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the guest>, <오늘의 탐정> 그리고 <러블리 호러블리>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해(?) 호러물들이 떼를 지어 찾아왔다. 심지어 KBS 2TV는 월화수목을 다 호러물로 편성했다. OCN 역시 수목 밤 11시에 김홍선 감독의 호러물 <손 the guest>를 편성했다. 야심찬 시도, 하지만 받아든 성적표는 시원찮다. 앞서 종영한 <러블리 호러블리>가 6%에서 1%까지 러블리와 호러블한 시청률을 오갔는가 하면, <오늘의 탐정>은 3.4%의 산뜻했던 출발과 달리 2%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손 the guest> 역시 '박일도'가 누구일까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2~3%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호러물의 성적표, 장르의 한계일까? 만듦새의 부실 때문일까?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속성에 기대어 만들어진 장르가 '호러'다. 주인공 캐릭터가 맞닥뜨린 공포와 그걸 지켜보는 긴장감이라는 이율배반적 감정을 절묘하게 구성함으로써 시청자의 자극을 극대화시킨다(네이버 지식 백과). 때문에 대부분 호러물이 납량 특집물로 편성되는 이유가 무더위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공포를 대리 만족시킴으로써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게 해주려는 배려(?)에서이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그에 맞선 인간들

OCN 수목 오리지널 <손 the guest>

호러물의 핵심 내러티브는 크게 귀신이나 늑대인간, 뱀파이어 등 신비스럽고 초자연적인 영역을 다루는 것과, 연쇄 살인마나 살인 짐승과 관련 실존했을 법한 이야기에 기댄 두 가지로 나뉜다. 늦여름 찾아온 <러블리 호러블리>, <오늘의 탐정>, <손 the guest> 세 작품은 모두 이 핵심적 내러티브의 두 가지 면을 절충하여 현대적 관점에서 '호러'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

우선 <손 the guest>의 경우, 11회에서 비로소 드러난 박일도의 정체에서 보여지듯, 박일도는 '실존인물'이다. 일제 하 지방의 유지였던 한 집안, 그 집안에서 태어난 기괴한 살인마 박일도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실존인물이었다던 박일도는 집안의 식솔은 물론 사촌 여동생, 자신의 처와 아들까지 무참히 살해하고, '인간'의 굴레를 끊고 큰 귀신이 되고자 스스로 눈을 찌르고 바다로 뛰어들어 영계의 존재로 질적 승화된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포섭'하여 박일도에 빙의되어 살인을 빈발하는 인간들을 발생시킨다.

시작은 살인사건이며 인물은 '실존'이지만, 그들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들은 '초현실'적이다. 그에 맞서 현직 형사 강길영(정은채 분)과 구마 사제 최윤(김재욱 분), 그리고 한때는 빙의된 희생자였다가 이젠 영매가 된 윤화평(김동욱 분)의 합동 작전은 필연적이다.

<오늘의 탐정> 역시 시작은 유치원 원아 실종사건이다. 하지만 그 배후에 등장하는 빨간 옷을 입은 의문의 여인. 알고 보니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식물인간이 된, 살아있지만 죽은 '생령', 선우혜(이지아 분)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뒤쫓다 죽음에 이르게 된 탐정 이다일(최다이엘 분) 역시 귀신이었다가 다시 생령이 되어 그녀를 뒤쫓는다. <오늘의 탐정> 역시 벌어지는 사건은 이지아가 자신의 하수인이 된 인간들을 시켜 벌인 갖가지 사건들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 초인간적인 힘을 가진 생령이 있고, 이를 수사하기 위해 또 다른 생령과 인간들이 연합 작전을 펼친다.

KBS 2TV 월화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

<러블리 호러블리>는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작가 오을순(송지효 분)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도 모르게 들리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쓰여진 대본. 그런데 그 대본의 내용이 고스란히 스타 유필립(박시후 분)에게 사건 사고로 벌어지며 두 사람이 엮이게 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두 명의 귀신, 10년 전 한 호텔의 레지던스 화재 사건에서 죽어간 유필립의 전 여친 김라연(황선희 분)과 엄마 김옥희(장영남 분)가 이제 귀신이 되어 운명적으로 엮인 오을순과 유필립 주변을 배회하며 사건을 벌이고, 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얽혀 들어간다. 시작은 '귀신'이지만,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얽히며 살인과 음모, 각종 사고가 벌어진다.

