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적과도 같은 결승 진출이었습니다. 17세 이하(U-17) 여자 축구 대표팀이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스페인에 2-1 역전승을 거둬 여자 축구는 물론 남녀 통틀어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대회 본선에서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부상 투혼에 여러가지 어려움도 많았던 상황이었지만 우리 선수들은 상승세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당당한 경기를 펼치면서 '난적' 스페인을 따돌리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특히 0-1로 뒤진 상황에서 여민지 선수가 전반 24분, 동점골을 넣자마자 벌인 선수들의 단체 골 뒤풀이는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추석날 아침에 경기가 열리는 것을 알고서는 곧바로 한데 모여 카메라가 있는 쪽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세레모니를 펼친 것입니다. 오랫동안 타국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 가운데서도 선수들은 그들의 부모님을 향해, 그리고 자신들을 응원하는 축구팬들을 위해 '정중하게' 큰 절 세레모니를 올려 경기를 TV로 지켜본 팬들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사실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 이들은 공개적으로 TV 화면을 통해 큰절을 하면서 기억에 남을 세레모니를 보여주었고, 또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최고의 경기를 펼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 (코우바<트리니다드토바고>=연합뉴스)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 4강전에서 1-0으로 뒤지다 만회골을 넣은 한국대표팀이 하프라인 부근에 나란히 서 고향에 있는 국민들에게 한가위 큰 절을 올리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실 이 선수들의 재능이 뛰어나고, 역대 어떤 여자대표팀보다 뛰어나다고 입을 모으고 있기는 합니다만 정말 우리가 이들의 큰절을 받을 수 있을지는 우선 제 자신부터가 좀 부끄럽고 미안하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큰절이라는 것이 평소 존경하는 사람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최고의 예우를 갖출 때 하는 인사로 알고 있는데요. 평소에 관심만 있었지 해외 축구나 K-리그만큼 솔직하게 여자 축구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기에 큰절을 할 때 '정말 받아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순수하게 경기를 지켜보는 부모님을 향해 큰절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진 걸 잘 알고 있고, TV로 중계되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을 상황에서 지켜보는 국민들을 향해서도 '감사의 인사'를 올린 것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어 오히려 경기를 지켜본 우리 팬들이 선수들에게 참 고맙고 미안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줬습니다.

지난 7월에 있었던 U-20 여자월드컵 이후 부쩍 관심이 많아진 여자 축구라 하지만 아직 실업 축구를 비롯해서 전반적인 분위기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말이 많습니다. 꽤 높은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기대됐던 여자 축구 WK리그 관중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벌써 U-20 여자월드컵 당시의 감동을 잊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U-17 대회를 시작하면서도 사실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몇몇 언론들만 짤막하게 우리 선수들이 출전한다면서 소식을 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선수들 스스로 관심이 많아지게끔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승승장구를 거듭했고, 토너먼트에 오른 뒤에는 2경기 연속 명승부를 연출해내며 드라마틱하게 결승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그 덕에 다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대한 찬사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런 좋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야 어린 선수들, 그리고 각급 여자 축구 모든 선수들에 힘이 되고 인프라 구축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될지는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국민 정서상 이번 쾌거가 언제까지 기억되고 조명 받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최선을 다하며 세계의 높은 벽을 잇따라 넘어서는 장한 그 모습들 만큼은 정말로 우리들이 오랫동안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일찍 일어나 이날 경기를 지켜보거나 하이라이트로도 지켜보면서 큰절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이번의 성과뿐 아니라 앞으로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도 꾸준하게 지켜보며 응원할 '의무감' 같은 걸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응원이 점점 커지면 선수들은 더욱 힘을 얻고 앞으로도 더욱 성장하면서 예전에 붉은악마 플래카드 문구처럼 'FIFA 랭킹 1위를 차지하는 그날'이 여자 축구를 통해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아름답고 멋진 축구, 그리고 골 뒤풀이를 펼친 17세 이하 여자 축구 대표팀이 대견하고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앞으로 좋은 일들만 정말로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 잘 싸웠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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