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새롭게 부활한 단막극 ‘일요드라마 극장’의 첫 작품이 추석 특집으로 방송되었습니다. 주부 김광자를 통해 아이돌 팬덤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유쾌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단막극이 주는 재미와 그 안에 담아내는 사회적인 의미들이 잘 조화된 걸작이었습니다.

아줌마 팬, 날개를 달고 자아를 찾았다

마흔을 넘긴 평범한 주부 김광자 씨는 고등학생인 딸과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부지런히 학교 보내고 출근시키면 다음 할 일이란 특별한 게 없는 광자 씨는 또 다른 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마트에 가서 장을 봅니다. 오늘이 광자 씨에게 다른 날과 달리 특별한 것은 그의 생일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생일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가족과 함께 생일을 보낼 생각에 그저 웃음만 나는 광자 씨는 특별한 그 무엇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시험기간인 딸은 독서실에서 날을 새겠다 하고, 남편은 일 때문에 파출소 직원들과 함께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저 따뜻한 생일 축하 인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그녀에게 그마저도 사치인 삶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런 우울한 날 그녀는 우연하게도 아이돌 가수의 슬픈 생일이란 노래를 듣게 됩니다.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낸 이 노래는 자연스럽게 광자 씨를 움직였고 음반매장에서 테이프를 사서 하루 종일 그 노래를 듣는 것이 낙이 되었습니다.

광자 씨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아픈 마음을 감싸주었던 노래로 인해 아이돌 그룹인 진스를 좋아하게 되고 팬 카페에 가입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대학시절엔 그림만 그리느라 자판도 제대로 쳐보지 못했던 그녀로서는 무척이나 힘겨운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파트에 불법으로 전단을 붙이다 격한 소리를 들어야 했던 학원 원장 선생님의 스파르타식 교육에 힘입어 그녀는 일취월장하는 실력 향상을 보입니다. 오랜 시간 창고에 넣어두었던 캔버스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는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자신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진스의 자화상을 팬 카페에 올리며 일약 스타가 된 광자 씨는 팬 카페 활동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기술들을 습득하며 그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인물로 올라서게 됩니다. 가족들에게는 소외되고 잊혀진 존재가 되었지만, 진스의 팬 카페에서는 나이를 떠나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광자 씨에게는 행복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이라도 직접 진스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소원인 광자 씨는 운명처럼 집안일, 남편 직장 상사일들이 겹치며 진스를 볼 수 없는 게 아쉬움으로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진 행복이라 자위하며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망해서 지역 컴퓨터 학원 강사로 내려가게 된 원장 선생의 한 마디가 광자 씨에게 용기를 주게 됩니다.

"인생이란 놈은 제 뒤통수만 치는 거 빼고는 저한테 해준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니더라구요. 결국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인생이란 게. 이제부터라고 내 체면 따라가지 않고 내 진심 따라 갈 겁니다. 까짓것 용기 한 번 내고 나면은 인생이 뒤통수 친다거니 그런 못난 소리하면서 한 숨 쉴 일은 없을 겁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학원 강사의 한 마디는 광자 씨의 억눌렸던 감정을 깨워버립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일탈을 꿈꾸는 아줌마 김광자씨는 그렇게 꿈을 위해 날개를 달아버렸습니다.

지난 해 MBC 스페셜에서는 '아줌마 그에게 꽂히다'(MBC 스페셜-아줌마, 팬덤으로 자아와 소통을 이루다)라는 방송을 통해 아이돌 팬덤이 되면서 긍정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아줌마 팬들의 변화를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일상에 찌들어 살아가며 자신을 잃어버린 아줌마들이 아이돌의 팬이 되면서 자아를 찾고 자신의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마치 그 프로그램을 보고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결혼하고 한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살아가는 아줌마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무척이나 행복하게 담아냈습니다. 항상 보고 있기에 소통마저 소홀해진 가정과는 달리 같은 주제로 만난 팬들은 깊은 소통을 이뤄내고 있었습니다.

소통이 부재한 사회에 새로운 소통을 이뤄내고 있는 팬 카페 활동의 긍정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이 작품은 부정적인 팬덤이 아닌 자신 안에 숨겨졌던 감정을 끄집어내 소비함으로서 새로운 긍정의 힘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팬을 사랑하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가족과는 달리 자신에게 희망을 주었고, 소외되고 잊혀졌던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쓸모 있는 존재였다는 깨달음은 자아 찾기의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아를 찾고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게 된 광자씨는 그저 드라마 속의 모습이 아닌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성장을 담아내고 이를 통해 잊혀졌던 가족 간의 소통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드라마 명가 MBC의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베스트 극장이 다시 부활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MBC 일요드라마 극장은 5회 동안 실험적으로 방송될 예정입니다.

KBS에 이어 시작된 MBC의 단막극은 정체된 드라마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너무나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광자씨의 용기는 단순히 자신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딸을 변화시켰고, 용기 없이 찌든 삶에 힘겨운 직장 생활을 하던 남편을 긍정의 존재로 바꿔놨습니다.

극 중 광자씨처럼 단막극의 부활은 정체된 드라마의 긍정적인 변화에 커다란 힘으로 다가올 겁니다. 소소한 일상 속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찾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행복 그 이상이었습니다. 김광자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양미경과 드라마의 감초인 김갑수의 농익은 매력은 단막극을 더욱 맛깔스럽게 해주었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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