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했던 것들이 조금만 반복되어도 구태의연함과 지겨움을 호소하는, 새롭고 참신한 것에 목말라하는 시청자들의 변화를 생각하면 과연 90년대에나 유행했던 몰래카메라가 여전히 유효한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에 자주 반복된 아이템이다 보니 이런 속임수에 익숙해진 연예인들을 속이는 것도 점점 더 어렵구요. 게다가 어렵사리 속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한 사람만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그 잔혹함 때문에 속이는 사람도 속는 사람도 모두 빛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어려운 난관을 넘어서야 합니다. 여러모로 몰래카메라는 자주 활용되기는 하지만 적절하지도 쉽지도 않은 골치 아픈 과제에요.

SBS의 신입 프로그램 영웅호걸에서 또 다시 서인영의 생일 파티를 위한 몰래카메라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식상함을 느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홍철과 신봉선, 혹은 이휘재 같은 MC진을 중심으로 있었던 이전의 사기극처럼, 워낙 곳곳에 짜고치기가 눈에 훤히 보이는 프로그램었던데다가 그 대상이 우결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방송의 생리를 훤히 알고 있는 영리한 서인영이었던지라 어쩌면 별것 아닌 장치를 하고 속는 척, 속이는 척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구요. 진정성과 리얼함이 방송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만듦가 어설픈 짜고치기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어설프긴 했지만 나름 성공한 몰래카메라의 결과를 보니 그리 나쁘지 않더군요. 아니. 오히려 SBS의 이전 일요일 저녁 프로그램들이 그러했듯이 KBS의 해피선데이의 위력에 밀려 곧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영웅호걸의 생명력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섞인 관측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의 볼만한 포인트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던 이 프로그램은 단점을 최소화하면서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과 방향을 향해 올바로 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실 남자 MC 두 명에 여자 게스트 12명의 구성은 그 화려함만큼이나 자칫하면 산만하고 난잡해 보일 수 있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이들을 어렵사리 한 자리에 모아 놓았지만 모두의 예능감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인기경쟁이란 다소 잔혹한 판단기준을 중심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뜩이나 번잡스러운 다수의 출연진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방송 분량분배에 소홀해지면 어긋나기 쉬운 민감함을 기본으로 품고 있거든요. 프로그램의 진행에 따라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적응과 부적응의 차이를 조율해주어야 할 뿐더러 동시에 잘나가는 멤버들을 중심으로 나름의 웃음 포인트도 놓치지 말아야 하구요.

그러니 이 프로그램이 장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인기를 선점하고 남들을 재치기 위한 경쟁과 대결이 아닌 12명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인 것을 자각하고 승패에 상관없이 각자의 캐릭터와 관계를 맞추어 갈 수 있는 호흡과 연대입니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 개성들을 가진 12명의 멤버들은 다른 유사한 형식의 어떤 프로그램들보다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를 위해서라도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호 협동이 필수적이거든요. 매번 바뀌는 인기 조사 항목은 다른 기준, 다른 목표에 따라 변화하는 12명의 색깔을 다채롭게 보여줄 수도 있구요. 누가 이기느냐, 인기가 많은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같이 돋보일 수 있는지의 방법을 찾느냐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번 서인영의 몰래카메라는 모래알처럼 보이던 12명의 여자 스타들이 서서히 응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입니다. 난데없는 눈물 릴레이는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만큼 서로의 감정이 연결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구요. 몰카의 대상이 멤버들 중에서도 제일 강렬한 개성을 뽐내는 모태 다혈 서인영이라는 것, 며느리 경쟁의 1등이 제일 밋밋하게 보였던 이진이란 사실은 이 프로그램이 양 극단의 사람들을 모두 품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높아만 보이는 1박2일과의 경쟁이 힘겨워 보이긴 해도, 영웅호걸은 전쟁 같은 시간대에서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긴 시간을 기다리며 꾸준하게 따라잡아야 하긴 하겠지만 제법 재미난 추격전이 될 것 같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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