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 5월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박준동)이 문제제기한 '조선일보 하청직원 해고사태'가 6개월 째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은 "조선시대엔 서자 차별이 있었지만 조선일보엔 하청 차별이 있다"고 사측을 비판했다.

지난 5월 2일자 조선노보에는 결혼을 앞두고 돌연 해고된 조선일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연이 실렸다. 13년차 조선일보 조판팀 직원이었던 A씨가 '휴무를 줄이라'는 사측의 요구에 반발하다 해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관련기사▶조선일보에서 결혼 앞두고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연)

(사진=연합뉴스)

당시 조선일보 노조가 꼽은 해당 사태의 근본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하려는 사측의 '꼼수'였다. 조선일보 조판팀은 현재 '인터비즈'라는 파견 전문업체 소속으로, 조판팀 직원들은 비정규직이다.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해 최저임금이 월 20만원 가량 올랐지만, 조선일보가 기본급을 올리고 야근수당을 줄이는 방식으로 총임금 인상을 막았다는 것이다.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사측이 '휴무를 줄이겠다'며 노동 강도까지 높이자 참다 못한 직원들이 거부했고, 결국 해고사태까지 발생했다는 게 노조의 비판이었다. 당시 사측은 "권고사직시킬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통일부의 조선일보 기자 취재 불허 사태에 대한 노보기사 논란으로 편집권을 내려놓은 박준동 위원장은 25일 <갑질폭로 6개월… 사측은 그냥 뭉개고 있다>는 제목의 메일을 전 직원에게 전송했다. 노조가 문제를 제기한 지 반년이 지났으나 사측은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최저임금 인상분 반영 등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위원장은 "노보의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틀렸다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는다"며 "선수들끼리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결기가 있어야 한다. 삿대질만 하다 끝나선 안 된다. 중간에라도 승복하든지 아니면 '손모가지'를 걸고 끝까지 가려야 신사도가 자리 잡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체크해야할 팩트가 많은 것도 아니다"라며 따져 물었다. ▲조판팀의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이었는지 ▲매년 최저임금이 오를 때 수당을 깎아 기본급을 올리는 편법을 사측이 썼는지 ▲10년을 다녀도 월 200만원이 안될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려 직원들이 울분에 쌓여 있었는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본사 간부들이 업무량을 늘리고 근무기강을 잡겠다며 소집한 회의에서 언쟁이 있었는지 ▲본사 간부들이 '팀장을 포함해 다섯 명을 자르겠다'고 밀어붙였는지 등을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사실 사측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외통수 상황이었다"며 "해고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해고했다고 주장했으니 직접 고용관계인 '위장도급'을 인정한 셈이고, 위장도급이 아닌 다른 회사라고 주장하기엔 간부들의 해고 개입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이 조선일보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해고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회사가 아무런 수습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간부들은 회사의 방침에 따랐을 뿐, 회사가 미필적 고의에 의해 갑질을 조장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 위원장은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노동자, 최근 12년만에 복직한 KTX 승무원들 사례를 언급하며 파견·하도급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봄이 왔지만 조선일보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겐 볕조차 들지 않았다. IMF 이후 이 사회는 원청과 하청 둘로 쪼개졌다. 갈수록 격차는 커진다. 양극화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사내하청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조선시대엔 서자 차별이 있었고 조선일보엔 하청 차별이 있다"며 "그 중에서도 사내하청은 철저한 갑을 관계의 구조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같은 회사 직원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래는 박 위원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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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폭로 6개월... 사측은 그냥 뭉개고 있다

해고 노동자 복직 타진도 없고 최저임금 인상 편법 시정도 안돼
조선시대엔 서자 차별 있었지만 조선일보엔 하청 차별 있는 셈

지난 5월2일자 노보는 청첩장 돌리는 날 졸지에 해고 통보받은 동료의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전했다. 그녀가 회사를 떠난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사측은 지금까지 그녀에게 복직을 타진하지도, 관련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분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고 있다.

