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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연한 자기극복, 충만한 사랑의 완성 보여준 남성 캐릭터 셋[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10.20 08:58

-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 <황금빛 내 인생> 최도경,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남세희

사랑의 모든 언어는 과도한 사용으로 훼손되었다. 내가 차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때면 내 사랑은 우연히 흘러나오는 사랑의 노래들로부터 아주 수월하게 힘을 얻었다. 내가 끌로이에 대해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그런 노래에 영향을 받았을까? 사랑한다는 나의 느낌은 그저 특정한 문화적 시기를 살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드라마가 범람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들 대부분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이 아닌 이야기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과연 드라마들이 말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사랑은 사람을 변모시킨다. 집에선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던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새벽같이 도시락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부터 '호르몬의 화학적 변이'의 폭은 무궁무진하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일까? 결혼이 선택이 된 시대,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여기 '사랑'으로 인해 삶 자체가 변화된 남자들이 있다. 사랑은 그들이 가졌던 것들- 국가, 재산, 지위, 그리고 목숨까지 버리게 했다. 사랑으로 인해 '성숙'된 남자들을 통해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를 짚어본다. 

나라를 버렸다-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이병헌 분), 그는 이방인이었다. 검은 머리 미국인. 명령에 따라 조선에 주둔한 것뿐이었다. 그에게 조선은 망해도 상관없는, 아니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자신을 먼 타국으로 쫓아낸 사람들이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이 나라는 망하는 게 당연한 나라였다. 

해병대 장교로서 임무에 따라 미 공사를 처리하고자 담 위에 올랐던 유진은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총을 겨누던 한 여인을 만난다. 두건을 쓴 스나이퍼가 여인이었다는, 그리고 그 여인이 조선 명문가의 여성이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거기에 취조를 당해도 부족할 판에 공사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이방의 군인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 당당한 태도에 그 호기심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가 걸어 들어간 사랑, 거기엔 그가 사랑했던 고애신(김태리 분)이 목숨조차 던지겠다고 하는,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조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애신의 곁에는 생면부지의 어린 그를 구해주어 미국까지 갈 수 있게 해준 도공 황은산(김갑수 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 은인이 목숨 바쳐 지키고 싶다는 나라 조선, 그런 그들로 인해 조선이, 부질없어 보이던 의병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은 '사랑'에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자신을 버린 조선에 냉소적이었다. 대한제국의 왕이 명한 신식군대 고문조차 거절할 만큼. 그런 그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신병의 입대에 눈을 감아준다. 그들이 저지른 무모한 작전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선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시작된 그의 행보가 '사랑하는 이들'로 넓혀져 간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그의 분노도 깊어진다. 모리 타카시를 스스로 총으로 정죄할 만큼. 

유진은 마치 서부영화 속 남자 주인공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장교라는 공적인 직위를 가졌지만 그 공적인 지위는 어떤 사명감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지키다 보니 얻어진 생존의 대가였다. 총을 들어 자신을 지켜왔고, 그 대가로 미국인이라는 특권(?)까지 챙긴 그가 자신의 생존이 아닌 다른 이유로 총을 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이 지키는 나라가 조금 더 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어머니가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졌듯,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몸을 던져 구하려는 조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초개처럼 던진다. 그는 죽어갔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검은머리 고독한 이방인이 아니다. 조선 의병 4소대 소대장 유진 초이이다. 충만한 사랑의 완성이다. 

재벌을 버렸다 - <황금빛 내 인생> 최도경

KBS 2TV <황금빛 내 인생>

드라마 속 재벌가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사랑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판타지 같은 재벌남과의 연애사'에 이의를 제기한다. 드라마 방영 당시 과연 누구의 ‘황금빛 내 인생’이었을까로 시청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88만원 세대에서 하루아침에 재벌가의 딸이 된 서지안(신혜선 분)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해성가를 물려받을 최도경(박시후 분)의 '본투비 재벌 인생'이었을까? 하지만, 드라마는 그 황금빛 인생하면 'Gold'와 함께라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에 발을 건다. 

