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잉군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세자는 밝혀서는 안 되는 자신의 병을 숙종에게 고합니다. 권력을 위해서는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연잉군이 위기에 몰리자 자신을 희생하고 연잉군을 보호하는 세자는 그렇게 자신의 눈앞에서 몰락해가는 어머니를 지켜봐야 하는 슬픈 운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운명을 가진 세자

1. 성군이 되고 싶었던 세자의 눈물

자신의 어머니로 인해 고초를 당하게 된 숙빈을 직접 찾은 세자는 그 길로 숙종을 찾습니다. 권력지향적인 인물이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솔직함은 오히려 숙종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성군이 되고 싶었던 세자는 권력에 집착하는 희빈이 원하는 절대 권력자인 왕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모두를 아우르고 함께 하는, 권력자가 아닌 권력자로서의 왕이 되고 싶었던 세자는 자신을 친 형처럼 따르는 연잉군을 권력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행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 숙종은 당혹스러울 수밖에는 없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진실을 들켜버린, 그것도 세자가 직접 숙종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희빈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더욱 숙빈까지 세자의 병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혼란이 가중되는 희빈에게 찾아온 숙종은 다시 한 번 희빈을 궁지로 몰아갑니다.

세자라는 특별한 존재가 가지고 있는 중대한 병을 숨기고 왕을 능멸한 죄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에만 눈이 멀어 세자의 병은 숨기고 왕자인 연잉군을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계략을 세운 희빈을 숙종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몰락한 남인을 대신해 소론 중신들을 이용해 연잉군과 숙빈을 몰아내려는 시도를 이미 알고 있었던 숙종으로서는 그 원인이 다름 아닌 세자의 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희빈의 간사함에 치를 떨게 됩니다. 한때 무척이나 사랑하고 소울 메이트라고 생각했던 희빈이 권력의 화신이 되었다는 것도 숙종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아픔입니다.

세자만큼이나 사랑하는 연잉군을 사지에 몰아넣으려 한 희빈에 대한 애정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마저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는 희빈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사라진 채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야만 했던 세자에 대한 애틋함만 더해갈 뿐입니다.

세자의 병을 눈치 채고 희빈을 등지고 숙빈의 편이 되려 노력하는 장무열은 소론을 찾아 권력의 지형을 다시 짜려 합니다. 최고 권력자는 바뀔 수 있지만 권력을 가진 자신들의 욕망은 영원히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믿음은 권력을 가지고, 권력을 통해 살아가는 이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니 말이지요.

무한 권력의 중심이 되고자 했던 희빈은 그 권력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지만 권력의 무상함을 아는지 타고난 권력 지향적인 존재가 아닌 숙빈에게 권력은 그저 무모한 탐욕으로 밖에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희빈을 완전히 몰락시킬 수 있는 수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숙빈과 이를 안타까워하며 권력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장무열은 그렇게 서로 다른 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숙종을 이어 왕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진행되어왔던 권력은 커다란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세자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음이 밝혀진 상황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야만 하고 그런 노림수는 모든 가능의 수를 늘어놓을 수밖에는 없게 만들지요.

이런 상황에서 희빈 모의 죄를 알게 된 오태풍으로 인해 희빈 모는 사지에 몰리게 됩니다. 숙빈과 연잉군을 사가 시절 불태워 죽이려 했던 혐의와 중전을 시해하려한 시도들이 모두 드러난 상황에서 희빈모의 상황은 희빈을 더욱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세자가 왕이 되기만을 바라왔던 희빈은 세자가 스스로 자신의 병을 왕에게 이야기 하며 그 막연한 믿음을 깨트리더니 자신의 어머니가 저지른 죄가 밝혀지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지만 스스로를 옥죄는 방식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숙빈과 연잉군만 없다면 모든 것은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게 합니다. 세자가 있는 곳에 불을 내고 이를 통해 어수선한 상황에서 연잉군을 해하려는 희빈의 무모한 계획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2. 누가 희빈을 악마로 만들었나?

희빈은 정말 악마였을까? 결과적으로 그녀는 악마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아들인 세자를 왕으로 만들어야만 했던 희빈은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목적에 반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 어떤 행위라도 망설임 없이 해냈던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왕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극으로 꾸며진 그녀의 모습은 잘못된 아들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아들만을 최고라 생각하고 그만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집착은 당연하게도 비슷한 능력을 가진 다른 이(연잉군)와의 경쟁구도 조차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모든 편법을 동원해 권력을 자식들에게 세습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그녀 역시 권력을 지켜 권력을 영원히 세습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녀의 악마성은 바로 그 집착에서 시작되었고 그 집착이 마지막을 고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속 악마가 희빈에게는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살아났고 그 악마를 더욱 악마답게 만들어냈던 시대는 그녀를 악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스스로 악마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렇게 악마가 되어서라도 아들이 자리에 올라설 수 있기만을 바랐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그녀가 바라는 것은 왕이라는 존재였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그녀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게 만들었지요. 과정의 중요함을 망각한 채 오직 권력에만 빠져있던 희빈은 자신이 악마가 되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 악마를 동경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악마를 끄집어내 스스로 악마와 손을 잡은 희빈의 모습은, 그렇게 악마처럼 변해가며 무모함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악수를 두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악마와 손을 잡은 이들은 권력과 부를 모두 갖춘 채 잘 살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대중들은 책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그들을 단죄하고 싶어 합니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서 실현하려는 우리는 어쩌면 악마를 동경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권력욕과 명예욕은 악마와 손잡게 만들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자기화 합니다. 그렇게 권력을 가진 이들은 대중을 기만하고 자신만이 절대 권력이라는 생각이 사상누각이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천하를 호령하려고만 합니다.

악마와의 악수가 영원불멸하면 좋겠지만 악마는 악마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악마는 언제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쓸모없어진 인간은 가차 없이 내쳐버리기만 합니다. 악마와 손을 잡았던 희빈은 그렇게 자신 속에 남아 있던 악마에게 내던져지며 마지막을 맞이하려 합니다.

악마를 동경한 이들의 몰락은 처참할 뿐이고 그런 처참한 마지막을 보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는 악마를 꿈꾸기만 합니다. 그렇게 악마는 우리를 지배하고 누군가가 새로운 악마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내 안에 숨겨진 악마 성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사회 시스템입니다. 때문에 견고한 사회 시스템이 중요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균열과 혼란이 지배하는 2010 대한민국은 악마가 창궐하도록 방조하는 시대가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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