노보의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틀렸다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는다. 조선일보의 ‘국정원 고위층 방북’ 기사가 오보라고 해놓고 세부 사실에 대한 진위를 따지지 않는 청와대처럼 낙인찍기만 하고 모르쇠로 넘어가려는 것이다. 선수들끼리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결기가 있어야 한다. 삿대질만 하다 끝나선 안 된다. 중간에라도 승복하든지 아니면 ‘손모가지’를 걸고 끝까지 가려야 신사도가 자리 잡는다.

체크해야할 팩트가 많은 것도 아니다. 우선 그녀가 속한 팀의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이었고 매년 최저임금이 오를 때 수당을 깎아 기본급을 올리는 편법을 썼느냐이다. 그래서 10년을 다녀도 월 200만원이 안될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려 그들이 울분에 쌓여 있었느냐이다.

울분의 원인은 현 정부에 있는 지도 모른다. 이 땅의 기득권 지배층이 어떤 분들인지 모르고 섣불리 최저임금을 올려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월급 20만원 올리는 것을 아끼려고 경비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민들이나 그런 행위를 두둔해 ‘최저임금 인상 탓에 노동자들이 더 힘들어진다’고 쓸 정도로 논리적인 언론사들을 만만하게 본 것이다. 무인 경비 기술의 발달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종을 지적하는 합리적 언론을 기대한 순진함이 잘못이다. 부작용은 침소봉대 되어 이제 최저임금 인상이 이 나라 경제위기의 진앙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심지어 1조원의 이익잉여금을 쌓아놓은 언론사 안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지출을 막기 위해 서무 직원 수를 줄이고 식당 운영시간을 줄여 이용자와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시키고, 수당 돌려막기로 임금을 동결하는데 누구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논하겠는가?

두 번째 팩트는 울분에 쌓여있는 그들을 대상으로 본사 간부들이 업무량을 늘리고 근무기강을 잡겠다며 소집한 회의에서 언쟁이 있었느냐이다. 매년 임금은 그대로인데 업무는 늘리고 휴무를 줄이라고 하니 선배 조판팀장이 본사 간부들에게 항변했고 보다 못한 후배들도 동조해 의견을 내놨다(부끄럽게도 편집국에선 나름 엘리트라는 부장들이 후배들의 노동조건 악화를 막기 위해 그처럼 용기 있게 윗사람과 설전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상명하복 문화의 조직에선 약자가 할 말을 하면 하극상으로 인식한다.

세 번째 팩트는 본사 간부들이 “팀장들을 포함해 다섯 명을 자르겠다”고 밀어붙이다가 파견업체 관리자의 만류로 결국 2명을 해고했느냐이다. 간부들이 해고 사유로 제기한 노동자의 인성 문제는 진실도 아니고 해고 사유도 안 된다. 게다가 위장도급 관계가 아니라면 다른 회사 노동자들의 해고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월권이다.

사실 사측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외통수 상황이었다. 해고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해고했다고 주장했으니 직접 고용관계인 위장도급을 인정한 셈이고 위장도급이 아닌 다른 회사라고 주장하기엔 간부들의 해고 개입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몇몇 간부들의 일탈이나 갑질의 문제가 아니다. 간부들은 회사의 방침에 따라 관리자로서 직분을 수행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회사가 아무런 수습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회사가 미필적 고의에 의해 갑질을 조장한 셈이다.

조선시대엔 서자 차별이 있었고 조선일보엔 하청 차별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내하청은 철저한 갑을 관계의 구조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같은 회사 직원이라고 부를 수 없다.

삼성전자를 위해 가가호호 방문해 서비스하는 노동자들도 삼성전자 직원이 아니었다. 질책은 삼성전자로부터 받지만 하청업체의 재하청업체 직원이었다. 2명이 죽어나간 끝에 겨우 하청업체 직원이 됐다. KTX 여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KTX를 타고 다니며 서비스했지만 직접 고용은 거부당했다. 파업과 소송 끝에 대법원은 KTX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그 판결이었다. 1, 2심에서 이겼다가 좌절한 노동자는 목숨을 끊었다. 그들도 이번에 12년 만에 가까스로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됐다.

그들에게는 봄이 왔지만 조선일보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겐 볕조차 들지 않았다. 부당해고와 최저임금 갑질이 바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IMF 이후 이 사회는 원청과 하청 둘로 쪼개졌다. 갈수록 격차는 커진다. 양극화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사내하청을 금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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