16부작 혹은 32부작, 호러의 긴장감으로 이끌기엔

이들 세 작품 가운데, 이미 장르물에서 잔뼈가 굵은 김홍선 피디의 작품답게, 거기에 오랫동안 각종 장르물에 매진해왔던 OCN의 내공이 더해져 <손 the guest>가 화제성에서 앞선다. 전래의 귀신을 '손'이라 했던 그 이질적 존재에 대한 네이밍과, 바다로부터 온 귀신의 절묘한 캐릭터 구축, 악령과 그에 대응하는 구마 의식의 긴장감이 매회 화제를 불러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10회를 넘어서면서까지 <손 the guest>를 이끈 건 ‘과연 박일도가 누구인가?’ ‘누구에게 빙의되어 있는가’란 궁금증이다. 작품은 각 회의 빙의된 인물에서 배후의 그 누군가로, 거기서 더 나아가 주인공인 윤화평의 가족, 그리고 이제 윤화평에게까지 의심에 의심을 이어가며 작품의 흥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시청률은 공포를 주메뉴로 즐기는 ‘시청자층’의 한계로 볼 수 있다. <손 the guest>는 재밌지만 도저히 밤 11시에는 볼 자신이 없다는 시청자들이 있듯이. 무서움 자체가 작품의 한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더해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은 16부작의 호흡이다. 과연 끊임없이 공포와 그에 대한 긴장감으로 끌고 가야 하는 '호러' 장르의 특성상, 16부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지점이다. 차라리 8부나 10부, 혹은 12부의 보다 짧은 호흡이었다면 좀 더 폭발적인 에너지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미니 시리즈'와 '호러'라는 장르의 조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바로 이 ‘호흡’이라는 면에서 <오늘의 탐정>은 더욱 안타깝다. 구성면에서 따라가자면 생령으로 인해 귀신이 된 탐정, 귀신을 보는 정여울(박은빈 분)과 영매인 길채원(이주영 분) 등과의 연합작전, 하지만 역부족을 느낀 이다일의 악령과의 악수, 그리고 알고 보니 생령이었다는 전개는 나름 논리적이지만 호흡이 부족하다. 이지아가 분한 선우혜의 악령은 매혹적이고 파괴적이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도돌이표 같은 느낌이다.

KBS 2TV 수목드라마 <오늘의 탐정>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가고,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자신들을 죽이려 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충격적이지만, 군중 참사를 도발할 만큼의 악령인가에 대해서는 힘이 달린다. <원티드>에 이은 <오늘의 탐정>까지 장르물에서 한지완 작가의 능력은 걸출하지만 미니 시리즈의 호흡이 작가의 장점마저 상쇄하고 만다.

<러블리 호러블리>의 경우 역시 안타깝다. 드라마 극본 공모작인 이 작품이 과연 32부를 위한 대본이었는가가 의심스러울 만큼,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애초에 작가 자신이 설정했던 두 사람의 운명이라던가 두 주인공의 캐릭터, 심지어 귀신의 등장 이유까지 그 모든 것이 방향을 잃고 만다. 마지막 회 천둥 번개가 쳐도 사랑을 하겠다는 두 주인공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을 사랑해서 귀신으로 나타났던 귀신의 집착이 무색하게 엄마 귀신의 과도한 욕심이 부른 참사란 생각 밖에 들지 않게 만든다. 무엇보다 연출의 호러 장르에 대한 일천한 이해와 불친절한 편집, 거기에 코믹까지 곁들인 옥상옥의 과욕이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호러'물로서의 정체성은 물론, 복합장르로서 로코물의 공감조차 갉아먹고 만다.

물론 공포영화를 찾아 극장에 가는 관객이 정해져 있듯, '호러물'이라는 장르에 대한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 접근성의 한계를 드라마들은 '수사물'이라든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복합장르의 이종교합으로 돌파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손 the guest>의 화제성에서도 보여지듯, '호러'는 호러다울 때 가장 흡인력이 있다. 조미료를 잔뜩 끼얹은 들 본래의 메뉴가 가진 맛이 없다면 시청자들은 이미 간파한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스테디셀러였던 <전설의 고향>의 지긋한 교훈을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기억하다시피 <전설의 고향>은 단막극이었다. 긴 회차로 호러의 긴장감이 끊겨 버리며 자충수에 빠지기보다 호러에 맞는 ‘형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늦여름 찾아온 세 작품 <손더 게스트>,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로 인해 장르물을 선호하는 시청자는 행복했다. 부디 내년 여름엔 땀을 식혀줄, 보다 품질 좋은 호러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아니, 그러고 보니 OCN의 <프리스트>가 대기하고 있다. 이래저래 호러 장르물 선호자들에게 올 한 해는 풍성한 잔칫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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