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계속 하면서 만나는 교수들, 선생님들을 보며 느끼는 점은 학문을 익히고 그것을 전달하는 개인의 역량이 항상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지식과 연구 성과의 깊이가 엄청난 사람이 막상 강의 전달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고,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유능한 강의자도 실망스러운 저작 활동으로 얄팍한 실력이 들통 나기도 하죠. 이렇듯 실력과 경험이 많다고 해서 뛰어난 코치나 선생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 두 가지 활동이 필요로 하는 재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역에서의 빛나는 경력이 한없이 기대치를 높이거나 특정한 편견을 만들어 또 다른 영역에서의 모습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이 있구요.
이제 막 가수의 경력을 시작하는 이들을 평가할 자격이 있느냐의 다소 짓궂은 질문에서 엄정화는 쉽사리 부인할 수 없는 존재감을 뽐냅니다. 오랜 활동경력과 유능한 배우로서의 연기 활동 와중에도 여전히 다양한 뮤지션, 후배들과의 협업과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대를 지켜온 그녀는 모든 여자 댄스 가수들이 존경하는 선배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멋진 롤모델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가요계를 지배했던 여자 솔로가수의 계보를 따진다면 분명 그 가운데에는 엄정화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을 거에요.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 선배로서의 충고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슈퍼스타K가 심사위원으로서 그녀에게 기대했던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겠죠.
하지만 정작 방송에서의 그녀는 심사위원으로서 아무런 특색도, 차별성도, 설득력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컬로서의 발성과 음색,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이승철이나 본업인 작곡, 작사, 프로듀서까지 감당하는 뮤지션으로서 종합적이고 깐깐한 판단력을 자랑하는 윤종신에 비해 엄정화가 가진 색깔이 전혀 보이질 않아요. 그녀의 점수는 어떤 일관성도 찾아보기 힘들고 말하는 심사평은 기분이 좋았다, 느낌이 편했다, 행복했다는 식의 감상 위주의 말들뿐입니다. 그녀는 그런 개인적인 감상을 말해주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시청자들도, 제작진들도 가수 엄정화에게 기대하는 것은 심사위원 중 유일한 댄스가수로서의 노하우, 여성으로서의 감성,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선배로서 힘들게 꿈을 이어가고 있는 참가자들을 품어줄 수 있는 여유와 따스함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정작 그녀는 공개방송 첫 주에 춤과 댄스를 동시에 소화한 김소정과 이보람을 보호하거나 적절히 충고해주지 못했고, 반드시 그녀의 책임만은 아니지만 동적인 무대를 구성해줄 수 있었던 이들의 탈락은 남은 참가자들의 어정쩡한 댄스를 가미한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이번 주에도 약간의 춤을 가미했던 후보자들의 무대 구성이나 안무, 스타일,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그녀만이 할 수 있었을 댄스 가수로서의 세세한 지적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저 이번에도 역시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는 두루뭉술한 감상이 전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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