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는 매년 되풀이되는 익숙하다못해 식상한,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별다른 재미도 없는 추석 특집 예능 프로그램들이기는 합니다. 나오는 이들의 면면만 그 당시의 인기와 스케줄에 따라 바뀔 뿐이지 올해도 어김없이 노래를 하거나, NG장면들을 편집해서 보여주거나, 잘나가는 아이돌이 때를 지어 등장해서 자기들끼리 경쟁을 하거나 뭐 다 그런 식이니까요. 하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의 예능 프로그램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름의 방향을 보여주는, 그리고 그 흐름을 자기 쪽으로 돌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숨어있기도 합니다. 특히나 올해처럼 1.5인자들의 성장이 눈에 띄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죠. 2010년 추석은 1.5인자들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통용되는 수많은 표현과 단어들처럼 1.5인자 역시도 무한도전에서 등장한 말입니다. 비난 개그의 최대치를 보여주었던 무도의 죄와 길 특집에서 프로그램의 중심인 1인자는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단순히 1인자 옆에서 보조 역할만 하는 2인자라기엔 그 존재감이 너무 커버린 박명수가 스스로의 어중간한 위치를 설명했던 것이 이 표현의 출발점이었죠. 하지만 스스로가 점오라고 자인하는 사람은 박명수뿐만이 아닙니다. 자기의 시대를 기다리며 프로그램 전면의 메인으로 나설 날을 기다리는 차기 MC기대주들을 설명하는데 1.5인자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거든요.
1.5인자의 원조인 박명수를 비롯해서 같은 무한도전의 떠오르는 대세 정형돈, 1박2일의 에이스 이수근, 천재 뮤지션 유세윤 같은 이들이 이런 후보군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무한도전, 1박2일, 무릎팍도사 같은 기존의 인기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와 인기를 토대로 그 다음단계로의 진입을 노리고 있는 준비된 일꾼들이죠. 이들은 자신들의 위치만큼이나 유사한 장점과 특기들을 보유하며 언젠가 찾아올 자신들의 전성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막강하기만한 유재석-강호동의 아성을 넘기에는 아직 무언가 아쉽고 부족해 보이지만 이들이 계속 1인자의 뒤만 따라다니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출발점인 개그맨의 혈통에서 상황극을 익혔고, 프로그램의 흐름에 맞게 그것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압니다. 별명의 황제 박명수는 물론 진상쟁이, 건방진 천재 뮤지션, 국민 앞잡이처럼 그를 위한 확실한 자기만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을 뿐더러 이를 이용해서 상대방과의 접점과 관계를 맺는 것에도 용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죠. 모두 자기 이름을 내건 음반 활동을 통해 가수로서의 경력을 가지고 있고, 노래와 춤으로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죠. 그야말로 다방면으로 준비된 예능인. 1.5인자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가 만들어낸 토털 패키지 진행자 예비군의 또 다른 이름이에요.
추석 특집 프로그램이 1.5인자들의 전쟁터가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미 각 방송사마다 확고하게 자리잡은 프로그램들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이상, 고정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잘나가는 1인자들보다는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와 참신함을 가진 이들 1.5인자들이 진행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이런 식의 특집 방송들 밖에는 없으니까요. 시청자들과 방송국의 평가와 반응이 좋을 경우 그 포맷 그대로 정규 방송으로 이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구요. 진행 경험을 쌓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는, 지금의 1.5인자들에겐 이보다 더 절실하고 중요한 방송은 또 없어요.
물론 이들의 경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여전히 그들이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의 자리는 제한되고 한정되어 있을 것이고 설혹 기회를 잡는다고 해도 이미 장수프로그램에 접어든 다른 쟁쟁한 경쟁 프로그램과의 치열한 다툼 속에 무수히 많은 실패와 폐지를 반복하겠죠.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나 좌절을 겪으면서 우린 또 다른 유능한 진행자, 개성 있는 MC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나 지루하고 뻔했던 이번 추석 특집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이런 미래의 1인자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어요.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시간과 함께 같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연예인을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