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충격적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현지시간 27일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은 명백한 증오범죄로 보인다. 11명을 살해하고 6명에게 부상을 입힌 범인 로버트 보어스는 범행 직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망상적 내용의 글을 남겼다. 유대인 난민의 미국 정착을 돕는 단체인 히브리이민자지원협회가 침략자들을 받아들이기로 해 ‘우리 사람들’이 학살당할 위기에 있기 때문에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총기를 난사하기 직전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고 외쳤다고 한다.

그가 무기로 사용한 것은 총기규제 논의의 단골메뉴인 AR-15 소총과 권총 3정이었다. 때문에 총기규제 입법 관련 논의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물론 미국의 총기 규제는 완전한 형태로 실현되어야 한다. 정 어렵다면 학살에 흔하게 사용되는 종류의 소총만이라도 규제가 가능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 총기규제 입법이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중단 없는 노력이 지속되는 게 중요하다.

총기 규제만큼 중요하게 다뤄볼만한 것은 범인이 갖고 있는 전형적 세계관이다. 유대인이 백인 기득권을 위협한다는 서사는 낯설지 않다. 아이러니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와 ‘유대인’들과의 관계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는 유대인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백악관 역시 범인의 잠재적 테러 대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실제 범인은 총격 이틀 전 소셜미디어에 백악관을 겨냥해 “유대인에게 감염돼 있는 한 MAGA(트럼프의 선거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는 없다”고 적었다고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혐오를 재생산한 게 사태의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물론 옳지만, 앞서와 같은 이유 때문에 상대적으로 온건한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완전한 진실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가장 괴이한 극단주의자들은 실제 트럼프 행정부 내의 권력게임에서 패배했다. 한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극우주의적 행보를 가속화시킬 장본인으로 여겨졌던 스티브 배넌은 권력의 중심에서 일찌감치 밀려난 뒤 유럽과 남미를 종횡무진하며 ‘혁명가’ 행세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트럼프 열성 지지자가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인사들을 겨냥해 폭발물 소포를 보낸 사건 역시 누구에게 유리한 효과로 이어질지 따져보기 어렵게 만든다. 민주당 핵심 인사들은 전통적인 선거공식대로 중간층이 공화당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나 오히려 공화당 지지층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사례를 보면 대개 중간선거 결과는 하원에서 야당이 승리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위와 같은 구도 때문에 상하원 모두에서 일방적 승리를 거두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상식적인 우파를 자처하던 공화당 주류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과 밀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는 진실을 무시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지난 미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사기꾼”이라며 비난했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유타주 상원의원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 의사를 확인해야만 했다.

일리노이에서 유세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공화당 지지층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는 것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당장의 고통을 야기할 순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무역적자와 일자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거라는 주장이 정치적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모든 경제적 쟁점을 중국 문제와 연관 지어 설명하려고 드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중산층에 대한 감세를 공약해 ‘이해관계’의 선거 구도를 명확히 함으로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두 번째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문제에 대한 변하지 않는 단호한, 그러면서 기만적인 태도이다. 이른바 ‘캐러밴’이라 불리는, 미국을 향하고 있는 수천명의 중남미 이민자들은 공교롭게도 중간선거 직전 미국에 도달할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현역 군인을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들 중 중동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올려 또 다른 논쟁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런 행위는 상식의 눈으로 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극단적인 공화당 지지자의 시각으로 보면 엘리트 정치인들이 쉬쉬하는 진실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 번째는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형성된 전형적인 ‘백 래쉬’ 움직임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과 여성주의자들이 브렛 캐버노 대법관 낙마를 노리고 ‘미투 폭로’라는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원에 난입해 반대 시위를 하다 체포된 여성들을 트럼프 대통령이 ‘폭도’로 규정한 것은 공화당 지지자들의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종합하면 이번 중간선거는 감세 혜택을 보는 자본가 및 중산층, 배외주의에 매료된 노동자 및 농민들, 여성과 소수인종 등에 의해 ‘역차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백인 남성들이 이루는 ‘트럼프 연합’이 공화당 주류를 접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시각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도덕, 윤리를 말하는 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태도는 위선적인 엘리트주의의 산물일 따름이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미국의 주요 정당이 극우포퓰리즘에 완전히 잠식될 위기에 처한 현상은 세계적 추세의 반영이다.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가 당선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건 모두 사회적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극우주의만이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대중적 믿음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이러한 세계적 추세로부터 우리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1만5천명의 집회신고를 내놨지만 추위와 허기 속에서 100명도 안 되는 사람을 모으는데 그쳤다는 ‘또 다른’ 혜화역 시위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인터넷 공간에서 스스로 수세에 내몰렸다고 생각하는 일부 남성 이용자들은 운동권 출신의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에 이끌리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에 의해 다방면에서 자신들이 피해의 당사자가 되고 있다는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이들이 구축한 서사의 구조물을 분해해서 사리에 맞게 재구성하는 노고를 진보정치가 감당하지 않으면 거리에 나온 몇 십 명의 남성들은 그 몇 배 또는 몇 십 배로 불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젠가 ‘한국의 트럼프’를 탄생시키는 성과를 거둘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국의 트럼프’는 ‘태극기 부대’가 아니라 ‘어제의 진보’일 수도 있다. 미국의 난장판 선거를 남 일 보듯 할 수만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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