신 참모’라는 꼬리표는 최근 제기된 공공기관 채용 비리 의혹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 이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문제로도 직결된다. 보수언론은 연일 “운동권 출신들이 주도하는 정부가 민주노총 등 노조 기득권을 챙겨주느라 청년들의 취업 기회가 상실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즉, 보수세력은 이러한 프레이밍을 통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앞서 언급한 ‘반공보수’와 ‘시장보수’ 사이의 접점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주요 타깃이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차기’를 둘러싼 여당 내의 갈등구도를 부추기는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임종석 비서실장의 행보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화를 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근거가 거의 없는 걸로 보이는데, 두 사람이 모두 범여권 차기주자로 꼽힌다는 현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를 실은 것으로 생각된다. 중앙일보 등은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과 이낙연 국무총리를 ‘차기’로 보고 있지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고 있어 갈등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봤는데, 이런 해석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대중적 인기 속에서 그동안 잠복해있던 범여권 내의 대립구도를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 조선일보가 29일부터 태양광 발전의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제기하고 정동영 대표를 비롯한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 내 전북 지역 의원들이 반발하는 상황은 ‘프레임’의 좀 더 공세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정동영 대표는 “새만금 비전의 공항, 항만, 국제협력단지 등에 대해 대통령이 구체적 의지를 밝혔어야 하는데 재생에너지 중심이라는 얘기만 강조해 실망이 크다”고 했는데, 이는 예산정국을 앞두고 야권이 ‘반문재인 전선’ 형성의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이 이 상황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보수세력에 맞서는 전선을 형성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다. 냉혹한 현실정치의 논리상 이것은 명분과 실리 양쪽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명분은 ‘중단 없는 개혁’이다. 정부 여당은 ‘속도조절’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건 오히려 개혁 의지를 의심하게 할 뿐이다. 일부 정책에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면 다른 방면에서 개혁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완해야 한다. 국정감사를 통해 필요성이 제기된 이른바 유치원 3법 문제나 사법농단 문제에 대한 특별재판부 설치 등은 좋은 재료(?)다. 여기에 여당 입장에선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공공기관 채용 비리 등에 대한 국정조사 문제에 전향적 입장을 더한다면 좋을 것이다.

실리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정당들은 생존을 위한 선거법 개정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연말이 되기 전에 가시적 성과를 내지 않으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에서의 원심력이 강화되고 양당제적 구도가 다시 강화되는 수순이 이어질 것이다. 양당체제로의 회귀는 정부 여당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일일지 모르지만 앞서 길게 언급했듯 보수세력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소탐대실의 결과가 될 수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무슨 일이 있어도 선거법 개정을 이루겠다고 발언했는데, 그 말대로 이번에야 말로 이 해묵은 과제에 대한 성과를 내야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에도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다. 할 말은 많지만 성과로 한 해가 마무리 되리라는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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