그 시작은 롤러코스터 같던 재벌가 딸 데뷔를 마친 날 저녁 맥주를 외치는 동생 서지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함께 찾은 편의점에서였다. 아직 오빠인 최도경에게 서지안은 어릴 적 꿈을 묻는다. '사장, 사장, 회장'이라며 당연한 그걸 왜 묻냐는 오빠 최도경에게 지안은 '불쌍하다'했다. 세상에 재벌가 회장이 될 사람에게 불쌍하다니. 그런데 지안은 말했다. 꿈꿔보지 못한 삶, 나면서부터 정해진 삶을 살아야 하는 오빠의 삶이 안됐다고. 처음으로 도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88만원 세대의 고군분투기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중반부를 들어서며 최도경의 스토커처럼 집요한 사랑, 아니 재벌가 최도경의 사랑을 빙자한 ‘자아찾기’로 변해간다. 그와 약혼할 뻔했던 장소라처럼 야무지게 주식과 예금을 챙기며 해성가를 나서려했던 최도경은 창업주 할아버지에게 들켜 명품시계까지 풀고 해성가를 떠나게 된다. 며칠이면 두 손 들고 백기투항할 거라던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최도경은 예의 긍정적 마인드로 갖은 알바 자리를 전전하며 셰어하우스에 머물며 호시탐탐 서지안과의 사랑을 노린다.

KBS 2TV <황금빛 내 인생>

하지만 그 사랑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재벌가의 실상을 처절하게 알아챈 연인 지안이 그를 거부했고, 해성가 사람들이 그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해성을 떠나 알바를 전전해도 '해성'이라는 세계로 지안과 함께 손잡고 돌아갈 날을 기약하는 도경의 본투비 재벌의식이 그의 사랑에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 지안을 사랑한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갈 곳, 여전히 한 귀퉁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려놓지 않은 그의 안이한 사랑법은 끝내 상처만 남긴다. 이미 가진 자와 못 가진 사이의 계급이 형성된 사회에서 안이한 판타지는 존재치 않는다고 드라마는 대못을 박는다. 

사랑이란 매개를 통해 드라마는 재벌 최도경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드라마는 낭만적인 재벌가와 평범한 여성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 그 허상을 집요하게 반박한다. 최도경이란 인물을 통해 재벌가의 승계라는 정해진 삶이 ‘최선’이냐 묻는다. 당신의 안이한 사랑이, 적선하듯 던져진 호혜가 얼마나 많은 상처로 돌아올 줄 아느냐 반문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최도경은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고단하고 혹독하지만 ‘진짜 신나는’ 황금빛 내 인생을 열어 보인다. 

서지안과 최도경의 사랑은 '양수겸장'이다. 사랑도 하고, 자신의 꿈도 찾는다.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 덕분에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는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나무로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는 마지막 회 최도경의 사랑 고백, 이것이야말로 소현경 작가가 말하고픈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이다. 

집을 버렸다 -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남세희

세희에게 집은 무덤이었다. 이십대 시절 사랑했던 연인을 지켜주지 못해 떠나보내야 했던 그는 그 사랑이 끝남과 함께 세상에 마음의 문을 닫았다.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시간을 담당하는 뇌의 신피질이 없는 고양이가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매일을 보내도 우울하거나 지루하지 않듯이, 그는 고양이와 함께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 했다. 아직 갚아야 할 융자가 많이 남아있는 집에서 우울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최면을 걸며 시간을, 자신의 감정을 죽여 갔다. 그렇게 집은 그에게 죽어갈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던 여자 윤지호를 우연찮게 하우스 메이트로 만난다. 서른 살의 실패로 슬퍼하던 그녀에게 이번 생은 그 누구도 처음이라며 건투를 빌어주던 그가 조금씩 마음의 틈을 열어주기 시작한다. 편의적으로 시작한 동거가, 편의적인 결혼이 되어가며, 그녀의 깔끔한 정리정돈과 청소가 좋았던 것이 어느덧 그녀와 함께한 공간의 온기에 익숙해지게 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를 보며 함께 마시던 한 캔의 맥주가 홀로 즐기던 유일한 취미에서 둘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감으로 바뀐다. 감정이 없을 것 같던 그가 그녀로 인해 흥분하고 분노하며 분출한다. 십여 년을 자신의 속에 봉인했던 숙제를 직시할 용기를 가지게 된다.  

달팽이처럼 자신의 집에 웅크렸던 남세희는 윤지호를 통해 이십대 시절 단절했던 관계와 세상에 본의 아니게 자꾸 한 발씩 내딛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던 유일무이한 담보였던 집, 세상 밖으로 나온 남세희에게 이제 사랑하는 이가 없는 집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가 없는 집이 그에겐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에게 집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무덤'이 아니라, 옥상의 단칸방이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고픈 '스위트 홈'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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