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애매한 건 애매하게, 분명한 건 분명하게 <최고의 이혼> (10월 15~16일 방송)

KBS 2TV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2 <최고의 이혼>의 휘루(배두나)는 동화 작가를 꿈꾼다. 휘루의 원고를 본 출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동화가 애매하다고. 그 이유에 대해 휘루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던져보는 거라고. 이게 맞아? 이래도 될까? 묻고 싶은 거라고.

<최고의 이혼>도 휘루의 동화와 닮아 있다. 이혼하는 부부가 이래도 될까? 정말 이 문제 때문에 이혼하는 걸까? 유영(이엘)과의 연애에서도, 휘루와의 결혼 생활에서도 석무(차태현)가 잘못한 게 맞아?

휘루-석무 부부는 이혼을 했다. 사정상 부모님에게 알리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한 집에 사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이성을 만난다. 석무는 대학 시절 여자 친구 유영을, 여자는 젊은 남자를. KBS <고백부부>나 tvN <아는 와이프> 류의 ‘현실부부’ 드라마가 떠오르지만, <최고의 이혼>은 다르다. 그들과 새로운 이성의 관계는 러브라인이 아니다. 석무는 자신의 과거 잘못이자 현재 이혼의 원인이기도 한 점을 되돌아보는 기회이고, 휘루는 남편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KBS 2TV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

무엇보다 쉽지 않아서 좋다. 쉽게 단정 짓지도, 결론내리지도 않는다. 자신이 먼저 이혼하자고 해놓고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도 남편이 생각나는 감정에 대해 휘루는 “밉고 싫은데 걱정이 돼”라고 말한다. 아직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다 싫어하는 게 맞다, 이렇게 쉽게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나서도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나의 감정이라 할지라도.

유영은 휘루 앞에서 석무가 대학 시절 자신의 꿈을 짓밟았던 얘기를 털어놓는다. 휘루는 “쓰레기네요”라고 단정 짓지만, 유영은 “누가 나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누군가에겐 살아가는 힘이 되는 어떤 게 누군가에겐 싸구려 변기 커버 같을 수 있는 거죠”라고 덤덤히 말한다. 그 어떤 사소한 감정도 흑백논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애매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명확해야 할 땐 명확하다. 휘루의 동생 마루의 연애에 대해서 그랬다. 마루의 남자친구(마루에게는 이미 전 남자친구)가 마루에게 강제로 키스하다가 싸움이 났고 결국 경찰서로 갔다. 담당 형사는 마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도 않은 채 “그러니까 사랑싸움이네요.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까”라고 단정 지었다. 이를 듣고 있던 석무의 할머니 고미숙이 갑자기 어린 시절 얘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예뻐하던 옆집 아저씨가 자신에게 스킨십을 했는데, 분명 자신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는데 이웃 어른들은 그 아저씨가 널 너무 예뻐하고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두둔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이제 알겠더라고. 지금으로 치니까 그게 성추행 같은 거야. 사랑이 아니구나. 동의 없이 그러는 건 폭력이구나”라고.

KBS 2TV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

고미숙의 ‘폭력 발언’에 이어 마루도 형사에게 몇 번을 헤어진 사이라고 밝혔지만, 형사는 여전히 전 남친 입장을 두둔하면서 “남자가 좀 패기를 부린 거다”라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쳤다. 그 순간, <최고의 이혼>은 그 어떤 장면보다 명확한 표현을 사용한다. “범죄다. 남이건 아니건 싫다고 하는데 그렇게 억지로 하는 거 아니잖아. 싫다고 하는데 그 쉬운 말을 못 알아들어?”라고.

어쩌면 조연의 에피소드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을 수도 있는데 <최고의 이혼>은 주인공 석무와 휘루의 감정뿐 아니라 휘루의 동생인 마루의 감정과 상황까지도 굉장히 신중하게 다룬다. 복잡한 감정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오해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분명한 표현을 쓰는 당연함이 <최고의 이혼>이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이 주의 Worst: 시월드보다 더 이상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10월 18일 방송)

마치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출연자들끼리 사전 회의를 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슷한 시기에 민지영 부부도, 시즈카 부부도 집들이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지영은 시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남편 회사 선배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고, 시즈카는 시누이의 집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답답한 상황에 직면했다. 원치 않는 집들이, 그 원인은 시어머니 혹은 시누이. 정말 우연의 일치인 걸까.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우연의 일치든, 의도된 연출이든 고부갈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이벤트’가 있어야 하는 건 사실이니.

MBC 예능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문제는 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지난 18일 방송에서는 지난주에 이어 남편들이 동반 출연했다. 그렇다면 일방적인 집들이 준비에 대해 지적할 것도, 변명 아닌 변명할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들에게는 리액션하는 방청객 그 이상의 역할이 허락되지 않았다.

며느리 민지영은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부터 일을 하는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집들이를 준비했다. 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제작진은 “어색한 상황”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어색하다’는 표현은 양쪽 다 책임이 있는 듯한, 그리고 그것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분위기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기분 좋게 마무리된 식사 자리”라는 자막이 나왔는데, 여기서 며느리의 기분은 빠졌다. 바로 직전에 민지영이 속마음 인터뷰에서 “나의 피곤함을 알아주지 않으셔서 솔직히 어머님께 서운했다”고 말했는데도, 그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자막이었다.

새집으로 이사 간 시누이 네를 방문한 시즈카는 장보기부터 음식까지 도맡아 했다. 자신이 직접 초대하지도 않은 손님들을 대접한 민지영의 상황을 접한 직후에 본 영상이다 보니, 더욱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행자들은 “특이한 집들이”라고 포장을 할 뿐, 이 이상한 풍경에 대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MBC 예능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진행자들의 이상한 멘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집들이 메뉴만 시누이가 정하고, 장보고 요리하는 것까지 모두 전담한 시즈카에게는 “당황스러웠겠다” 정도로 에둘러 표현하고, 아내와 누나가 장을 보는 동안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본 남편에게는 “고생했다”고 위로했다. 시누이 대신 집들이를 준비한 것이 고생이지, 아빠가 아이를 본 것은 힘은 들 수 있을지언정 당연한 일이다. 굳이 둘 중 한 명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하려면, 당연하지 않은 일을 한 사람에게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오프닝에서 오정태의 아내는 “이 중에서 내 남편이 제일 낫다”고 말했지만, 이날 가장 최악의 남편은 오정태였다. 어머니가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싸왔다는 얘기에 “이제 밥다운 밥을 먹겠구만”라고 답하는 남편 오정태의 눈치와 개념은 소고기 뭇국에 같이 말아먹은 것일까. 이 발언이 나온 직후, 아무도 스튜디오에 있는 오정태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 진행자가 없었다. 이미 무뎌진 건지 아니면 아무 문제없다고 느낀 건지 혹은 편집된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제작진이 이런 발언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물론 제작진은 방송 말미에 전문가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일련의 상황들이 잘못된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지만, 그건 면피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이걸 공론화시키고 싶었다면 전문가를 스튜디오에 섭외해서 당사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의 의견과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다. 그냥 형식적인 인터뷰임에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60분 방송에 30초 인터뷰라니, 중간 광고보다 더 짧은 시간에 무슨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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