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몸과 마음이 알싸한 피로감에 젖어있는 밤, 야구선수 양준혁과의 이별을 하고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입니다. 공교롭게도 내린 비에 더욱 더 기분은 감상적으로 흐르는 야구기자, 혹은 야구PD의 마음. 그러면서 다시금 느꼈습니다.

야구라는 종목, 아니 스포츠란 그 묘한 장르의 가치와 힘을, 실로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서 말입니다.양준혁 은퇴경기에 이어지는 밤, 그 경험을 통해 얻은 3가지 스포츠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그 어떤 연출보다 대단한 진실과 사실의 스포츠-스포츠PD

특집과 라디오 중계로 정말 바쁜 제작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양준혁 선수의 은퇴경기".

사실 이런 일을 접하며 일단 일이 바쁘고 몸이 힘들어지면 우선 불만과 투덜거림이 우선하게 됩니다. 경기 자체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흐르고, 경기 뒤에 있었던 은퇴식 때엔 비까지 내렸죠. 많은 취재-제작진으로 여건도 나쁩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경기도 삼성이 졌는데다, 양준혁 선수는 안타는 커녕, 김광현 선수의 예언처럼 삼진 3개를 기록했죠. 그럼에도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연출되지 않은 그 모든 상황들이 소중하게, 너무나 대단하게 다가왔다는 거. 분명 스포츠란 장르가 지닌 원초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극적인 순간이 나왔다면 그림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사람들도 열광하고 우리의 방송들도 더욱 그럴싸해지는 순간이 없었단 점은 안타깝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모든 순간이 바로 "스포츠"가 가진 진실과 사실의 힘이라는 점, 그 점에 위대함을 오늘 경기에서 다시금 느꼈습니다. 분명 많은 팬들도 그런 느낌을 받으셨을 터, 중계를 보신 분들, 나중에 특집이나 뉴스를 보시는 분들도 공유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잘 만들어야겠다는 부담도 드네요.

두 번째. 진짜 바쁜 취재의 순간들, 그 순간의 기분 좋은 피로? - 스포츠기자

행사는 여러가지가 다채롭게 있었고, 사람들은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이런 여건은 분명 일하기에 정녕 힘들고 답답한 부분인데다가, 부담감은 더해지는 그런 상황임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많아 이동조차 힘든 가운데 양준혁 선수의 인터뷰 시간과 각종 행사에 맞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던 하루. 많이 피곤하고 지칩니다. 연휴를 앞두고 이게 무슨 폭탄인가 싶기도 하죠.

하지만, 일을 마친 지금의 피로감은 여느 피로감과는 질감이 다릅니다. 기분 좋은, 상쾌한 피로라고나 할까요? 목 뒤가 뻣뻣하고, 아침용 방송뉴스를 녹음하며 목도 갈라졌지만...
분명 기분 좋은 피로가 있다는 오늘 경기를 다뤘다는 그 감격, 그리고 그 순간을 조금이나마 함께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작은 자기 만족에 근거할 겁니다.

물론 이런 매력들을 자주 느끼진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간혹 이런 순간을 만난다는 건, 스포츠의 위대한 부분이란 말이죠. -거기다 다시금 양준혁 선수의 은퇴란 사실의 큰 중요성을 몸이 느끼는 것 같다는 거죠.-

마지막. 야구장의 함성, 그 뒤에 떨림의 묘한 짜릿함 - 스포츠팬

어찌 보면 오늘 느낀 여러 감정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짜릿했던 놀라움은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부분입니다.

포스트시즌도 아닌 정규시즌 막바지의 경기, 크게 극적인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양준혁 선수의 등장 때마다 온 몸이 짜릿해집니다. 야구장을 뒤흔드는 사람들의 함성, 그 뒤에 따르는 묘한 떨림, 그 짜릿함과 소름끼치는 매력은 정말 황홀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저 목적성이나 효율성을 보는 것도, 아니면 어떤 막연한 추종도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봤던 위대함에 대한 인사, 그 마음들이 "스포츠"의 공간에서 "양준혁"이란 이름으로 대단한 풍경을 만들어낸 거죠.

바쁜 취재와 제작의 사이에 그래도 가을야구를 즐기고 지지하는 건 바로 이런 특징 때문인데요.올 가을, 가을야구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그런 짜릿함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평소 가을야구에서 보고 듣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함성과 떨림, 그 짜릿함을 말입니다.

거기에다 그 순간들에 모두가 가치를 공유하고 그 순간이 흐름에 대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 정말 스포츠의 위대함입니다. 그 위대함, 양준혁 선수의 은퇴로 다시금 깨닫고서야, 마음 속 깊이... 아쉽지만 고마워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양준혁 선수.


스포츠PD, 블로그 http://blog.naver.com/acchaa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PD라고는 하지만, 늘 현장에서 가장 현장감 없는 공간에서 스포츠를 본다는 아쉬움을 말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다른 생각들, 그리고 방송을 제작하며 느끼는 독특한 스포츠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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