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올림픽 출전 사상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면서 대한민국 스포츠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됐던 베이징 올림픽이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숱한 명장면들을 연출해 내면서 지금도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합니다.
그 당시 활약했던 영웅 한 명 한 명의 얼굴 역시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수영 박태환, 역도 장미란, 사재혁, 배드민턴 이용대, 유도 최민호, 왕기춘, 사격 진종오, 펜싱 남현희, 태권도 임수정 등은 지금도 각 종목의 간판으로 활약하면서 세계선수권 같은 대회에서 위상을 알리고, 또 앞으로 있을 아시안게임 또는 2년 뒤에 있을 런던올림픽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올림픽의 영웅'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다수가 최근 이런저런 시련을 겪으면서 힘든 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최고의 순간을 달리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 열리는 세계 역도 선수권에서 전무후무한 5연패에 도전하는 장미란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미란은 지난 1월, 소속팀인 고양 지역 내에서 추돌사고를 당했는데 이 때 경미하게 다친 줄 알았던 허리가 예상 외로 오랫동안 말썽을 일으키면서 한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세계선수권을 앞두고서도 몇 주 전에야 제대로 바벨을 잡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장미란은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는 데서 내가 빠지면 한 장을 잃기 때문에 꼭 찾아와야 한다"면서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번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5연패에 대해서는 코칭스태프 내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여서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장미란은 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남자 역도 간판 사재혁과 여자 경량급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윤진희는 부상으로 이번 대회 뿐 아니라 아시안게임 출전도 하지 않는 '큰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수술까지 받으면서 당분간은 바벨을 잡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재활 후에도 정상급 실력을 보여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힘든 순간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배드민턴의 '윙크 보이' 이용대도 요즘 썩 좋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따라다녔던 팔꿈치 통증이 악화되면서 올해 국제 대회 출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재활을 위해 노력했던 이용대는 최근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중반에 탈락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함을 보였습니다. 이용대의 혼합 복식 파트너이자 역시 금메달리스트인 이효정도 허리, 발목 등 잇따른 부상으로 올림픽 이후 이렇다 할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이자 현 세계 1위인 임수정도 무릎 연골판,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당분간 얼굴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다보니 2달 뒤에 있을 아시안게임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부진한 성적을 내면 결과만 갖고 평가할 사람들의 시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정에서 이런 시련을 이겨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무대에서 좋은 성적 또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좋겠지만 중간중간에 나오는 단순한 결과에만 일희일비해서 '올림픽 영웅'들을 폄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이제는 이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바뀔 때가 됐는데도 획기적으로 바뀌기에는 아직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보니 조금은 안타까운 게 사실입니다. 물론 선수들은 그런 만큼 더욱 이를 악물고 나중에 결과로 모든 걸 보여주면 되겠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유연하고 길게 내다보면서 지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다수의 우리 영웅들은 한국 스포츠의 새 세대를 대표하는 면에서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세계의 벽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며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 영웅들이 앞으로도 잘 해야 다음 세대의 또다른 젊은 우수한 선수들이 계속 해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2008년 영웅의 한 축이었던 '마린 보이' 박태환이 지난 해 시련을 딛고 올해 다시 일어섰듯이 다른 선수들도 서서히 재기를 향한 구슬땀을 흘리면서 훗날 나란히 2008년의 감동을 또 한 번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이라도 많은 팬들은 충분히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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