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12승 6패로 7개 구단 중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기아를 상대로 8회말 2사 후 터진 이택근의 역전 3점 홈런으로 케네디 스코어의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택근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은 뒤 LG 유니폼을 입게 되었는데, 수술에 따른 후유증으로 올 시즌 초반 허리 부상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LG가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이던 시즌 중반까지 이택근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부상으로 인한 결장과 컨디션 난조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고,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되자 뒤늦게 맹타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택근은 5타수 3안타(4타점)를 기록하며 시즌 315타수 94안타로 타율을 0.298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비록 이택근이 규정 타석을 채울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2005년 이래 매 시즌 3할 이상을 기록했고, 2006년 이후 4시즌 연속으로 100안타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이택근이 남은 경기에서 3할 타율과 100안타에 올라서는 것은, 선수 본인의 자신감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주는 위압감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데, LG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를 통틀어 희귀한 장타력을 지닌 정교한 우타 외야수이며 검증된 군필 선수라는 점에서 내년 시즌이 더욱 기대됩니다. 최근 들어 LG에 풍족한 듯 보이는 외야 자원을 매물로 내놓아 투수를 얻는 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지만, 빅5를 함부로 트레이드해서는 곤란하며, 특히 유일한 우타자인 이택근을 매물로 내놓자는 일부의 주장은 그야말로 어리석인 것입니다.

이택근의 역전포가 터지기 전까지 LG의 공격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답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7회말까지 11안타 3사사구를 얻고도 5득점에 그치며 잔루를 8개나 남겼으니, 상당히 비효율적인 야구였습니다.

투수들 역시 고비마다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이 반복되었습니다. 어제 SK전에서 9회초 1사 1, 3루에서 박경완의 스퀴즈를 간파하고 피치아웃으로 3루 주자를 잡아내며 위기를 넘어가는 듯했던 이범준이, 곧이어 높은 실투로 역전타를 허용하며 패배했던 것처럼, 오늘도 투수들이 위기를 넘기는 듯하다 무너지는 패턴이 재연된 것입니다.

선발 김광삼은 3회초 만루 홈런 포함 5실점하며 경기 내내 끌려가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2:1이 된 뒤 무사 1, 2루에서 신종길에게 볼넷을 내주며 만루 위기를 자초한 것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이후 무사 만루에서 김상현과 안치홍을 연속 삼진 처리하며 위기를 벗어나는 듯하다, 이영수에게 높은 실투로 만루 홈런을 허용한 것은 방심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김상현과 안치홍이 이영수보다 더 위협적인 타자인데, 앞선 두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한 뒤 이영수에게 홈런을 허용한 것은, 위기에서 거의 벗어났으니 맞춰 잡아 범타 처리해도 된다는 느슨한 마음가짐이 만루 홈런으로 직결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회초 서승화의 실점 또한 유사했습니다. 무사 1, 2루에서 김광삼을 구원 등판한 서승화는 이용규를 병살타로 처리하며 무실점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듯 했지만, 2사 3루에서 어이없는 폭투로 실점했습니다. 게다가 폭투가 나왔을 때 바운드 볼이 아니라 높고 빠르게 뒤로 빠져나가는 투구라 포수 조인성이 3루 주자의 득점을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여 홈으로 송구하려 했던 것과 달리, 서승화는 진작부터 포기하고 천천히 홈으로 들어와 실질적으로 베이스를 커버하지 않았습니다. 3루 주자 차일목의 발이 빠르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설령 실점 가능성이 90%라 하더라도 저지 가능성 10%를 위해 서승화는 홈으로 전력 질주해 커버했어야 옳습니다.

세 번째 투수 박동욱은 7회초 등판해 2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프로 데뷔 첫승을 거뒀는데, 충분히 승리 투수의 과실을 따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7회초 기아 중심 타선을 삼자 범퇴처리 했고, 8회초에는 2사 2, 3루의 실점 위기를 맞았지만 김선빈을 범타 처리하며 실점하지 않아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만일 박동욱이 앞선 투수들처럼 8회초 2사 후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실점했다면 LG는 패배하며 6위를 사실상 확정지었을 것입니다. 시즌 막판 박현준, 최성민과 함께 박동욱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는데, 선발 로테이션의 혜택을 받는 박현준, 최성민과 달리 박동욱은 중간에서 연투하면서도 호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드러집니다.

LG는 오늘 역전승으로 기아와의 승차를 1.5로 줄이며 5위로의 가능성을 남겼습니다. 작년 2승 1무 16패의 처참한 상대 전적으로 기아의 정규 시즌 우승의 도우미가 되었다는 점과 올해 16연패를 한 기아보다는 순위가 좋아야한다는 점에서 LG가 시즌 5위가 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특히 2002년 준우승 이후 8년간 최상의 성적이 2007년 5위라는 점에서 올 시즌을 5위로 마친다면 비슷한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올해 5위를 하는 것이 6위를 하는 것보다 내년 시즌 4위 이상을 바라보기 쉽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특히 박종훈 감독의 입장에서도 임명 첫해 5위라는 성적표를 얻는다면 나름대로 체면치레는 한 것이며, 내년 시즌을 앞두고 코치진 및 선수단 구성에 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여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성적을 바탕으로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 언론과 선수들에게 뒤흔들리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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