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 잘한다고 장기 잘 두는 것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 스포츠 야구만 해도 해설자로 이름을 날렸으나 정작 프로팀을 맡고는 무력해졌던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평론 잘하는 사람이 실제 정치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정치평론으로 나름 보수의 대변자로 추앙받던 전원책 변호사가 현실정치에 들어와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썰전> 패널 시절 “올 단두대”를 외치던 전원책 변호사가 평론을 접고 선수로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이 되자 말이 바뀌었다. “올 단두대”는커녕 “이것 빼고 저것 빼면 이 당에 뭐가 남겠냐”는 투였다. 그의 신념이 바뀌었다고 보기보다는 밖에서 보던 것과 다른, 자유한국당의 현실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썰전>

자유한국당의 변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인적쇄신의 전권을 부여받은 전 변호사의 힘 빠진 말에 대한 국민 반응은 시들할 수밖에 없다. 유명인사인 전원책의 발언은 그렇지 않아도 기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자유한국당의 쇄신을 맡기까지 했으니 그의 발언은 전보다 더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지만 반응이 오히려 신통찮은 이유다.

전 변호사 자신이 입에 달고 살았던 “올 단두대”는 비현실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쇄신이라는 명제에 부합할 만한 참신한 수사라도 기대했으나 그렇지 않은 모습이다. 거꾸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비판하고, 태극기부대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쇄신이 아니라 수구에 대한 의심만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전원책 변호사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썰전>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다. 박형준 교수는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해관계의 숲 속에서 오히려 헤맬 수 있다”는 말로 전원책 변호사의 쇄신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러나 이철희 의원은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이 의원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전원책 변호사의 초반 행보를 평가했는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지금은 전원책 변호사가 하는 일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원책 변호사의 제안으로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들이 전원 사표를 냈지만 이것이 총선 직전에 가면 다시 공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은 “헛심”을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 변호사에 대한 비판이 보수층에서 더욱 강하다는 사실에 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태극기 부대를 받아들이겠다는 전 변호사의 말에 발끈해 “명백한 극우대통합”이라고 지적했고, 정두언 전 의원은 “한국당 종 쳤다”는 극단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전 변호사로서는 열렬하게 박수 쳐줄 사람들에 대한 러브콜일지 모르나 돌아온 것은 거친 비판뿐이었다.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썰전>

이대로라면 전원책 변호사가 자유한국당을 쇄신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정치의 쓴맛을 보고 돌아설 가능성이 작지 않다. 무엇보다 전 변호사에게 아쉬운 점은 그가 해야 하고, 자유한국당에 절실한 ‘쇄신’이 아닌 ‘수구’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에 있다. 그런 모습에는 청년층을 끌어들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철희 의원은 이를 “꼰대 소리만 하고 있다. 철지난 얘기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무조건 비판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전원책 변호사가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이 되고나서 한 말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야기고, 태극기 부대 이야기였으니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전 변호사가 조직강화특별위원이 된 이후로 “도로 박근혜당”이 되려고 한다는 비판이 대두된 것도 무관치 않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쇄신에는 누구도 동조하기 어렵다. 벌써부터 전원책 변호사가 “실패의 길을 가고 있다”는 칼럼도 등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를 위해서라도 자유한국당의 변화는 절실하다. “올 단두대”의 전원책 변호사마저 칼을 들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이라면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전 변호사의 무딘 칼날은 실망보다는 안타까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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