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강서구 PC방 살인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 참여 열기 역시 폭발적이어서 참여자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 80만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곧 100만을 넘을 기세라고 한다. 일부 시민들은 사건이 일어난 PC방 앞 공간에 국화꽃과 쪽지로 추모의 뜻을 표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경찰은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를 묻는 심의위원회 개최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여느 강력사건보다 특히 더 많은 분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나온 반응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피의자는 평소 우울증 약을 복용해왔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에 따른 정신감정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PC방에서 단지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점이다. 사건의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이 하나의 점에서 만나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어떤 조건 속에 놓여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 등은 오랜 기간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문제는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이 형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책임주의란 행위가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책임성이 없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고 따라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심신상실자나 미성년자를 처벌하지 않고 심신미약자의 형을 감경하는 게 대표적인 이 원칙의 표현이다.

물론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이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상태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책임주의 등 형법의 일반원칙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국민적 법 감정의 수준을 맞추는 방법을 찾는 일에 대해선 법학자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형법 제10조 3항에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의 예외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이를 폭넓게 적용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상의 주취 감경 배제 조항 등에서 보듯 상황에 따른 예외적 조항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일반원칙 차원에서 해결 가능하도록 형법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전문가도 있다. 일부 법조인들은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의 부정적 영향이 몇 가지 판결 사례를 통해 과대평가 되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어쨌든 심신미약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는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해 법 전문가들이 치열한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고 이를 입법에 반영하는 것으로 해결할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것은 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차원에서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 문제를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로 인식하게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앞에 흉기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아르바이트생을 추모하는 공간에서 학생들이 추모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넷 등을 통해 표출되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문제의 핵심은 ‘공정성’에 있다는 생각이다.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을 “봐주기”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보통 “왜 봐줘야 되느냐”라고들 한다). 술을 먹었거나 정신병력이 있다는 점 등은 고려하지 말고 오직 행위 자체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표출된다. 이런 주장은 정확하게 엄벌주의(punitivism)에 해당한다.

엄벌주의의 한계 역시 많은 측면에서 지금까지 지적돼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요약되는 응보사상 이후의 근대적 형벌체계는 범죄예방과 범인의 재사회화를 통한 공동체 복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엄벌주의는 우리의 직관적 상식과는 달리 이 두 가지 목표에서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그간 연구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엄벌주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실마리는 이번 사건에 더 많은 분노와 관심이 집중된 두 번째 이유, 즉 피해자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건장한 젊은이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어떤 괴물적 충동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는 서사로부터 찾을 수 있다. 피해자의 치료를 담당하였던 응급실 의사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글도 가해자의 괴물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러 윤리적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사람들은 이 서사로부터 자기 자신의 처지를 보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당장의 빈곤함을 감수하며 매일 노력하고 살고 있을 뿐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재앙에 의해 하루 아침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계라는 진실을 우리는 감당하기 어렵다.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아무 죄도 없는데 죽였다”는 표현은 이런 인식을 전제한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내면화하였다면 그 반대의 결론, 즉 “죄가 있다면 죽일 수 있다”는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죄가 있다”는 표현의 대상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 보다는 종종 ‘괴물’과 동일시된다. 따라서 이런 인식에 따른 ‘공정한’ 형벌 체계는 ‘괴물’을 극형을 동원해 응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원리를 갖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구도에서 ‘괴물’의 존재는 종종 가해자를 넘어 확장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조선족이라는 루머가 확산된 게 여기에 해당한다. 가해자들의 온라인 게임 ID가 한자로 돼있다거나 흉기를 과감하게 사용했다는 점 등이 기존에 형성된 ‘조선족’의 전형적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경찰에 의하면 이런 추정은 사실무근이다. 사실이 아닌 이런 내용이 포털 뉴스 사이트 댓글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 것은 인터넷을 수단으로 한 극우주의적 현상의 전형이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일들은 강력범죄가 사회적 논란거리가 될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예는 2015년의 강남역 살인이다. 이번 사건에 나타난 인식의 구조는 강남역 살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드러났다. 결정적 차이는 강남역 살인의 경우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사회적 구조가 ‘괴물’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피해자와 괴물’이라는 구도는 한계를 가지지만 적어도 모순의 근본원인이 남성 중심의 사회적 구조에 있다는 점은 진실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결국 강서구 PC방 살인으로 드러난 사회적 문제 역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이런 경향에 대한 해결책으로 각광받는 것은 이전에 서술했듯 극우주의다. 사회적 모순을 이민자라는 ‘괴물’을 응징해 해소하려고 하는 미국의 트럼프 정권이나 합리적 형벌체계보다는 사회적 복수에 무게를 싣는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당연히 이런 체제를 우리가 선호하는 이상으로 여길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의 엄벌주의적 요구에 대한 정치의 대응은 대안적이고 실효적임과 동시에 여전히 이상적 사회상을 포기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진보정치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 과연 그 역할을 주어진 조건 하에서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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