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파죽지세로 수목의 밤을 재패했던 제빵왕 김탁구가 40회의 기나긴 여정을 끝냈습니다. 초반 인기몰이의 원동력이 월드컵 기간동안 드라마 방영을 포기했던 SBS의 과욕 덕분이었다는 지적, 구석구석 숨어있는 폭력과 불륜의 막장 코드,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 갈수록 작품의 긴장감과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불만 등등이 남아있던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던 장점 모두를 부인할 수는 없죠. 최근 어떤 드라마보다도 다음 회가 궁금해지도록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입력과 몰입도, 각종 장르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필요한 순간 꺼내놓는 영리함, 악역에게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개성 있는 캐릭터와 중년 배우들의 호연은 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50%에 육박하는 초대박 작품으로 만들어 주었어요.

결말 역시도 만족스럽고 납득할 수 있는 마무리였습니다. 주인공 김탁구 윤시윤의 전작인 지붕 뚫고 하이킥의 빵꾸똥꾸 같은 결말처럼 김탁구의 죽음같은 비극적인 끝이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어요. 모두가 나름의 만족스러운 행복을 찾았고, 착한 사람이 승리하고 악행은 벌을 받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교훈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이 억지스러운 것도, 생뚱맞았던 것도 아니었어요. 나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고,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힌트들을 여기저기 숨겨두었기에 더더욱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친절한 결말이었죠.

김탁구와 구마준의 화해와 협력은 불륜으로 시작되어 거성가에서 벌어졌건 기나긴 갈등과 욕망의 고리를 끊어버렸습니다. 팔봉빵집으로 돌아간 김탁구와 양미순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사랑, 여행을 떠난 구마준과 신유경의 화해와 용서를 말해준 러브라인의 최종 결말은 줄곧 이어졌던 청춘 주인공들의 방황과 갈등을 제자리로 돌려 놓았구요. 악역이지만 일방적으로 미워할 수만은 없는 멋진 악역, 서인숙과 한실장의 몰락과 고립은 통쾌함과 짠한 연민을 전해 주었습니다. 마지막 회를 앞두고 제작진이 살짝 알려준 힌트대로 작은 조연까지도 모두가 행복한, 그리고 적절한 최종회였어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게 가장 만족스럽고 합당하게 느껴졌던 결말, 나름의 반전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잘못된 시작, 왜곡된 편견, 모든 문제들의 출발점을 바로 잡았던 것은 네 명의 청춘 주인공들도, 이 드라마의 기둥이자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관록의 중년 배우들도 아니었어요. 바로 김탁구와 구마준의 협력으로 새로운 거성의 대표로 선출된 거성가의 장녀, 구자경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의 거성그룹 대표 등극으로 제빵왕 김탁구는 비로소 잘못 시작했던 첫 번째 단추를 제자리로 끼워 맞출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던 비극의 출발점은 서인숙과 한실장의 불륜도, 구일중 회장과 김미순의 불륜도 아닙니다. 그룹의 후계자는 반드시 남자여야 한다며 이들을 그렇게까지 몰아붙였던 구회장 어머니의 남아선호사상이었죠. 시어머니의 가혹한 집착 때문에 이미 사랑하는 두 딸의 어머니였던 서인숙은 한실장에게 손을 내밀었고, 구일중 회장의 비난받아야 할 불륜은 정당화되었습니다. 악역들이 삐뚤어졌던 이유도, 김탁구 모자가 숱한 고난을 당했던 이유도, 구마준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그것이 신유경에게까지 전염되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모두 남자가 최고라는 잘못된 고집과 편견 때문이었어요.

그러니 동생들의 도움으로 거성 그룹의 후계자로 정점에 오른 구자경의 이야기야말로 이 드라마의 모든 잘못을 바로잡는 가장 유쾌한 반전이었던 셈이에요. 애초에 그렇게 되었어야 마땅했던, 가장 기분 좋은 결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마무리처럼 그 타당성을 꾸준하게 쌓아 올렸기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구요. 마무리가 좋다면 다 좋다는 말처럼 과정의 중요함을 무시하는 무식한 말도 없지만, 이 드라마의 결말만큼은 중간 중간 언뜻 보였던 허술함과 아쉬움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훌륭한 끝맺음이었습니다. 수목드라마의 제왕다운, 정말 기분 좋고 깔끔한 마무리였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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