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지난 2월 2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은 없었다'며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당시 조선일보는 이를 옹호하는 보도와 사설을 게재한 바 있으며 이에 대해 '자기 부정'이라는 내부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박준동)은 12일 발행한 노보에서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을 '정경유착 굴레서 풀려났다' 등으로 보도한 자사를 비판하는 공정보도위원회 발제문을 공개했다. 조선일보 노조는 당시 해당 발제문 작성해 조선일보 주필과 편집국장에게 전달했으나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며 "언론이 스스로를 자기부정하는 사례로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소통이 안되는 상명하복 구조에서 공론화는 노조의 유일한 방책"이라고 발제문 공개 취지를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2심 판결 다음 날인 지난 2월 6일 <이재용 '정경유착 굴레'서 풀려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게재했다. 이어 같은 날 사설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에서 조선일보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마음속 청탁'을 발견했다는 것은 다시는 있어선 안 될 판결"이라고 비판하고, 이 부회장을 정치 특검의 '희생양'으로 서술하며 2심 판결을 옹호했다.

조선일보 2018년 2월 6일자 1면 <이재용 '정경유착 굴레'서 풀려났다>와 사설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

당시 조선일보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해도 공무원 부패에 조력해선 안 된다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며 뇌물죄 유죄를 선고한 2심 재판부에 대해서도 "말은 맞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이 부회장을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노조는 "이재용 2심 판결 다음날 1면 제목은 판결을 곧이곧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36억 횡령과 뇌물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걸맞는 제목은 아니라고 본다"며 "이날 유력 신문 1면 제목 중 가장 이재용에게 우호적인 제목이었다는 반응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는 "기사는 판결을 스트레이트로 서술했을 뿐인데 제목이 이렇게 나간 걸 보면 편집방침이 '이재용 무죄'인 것 같다. 사설도 '이재용은 피해자'라는 입장"이라며 "본지 인터뷰에서 판사가 밝힌 것처럼 겁박을 받았더라도 30억 넘는 뇌물을 준 사람을 집행유예로 석방하는 것은 충분히 비판의 여지가 있는 논쟁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 본지는 전혀 언급이 없고, 풀어주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조는 조선일보가 '경영 승계가 없었다'며 2심 판결을 옹호하는 것은 "언론이 기존에 보도한 내용을 깡그리 부정하는 논리"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2심 재판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대담하게 주장했다. 모든 언론이 당시 경영권 승계 관련으로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분석 기사를 썼는데 졸지에 오보를 한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조선일보도 타 언론사와 함께 '이재용 삼성 체제'가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다는 분석 기사를 내놓은 바 있다.

조선일보는 2015년 5월 27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재용 삼성 체제' 마무리 단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재계에서는 이번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개편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번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법인→삼성생명·삼성전자→나머지 계열사' 식으로 단순해지면서 순환출자 방식의 지배구조가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심근 경색으로 쓰러져 1년 넘게 의식 불명 상태였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이재용의 삼성그룹'으로 만들기 위한 큰 틀을 완성했다"는 것이 조선일보의 분석이었다.

조선일보 2015년 6월 9일 <"변칙 승계 등 한국적 경영관행이 화 불러" 분석… "경영권 보호장치 없는 상황 고려해야" 반론도>

조선일보는 2015년 6월 9일 <"변칙 승계 등 한국적 경영관행이 화 불러" 분석… "경영권 보호장치 없는 상황 고려해야" 반론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물산의 지분을 대거 매입해 제일모직과의 합병 반대를 선언한 '엘리엇매니지먼트' 소식을 전하며 한국 대표 기업들이 '총수의 전횡', '기업의 변칙 승계' 등 '한국적 경영 관행'을 이유로 외국인 주주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당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내건 합병 반대 명분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1:0.35)였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재계는 이들의 핵심 공격 포인트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24%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에 삼성물산을 싸게 안겨 줌으로써 이재용 부회장의 기업 승계를 도우려 한다'는 사실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은 없었다"는 2심 재판부의 판결은 과거 언론 전반의 분석과 대조를 이루는데, 해당 판결을 옹호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자기 부정'이라는 게 노조의 지적이다. 노조는 "이런 부분도 사실 기사에서 반대쪽 시각을 담아 균형을 맞출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이 이번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데도 우리 신문은 다루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괴리를 메울 설명도 부족해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노조는 "설사 이재용이 법리적으로 무죄라고 해도 언론만큼은 비판받을 부분은 지적했어야 한다. 우리 독자 중에서도 삼성과 이재용이 피해자라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삼성의 광고 비중이 상당하지만 무조건 감싸기만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언론이 비판해야할 권력은 행정부 권력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다음 발행될 노보에서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옹호한 조선일보에 대해 비판한 공정보도위원회 발제문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지난 7월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 논란과 관련해 수사를 지시하자 <탄핵 찬반 세력 국가 전복 상황 때 군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사설을 게재해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검토 문건을 두고 '쿠데타' 운운하는 것은 적폐 청산을 이어가려는 목적은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군의 입장에선 국가 전복·마비 상황이 실제 벌어질 경우에 대비한 비상 계획과 법적 절차 등을 검토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수 있다"고 옹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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