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과거 KBS판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가 작동된 정황이 포착됐다. KBS '진실과미래위원회'는 KBS 보도본부로부터 이러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입수, 해당 문건이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로 악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과거 KBS에서 일어난 불공정 보도와 부당 징계 사례 등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조치를 담당하는 KBS'진실과미래위원회'(위원장 정필모, 이하 'KBS 진미위')는 16일 오후 KBS 국제회의실에서는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 6월 진미위 출범 이후 4개월간의 조사 결과다.

과거 KBS에서 일어난 불공정 보도와 부당 징계 사례 등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조처를 담당하는 KBS'진실과미래위원회'는 16일 오후 KBS 국제회의실에서는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 6월 진미위 출범 이후 4개월간의 조사 결과다. (왼쪽부터) 복진선 진실과미래추진단장, 정필모 진실과미래위원회 위원장, 윤성도 진실과미래추진단 부단장. (미디어스)

"'KBS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 참여 여부가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로 작용한 측면"

'KBS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이하 정상화 모임)은 2016년 3월 11일, 당시 KBS 보도에 비판적인 KBS기자협회의 기능을 무력화하기 위해 보도국장을 비롯한 보도본부 국·부장단 주도로 활동을 시작한 모임이다. 보도본부 국·부장급 간부 34명 전원과 팀장, 앵커, 특파원 등 129명이 가입했고, 2016년 7월 14일까지 모두 9차례 성명서를 발표했다.

KBS 진미위는 이날 발표에서 정상화 모임 참여 여부가 일종의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진미위는 "모임 결성 이후 2018년 4월 양승동 사장 취임 전까지 선발된 취재기자 특파원 12명 가운데 10명이 모임 참여자였다"며 "또 모임 출범 뒤 선발된 신규 기자 앵커 전원은 모임 가입자 가운데 뽑혔다"고 설명했다. 진미위는 보도본부 부장급 이상 보직자 60명 가운데 53명(88%)이 모임 참여자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KBS 진미위는 조사 과정에서 당시 KBS보도본부가 정상화 모임 가입자들을 별도로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기협정상화 1차 2차 129명 명단'이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 문서를 입수했다. 해당 문서는 보도본부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보도기획부가 진미위 공식 요청에 따라 제공한 복수의 자료 중 하나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협정상화 1차 2차 129명 명단' 엑셀파일 내용 일부 (제공=KBS)

이날 익명처리 상태로 공개된 파일의 일부분을 보면 비고란에 'O'표시가 되어있는데, 당시 KBS 본사 기자 563명을 부서별로 나열한 뒤 정상화 모임 가입 여부를 구분하는 표시를 한 문서라는 게 진미위의 설명이다. 진미위는 조사 결과 해당 문서가 당시 KBS 보도본부장 지시로 만들어졌으며, 작성 뒤 출력해 본부장이 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KBS 진미위는 해당 문서가 ▲기자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보도기획부'에서 발견되었고 ▲인사권한을 가진 보도본부장의 지시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인사부에서 사용하는 기본 파일을 이용해 인사 자료로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가공된 자료라는 측면에서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로 악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KBS 진미위는 정상화 모임 출범 이후 보도본부 내에서 수많은 방송 공정성 훼손과 부당인사 사례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정상화 모임을 비판했다가 부당 전보를 당한 KBS 기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연욱 KBS기자는 2016년 7월 13일 한국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 이라는 제목의 비판 글을 기고했다가 이틀 만인 7월 15일 제주총국으로 강제 전보됐다. 정 기자는 2017년 3월 부당전보 무효 소송에서 승소했다.

간부들이 강압적으로 취재 지시를 내리고 이에 불응하는 기자들에게 징계가 행해진 사례도 있다. KBS 송명훈·서영민 두 기자는 2016년 7월 KBS가 투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영화가 흥행하고 있음에도 평론가들이 혹평을 내리는 부분을 지적하는 내용의 리포트 작성을 지시받았다. 두 기자는 개봉 3일 만에 흥행여부를 판단하거나 근거 없이 전문가 평점을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이미 3번이나 관련 리포트를 하였기 때문에 보도시기를 늦추자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거부당했다. 결국 두 기자는 취재 지시를 거부해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후 징계처분 무효 판결에서 승소했다.

뉴스가 아닌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기자들에게도 부당전보가 이뤄졌다고 진미위는 밝혔다. 진미위는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3년에 걸친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해방 후 훈장 서훈 내역을 입수하고 전수 조사한 '훈장 2부작'을 기획·취재했지만 친일 인사들에게 부당하게 수여된 훈장이 이승만·박정희 정건에 집중됐다는 내용을 다룬 2부 '친일과 훈장'편은 보도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미위는 "특히 10차례, 20시간에 걸친 데스킹 도중 제작 팀장과 기자 2명은 모두 다른 부서로 전보돼 버렸다"며 "3년여에 걸친 취재로 제작된 60분짜리 특종 보도가 불방된 초유의 사건이지만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복진선 진실과미래추진단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도한 데스킹으로 방송을 방해한 아주 이례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메일 사찰 의혹, 취재와 근거자료 통해 질문한 것… 악의적인 시비걸기"

KBS진미위는 이날 발표에서 지난 7월 KBS공영노조가 제기한 '진미위의 이메일 사찰 의혹'과 관련해 구체적인 반박자료를 내놓았다. 해당 의혹은 자신의 메일을 열람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진미위 조사인이 질문했다는 피조사인들의 주장을 근거로 두는데, 진미위는 취재와 피조사인에게 메일을 보낸 발신인으로부터 송수신 기록을 제출받은 것을 근거로 질문이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KBS'진실과미래위원회'가 피조사인에게 메일을 보냈던 당시 기자협회장으로부터 받은 이메일 송수신 기록 화면. (제공=KBS)

복진선 단장은 "정상화 모임으로부터 견제를 받던 당시 기자협회장에게 (송수신 기록)사진을 받았다. 피조사인이 조사를 받으러 왔을 때 '기자협회장이 보낸 메일은 열어보셨네요'라고 물었는데, 이걸 '이메일 사찰'로 주장하는 것"이라며 "결국 진미위 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악의적인 시비걸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KBS진미위는 최근 법원이 진미위의 징계 권고와 징계 요구 등에 관련된 운영규정 조항에 대해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오늘 법원에 이의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효력 정지 조항에 대한 법률검토 결과 운영규정 상의 징계권고 규정은 취업규칙에 해당하지 않거나, 설사 취업규칙이라고 해도 새로운 징계사유나 절차를 규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위반은 아니라는 게 진미위 설명이다. 진미위는 법원이 효력정지 결정을 내린 '징계권고' 부분 이외에 진상규명 등의 활동은 변함없이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조사 의지를 내비쳤다.

정필모 진미위 위원장은 "4개월동안 6건을 조사했는데 6건에서 드러난 것만 가지고도 조사대상이 된 분들이 어떤 일을 저질러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편성규약 위반은 물론 부당징계, 부당인사 등의 일들이 벌어졌다"며 "정확한 조사로 기록을 남기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KBS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호소하고 싶다. 이제는 잘못된 역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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