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거의 매주 인디 락공연을 봤었다. 기타소리와 드럼 비트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이젠 공연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모처럼 오늘 크라잉넛과 일본 밴드인 도베르만, 그리고 갤럭시익스프레스의 공연을 찾았다. 별 기대는 없었다. 공연 시간을 잘못 알아 갤럭시익스프레스의 오프닝을 놓쳤다.('레알' 아깝다!) 들어가니 곧 도베르만의 공연이 시작됐다.

객관적으로 도베르만의 공연은 신나는 퍼포먼스가 틀림없었다. 관중들은 슬램하며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도베르만은 9인조(!) 밴드였다. 드럼, 키보드, 기타, 베이스는 물론이고 브라스까지 있었다. 사운드는 충실했고 음악은 흥겨웠다.

나도 처음 두 곡 정도까지는 감정이 고조됐다. 하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아 나는 이제 나이가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퍼져갔다. 어쩔 수 없구나. 이젠 냉담해졌어. 브라스가 나오는 데도 이렇게 차분해지다니.

그리고 크라잉넛의 공연이 시작됐다. 크라잉넛은 5인조에 불과하다. 도베르만에 비하면 4명이나 비는 것이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 ⓒ연합뉴스
크라잉넛이 연주를 시작하자 도베르만 9인조 때는 느끼지 못했던 폭발적인 에너지가 장내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은 진짜다! 그들은 단지 악동이 아니었다.

난 크라잉넛이 90년대에 홍대 앞 드럭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당시 공연을 봤었다. 그때는 어린 친구들이 좌충우돌 펑크를 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물론 신이 내린 걸작 '말달리자'는 그때도 미친듯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지만 악동 그 이상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본 크라잉넛은 그때 이상의 광휘를 쏘아댔다. 그들은 이제 악동이 아니라 공연의 '마스터' 같았다. 음악, 퍼포먼스,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

내가 공연을 보면서 다시 흥분하게 될 줄 몰랐다. 나도 모르게 옛날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아이들(관중들)은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장담한다. 공개방송 쫓아다니며 아이돌 공연에 열광하는 것보다 크라잉넛의 공연을 찾아 슬램하고 소리 지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훨씬 짜릿할 것이다. 그들의 공연은 정말 사람을 흥분시켰다.

요즘 <슈퍼스타K>가 국민적 관심 속에 방영되고 있다. 사람들은 거기에 도전한 출연자들 품평하느라 여념이 없다. <슈퍼스타K>가 재밌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뭔가 허전한 것은 사실이다. 거기엔 사람의 가슴을 확 뚫리게 하는 음악이 없다.

크라잉넛의 공연엔 그런 힘이 있었다. <슈퍼스타K>를 보며 일희일비할 시간에 크라잉넛 공연을 한번 보면 그 모든 논란이 덧없었다는 것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큼 그들의 공연엔 원초적인, 그리고 강렬한 힘이 넘쳤다.

사람이 음악으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 외모나 섹시함, 웨이브 댄스, 후크송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격렬한 열기! 크라잉넛의 공연엔 그런 것이 있었다.

간혹 방송에 나오는 크라잉넛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음악을 이미 경험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산이다. 방송은 절대로 락밴드의 에너지를 전달해주지 못한다. 방법은 오직 하나. 공연장을 찾는 것이다.

락공연이 사람을 도취하게 한다는 것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음악적 열정이 아니라 외모나 트렌디함에 빠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크라잉넛의 공연은 본질은 음악이라는 것, 음악에서 비롯된 열정은 다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부디 방송의 주류인 아이돌 음악으로 음악적 즐거움을 모두 충족했다 여기는 젊은 친구들은, 크라잉넛의 공연을 꼭 찾아보기 바란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또 다른 밴드들의 음악에까지 관심을 기울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때 한국 대중음악계는 진정으로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락 윌 네버 다이!!!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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