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게임 엔트리가 지난 17일에 발표된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1989년생 동갑내기 미드필더' 기성용(셀틱)과 구자철(제주)이 함께 엔트리에 포함된 것입니다. 홍명보 현 올림픽팀 감독의 지휘 아래 무럭무럭 커 나갔던 구자철과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 시절 많은 기회를 얻으면서 부쩍 성장한 기성용의 공존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내다보는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기성용과 구자철은 서로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며 저마다 색깔 있는 모습으로 경쟁력 있는 선수임을 증명해 왔습니다. 기성용은 날카로운 킥 능력과 공격적인 스타일을 앞세워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성인 대표팀에 완전히 녹아드는 데 성공, 월드컵에 출전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반면 구자철은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눈이 탁월하고 허리를 장악하면서도 동시에 패스 중심의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좋은 선수로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스타일이 다소 공격적이라는 공통된 특성 때문에 포지션 중복으로 한 그라운드에서 뛴 적은 지난 해 12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 한일 올림픽팀 평가전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려 왔고, 미묘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구자철 역시 기성용 못지않은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다소 험난한 행보를 이어왔습니다. 축구대표팀 데뷔는 기성용보다 빨랐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1년 뒤에야 다시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소속팀 제주에서는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성장을 거듭했고, U-20 월드컵 8강까지 오르는 데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하면서 역시 승승장구를 거듭하기는 했습니다만 올해 들어와서 유럽 진출 실패, 월드컵 대표팀 낙마 등 악재가 잇따라 이어지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뒤 두 선수의 입장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기성용이 셀틱에서 제대로 둥지를 틀지 못한 채 방황한 사이 구자철은 소속팀 제주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며 사상 첫 선두로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습니다. 대표팀 선장이 조광래 감독으로 바뀐 뒤에도 여전히 기성용이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고, 구자철은 아직 부름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기성용의 경기력이 예전만 못 하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흘러 나오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기성용이 바뀐 팀플레이에 크게 녹아들지 못한다는 단점이 지적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자철을 다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최근 구자철에 대한 주목도가 더욱 높아진 분위기입니다. 아직까지도 여러 입지 면에서는 기성용이 앞서나가 있다 해도 이제는 많이 차이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여러 면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함께 처음으로 한 대회에 나서게 되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두 동갑내기 선수 간의 치열한 라이벌 경쟁이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최근 윤빛가람까지 성인 대표팀의 떠오르는 신예로 각광받는 가운데서 두 선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혜택 뿐 아니라 향후 대표팀을 책임질 중원 자원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해 대회에 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라이벌이 있다면 선수 기량 향상 뿐 아니라 팀 전체적으로도 동기 부여가 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요.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더욱 불붙을 기성용과 구자철의 경쟁이 선수 개인에게나 올림픽팀 나아가 성인 대표팀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보다 탄탄한 미드필더를 갖추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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