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소소한 재미 찾기로 돌아갔다. 제작비라야 전세버스 하나 빌린 것이 전부인 것이 거대한 장기 프로젝트보다 더 무한도전답다는 칭찬이 많다. 물론 그것에 충분히 동의한다. 특히 개구기(입을 벌려주는 기구)를 낀 채 커피를 주문하는 벌칙은 아주 간단한 도구 하나로 큰 웃음을 줘서 향후 다른 예능이나 코미디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마치 토크쇼를 하듯이 좁은 버스 안에서 멤버들이 치고받는 애드리브가 깨알같은 재미를 주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웃음 포인트가 다르겠지만 박명수가 여자 역할을 하기로 하고 정준하와 꼭 부둥켜안고 햄버거를 사러 간 벌칙은 아주 긴 웃음폭탄을 쏟아냈다. 특히나 말 한마디 끝날 때마다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하는 장면은 보고 또 봐도 웃음이 터졌다. 워낙 준비한 벌칙이 많아 모두 짧게 처리됐지만 살리자면 그것만 갖고도 상당히 긴 시간을 끌어도 충분했을 것이었다. 무한도전 5년 내내 티격태격했던 하와 수의 사랑이야기로 언제 또 발전될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다.

무한도전 빙고게임은 식상한 말로 과연 무한도전다운 포맷의 웃음을 주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다만 인간 화투만 없었다면 완벽했을 무한도전이었다. 한 언론에서 사행성 문제를 짚고 나섰다. 신정환 문제로 도박에 대해 민감한 시기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 벌칙은 하지 않거나 편집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사행성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가학성에 대한 우려다. 물론 성인이 아닌 청소년들에 대한 걱정이다.

무한도전을 무조건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논리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너는 고스톱 하지 않느냐?” “가족들이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고스톱인데 뭐 어떠냐” “정부가 인정한 도박장이 있고, 인터넷에 온통 도박 사이트가 있다. 그것들 먼저 없애랴” 등이 된다. 그리고 이런 모든 말을 집약하면 “너 무도 안티지?”가 된다. 방송이 지켜야 할 윤리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안티행위라면 나는 기꺼이 안티가 될 것이다.

사행성 문제는 아닌 게 아니라 국민오락화된 고스톱이라는 점에서 넘어갈 수도 있다는 반론이 가능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전 연령대가 즐기는 예능에서 버젓이 화투를 치는 모습은 방송윤리에 보루로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다. 이미 드라마에서 충분히 막장을 쏟아내는 상황이지 않는가. 특히나 사람을 엎드리게 해서 그 등짝을 깔판 삼아 화투를 치는 것은 분명 윤리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리적 문제와 더불어 이를 청소년들이 따라할 것에 대한 문제도 우려된다.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면 인간 화투깔판이 아무렇지 않은 즐거움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강제적인 상황이라면 인간적으로 대단히 큰 모멸감과 굴욕감을 느낄 상황이기 때문이다. 방송이라는 상황에서도 정준하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던 것은 누구라도 그렇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가끔씩 가학성 문제로 논란의 도마에 오르기도 하는데 이번 정준하 고스톱 역시도 그런 불유쾌한 요소를 안고 있었다.

또 하나의 의심은 무도 제작진이 이런 논란을 모르지 않았을 거란 것이다. 사실 빙고게임 편에서 정준하 고스톱은 재미 순위로 따지자면 상위에 올려놓아야 하겠지만 이것 말고도 빵빵 터진 것들이 많아서 이 몇 분 정도는 잘라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편집을 포기했을지는 몰라도 그 장면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정준하 고스톱이 사행성, 가학성 등에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무한도전 제작진은 단발 논란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걱정하고 진단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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