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어제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했고, 제2경기 연장 11회 포함 더블헤더 도합 20이닝을 치렀기 때문에, 오늘 LG전에 굳이 주전 멤버들을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전준호가 선발로 투입된 것은 SK 입단 이후 처음이었고, 야수들 또한 김재현, 박정권, 박재상 정도를 제외하면 6명이 1.5군급이었습니다. 반면 LG는 실질적인 제2선발 박현준이 등판했고, 이학준과 황선일을 제외하면 7명의 야수가 주전이었습니다. 즉 LG 베스트 멤버와 SK 1.5군의 맞대결이었는데, LG는 3안타의 빈공으로 3루조차 밟지 못하며 2시간 20분 만에 시즌 12번째 완봉패의 굴욕을 당했습니다.

만일 오늘 LG 타선이 초반에 전준호를 공략했다면, SK는 이후 전준호보다 더욱 공략하기 쉬운 2군급 투수들을 올리며 경기를 포기하는 방향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LG 타선은 일반적으로 좌완 투수와 낯선 신인급 투수에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현대 시절부터 줄곧 상대해온 우완 투수 전준호에게 6이닝 2안타 1볼넷 무득점의 빈공에 허덕인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LG 주전 타자들은 SK의 1.5군 타자들에도 못 미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넥센전과 그제 삼성전처럼 안타가 많이 나오는 날은 집중력이 떨어져 적시타가 나오지 않고, 오늘처럼 안타가 나오지 않으면 아예 완봉패를 당하는 것이 LG 타선의 현주소입니다. 올 시즌 LG 몰락의 최대 원인은 선발 투수진의 붕괴이지만, 그렇다고 타선이 제몫을 다한 것도 아닙니다. 시즌 전 한껏 기대를 부풀렸던 소위 ‘빅5’는, 별도의 포스팅(‘LG 빅5의 허상’)으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허상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타선 역시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고 근본부터 대수술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선발 박현준은 6.1이닝 8피안타 1볼넷 3실점으로 데뷔 첫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지만, 집중력이 떨어지는 타선을 등에 업은 LG의 선발 투수로서 퀄리티 스타트만으로는, 그것도 SK를 상대로 승리를 따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결승타는 2회말 1사 후 정상호에게 허용한 2점 홈런이었는데, 최근 박현준은 5경기 선발 등판에서 매 경기 홈런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구위와 구속에 장점을 지닌 박현준이 왜 홈런으로 매 경기를 어렵게 끌어가게 되는지 복기와 보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2회말 박현준이 김재현을 범타로 처리한 후 박종훈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간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박현준은 1회말부터 2회말 선두 타자 김재현까지 네 타자를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안정적인 출발을 보였는데, 박종훈 감독이 올라간 직후 안치용에게 한복판 실투를 던져 좌전 안타를, 이어 정상호에게 결승 2점 홈런을 허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감독이나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은 투수가 난조를 보이는 상황이며, 투수들은 감독이나 투수 코치가 올라온 후 안정을 찾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박현준이 호투하던 와중에 박종훈 감독이 올라왔고, 그 직후 연속 안타로 결승점을 내준 것은 석연치 않습니다. 만일 이순철 해설 위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박종훈 감독이 박현준에게 파워 피칭을 요구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박현준은 지난 경기까지 단 한 번도 6이닝을 넘게 투구한 적이 없어 선발 투수로서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도록 체력을 안배하고 제구를 가다듬는 것이 파워 피칭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불펜이 취약한 LG의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과연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진실은 박종훈 감독과 박현준, 조인성 배터리만이 알고 있겠지만, 호투하던 선발 투수에게 굳이 감독이 올라간 직후 안타와 홈런을 허용했다는 것은 찜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도루왕 레이스를 펼치는 이대형은 6회초 2사 후 볼넷으로 출루해 초구에 도루를 감행하다 피치아웃에 걸려 아웃되었습니다. LG가 2점차로 뒤지고 있었고, 2사 후이기에 득점권에 주자를 두기 위해 도루가 절실한 순간임에는 분명했지만, 초구에 감행한 것은 상대가 SK임을 감안하면 너무나 성급한 것이었습니다.

이대형과 롯데 김주찬의 도루왕 경쟁이 격화되면서 소위 ‘영양가 논쟁’이 거듭되고 있는데, LG에는 이대형을 제외하면 적극적으로 도루를 펼칠 수 있는 선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팀 내 도루 2위 박용택의 도루가 20개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만일 이대형이 타 팀 선수이며 LG 배터리를 상대로 매 경기 적극적으로 도루를 감행한다면 LG가 얼마나 곤란을 겪을지 입장을 바꿔 가정한다면, 도루 능력이 뛰어난 이대형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타율이나 방어율과 같이 어느 정도 관리하면 타이틀을 따낼 수도 있는 비율 스탯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는 누적 스탯이라는 점과 여타 타이틀과 달리 유일하게 부상의 위험이 상존(김주찬은 6월 23일 마산 한화전에서 2루 도루를 감행하다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한다는 점에서 결코 도루왕 타이틀이 폄하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만일 이대형이 올 시즌에도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하면 4년 연속 타이틀 홀더가 되는 것인데, 과연 MBC 청룡 시절부터 LG의 어떤 선수가 4년 연속 동일한 타이틀을 획득했는지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이대형의 도루왕 타이틀은 소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초구에 성급하게 도루를 감행하다 상대에게 간파당해 횡사한 것은 팀으로서도 이대형 개인으로서도 손해였습니다. 특히 타석에 들어선 박용택이 이대형을 위해 충분히 상대 배터리와 승부를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LG는 SK와의 상대 전적에서 3승 1무 14패(승률 0.167)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내년에 가을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SK에 3할 5푼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번의 맞대결 중 한 시즌에 7승도 하기 힘든 천적 관계가 수립된다면 포스트 시즌 진출은 언감생심이고 설령 진출한다 해도 그 팀에게 압도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SK를 상대하기 위한 LG의 최우선 과제는 SK의 좌완 선발 및 계투진(김광현, 전병두, 정우람, 고효준)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결국 좌완 투수에 취약한 LG의 약점이 해소되면 SK와의 상대 전적 또한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완봉패로 시즌 130경기를 치른 현재 12번째 완봉패를 당했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약 10경기 당 한 번 꼴로 완봉패를 당했다는 의미입니다. 비싼 입장료와 귀한 시간을 들여 야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최악의 선물임을 감안하면 결코 내년 시즌에는 완봉패가 이처럼 빈발해서는 안 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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