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게임 엔트리가 지난 17일에 발표된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1989년생 동갑내기 미드필더' 기성용(셀틱)과 구자철(제주)이 함께 엔트리에 포함된 것입니다. 홍명보 현 올림픽팀 감독의 지휘 아래 무럭무럭 커 나갔던 구자철과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 시절 많은 기회를 얻으면서 부쩍 성장한 기성용의 공존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내다보는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기성용과 구자철은 서로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며 저마다 색깔 있는 모습으로 경쟁력 있는 선수임을 증명해 왔습니다. 기성용은 날카로운 킥 능력과 공격적인 스타일을 앞세워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성인 대표팀에 완전히 녹아드는 데 성공, 월드컵에 출전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반면 구자철은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눈이 탁월하고 허리를 장악하면서도 동시에 패스 중심의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좋은 선수로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스타일이 다소 공격적이라는 공통된 특성 때문에 포지션 중복으로 한 그라운드에서 뛴 적은 지난 해 12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 한일 올림픽팀 평가전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려 왔고, 미묘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기성용, 구자철 선수 ⓒ 연합뉴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앞서 나갔던 선수는 기성용이었습니다. 일찌감치 2007년 U-20 월드컵에도 출전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준 적이 있는 기성용은 올림픽대표팀-국가대표팀까지 거치면서 매 경기마다 진화하는 모습으로 대표팀 전술의 핵으로까지 떠올랐습니다. 감각적인 경기 운영에 거침없는 날카로운 슈팅까지 갖춘 기성용에게 브레이크란 없는 것처럼 보였고, 마침내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 FC에 입단하고 생애 첫 월드컵 무대까지 밟으며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구자철 역시 기성용 못지않은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다소 험난한 행보를 이어왔습니다. 축구대표팀 데뷔는 기성용보다 빨랐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1년 뒤에야 다시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소속팀 제주에서는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성장을 거듭했고, U-20 월드컵 8강까지 오르는 데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하면서 역시 승승장구를 거듭하기는 했습니다만 올해 들어와서 유럽 진출 실패, 월드컵 대표팀 낙마 등 악재가 잇따라 이어지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뒤 두 선수의 입장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기성용이 셀틱에서 제대로 둥지를 틀지 못한 채 방황한 사이 구자철은 소속팀 제주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며 사상 첫 선두로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습니다. 대표팀 선장이 조광래 감독으로 바뀐 뒤에도 여전히 기성용이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고, 구자철은 아직 부름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기성용의 경기력이 예전만 못 하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흘러 나오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기성용이 바뀐 팀플레이에 크게 녹아들지 못한다는 단점이 지적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자철을 다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최근 구자철에 대한 주목도가 더욱 높아진 분위기입니다. 아직까지도 여러 입지 면에서는 기성용이 앞서나가 있다 해도 이제는 많이 차이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여러 면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함께 처음으로 한 대회에 나서게 되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두 동갑내기 선수 간의 치열한 라이벌 경쟁이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최근 윤빛가람까지 성인 대표팀의 떠오르는 신예로 각광받는 가운데서 두 선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혜택 뿐 아니라 향후 대표팀을 책임질 중원 자원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해 대회에 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라이벌이 있다면 선수 기량 향상 뿐 아니라 팀 전체적으로도 동기 부여가 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요.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더욱 불붙을 기성용과 구자철의 경쟁이 선수 개인에게나 올림픽팀 나아가 성인 대표팀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보다 탄탄한 미드필더를 갖추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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