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사업가 백종원 씨가 국정감사장에 등장한 장면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소박한 태도로 ‘간편 레시피’를 가르쳐 주던 인물이 성공한 사업가라는 본질을 드러내는 장면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장에 끌려나온 증인이나 참고인은 대개 아무 죄가 없어도 죄인처럼 굴기 마련이지만 백종원 씨는 당당한 태도로 거침없이 발언했다.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의원들은 외식업이 아니 사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비춰졌다. 일부 언론은 자유한국당 의원이 섣불리 백종원 씨의 흠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반격을 당한 것처럼 묘사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백종원 씨의 태도를 통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백종원 씨가 했다는 말에 크게 틀린 얘기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백종원 씨는 사람들이 외식업에 너무 쉽게 뛰어드는 게 문제라면서 인구 대비 점포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신을 비롯한 대형프랜차이즈가 영세자영업자를 죽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살리고 있다면서 골목상권과 ‘먹자골목’을 구분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본점과 가맹점 어느 한 쪽의 양보를 통한 상생은 유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도태되어야 할 자영업자는 시장원리에 따라 도태되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백종원 씨의 이런 주장을 경청한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일반음식점 또는 휴게음식점의 영업 신고 절차를 어렵게 만들어야 할까? 현재 음식점의 영업 신고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건축물의 일정한 법적 요건 충족과 안전 및 위생과 관련한 절차를 거치는 것 정도이다. 백종원 씨의 평소 활동에 비추어 볼 때 이제는 조리기능사 자격증이라도 추가로 요구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아마도 이런 조치는 풍선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고용 상황이 좋지 않은 탓에 자영업 자체 수요가 줄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외식업계가 포화상태인 것은 단순히 말해 여러 자영업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쉬워 보인다는 게 이유일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과다한 노동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조건에서 외식업의 수요는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대다수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음식에 돈을 쓸 여력이 없다. 음식의 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렴하고 푸짐한 한 끼, 즉 ‘가격 대 성능비’가 먼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종원 씨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종종 강조하는 음식 그 자체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중요시되지 않는다. 대다수 저가 식당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편의점 간편식이다. ‘혼밥’을 자폐니 동물이니 하며 사회적 문제처럼 말하는, 그래서 식당에 혼자 간 경험이 무용담이 되고 이 방법을 SNS에 물어봐야 하는 풍토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조건이 백종원 씨로 대표되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성공 비결이기도 할 것이다. 미식을 추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격 대 성능비’로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팔면서 매장을 유지 가능하게 만드는 모델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걸 백종원 씨는 국정감사장에서 학원과 과외에 비유했다. 연장선에서 말하자면 애초에 가난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한 아르바이트를 동원해 저가에 학원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식사업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이사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가난한 사람도 맛있고 안전하면서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는 식생활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그래서 과거 진보진영과 시민단체는 친환경무상급식운동에 주력했다. 이 성과로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은 시대정신이 되었다. 일부에선 또 다른 대안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이어주는 협동조합이나 로컬푸드 운동에 주목하기도 한다. 이런 대안들은 한계가 명확하지만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할 기회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백종원 씨의 사업모델로는 돈 없는 사람들의 식생활 개선에 기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백종원 씨가 특별히 악독한 자본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에선 정해진 운명에 가깝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백종원 씨의 사업모델은 모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극단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 대목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을 하는 사람이 모험을 감수해야 할 무슨 이유가 있느냐는 반론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얘기다. 왜 백종원 씨에게 서민의 식생활 개선을 책임지라고 해야 하나? 자본가가 괜한 모험을 감수해 고용돼있는 노동자와 주주들에게 입지 않아도 될 해를 입힐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검증된 사업모델을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이 얘길 하는 것은 그럼에도 기업가의 자율성을 보장하면 기술혁신이 되고 새로운 성장동력이 만들어지며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의 진보가 달성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혁신성장과 규제완화를 외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 9월 5일 늦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기업가정신을 북돋는 데 더 중점을 두어야겠다”면서 “이것이 혁신성장의 중요한 요체 중 하나”라고 했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의료분야 규제완화를 약속하고 최태원 SK 회장을 만나 개인정보 규제완화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면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내 여기서 나오는 이윤으로 고용이 창출되고 중소기업이 살아나며 사회 전반에 활기가 돌 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의 반기업 정서에 기댄 선입견은 재벌들이 오직 돈이 될 때만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믿게 한다. 이런 믿음을 깨기 위해서는 국회가 백종원 씨를 불러서 골목상권이나 프랜차이즈 문제가 아니라 음식과 맛의 본질에 대해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친일파로 공공의 적이 된 황교익 씨를 백종원 씨가 본인 브랜드의 음식으로 감동시키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더라면 경제신문 등 보수언론과 관료들이 목을 놓아 외치는 혁신성장의 대의를 믿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대로라면 백종원 씨가 규제완화의 혜택을 받아 할랄푸드 메뉴를 개발하든 탄두리 치킨을 하든 간에 우리는 비슷한 수준의 음식을 먹게 될 뿐이다.

재벌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은 딱 하나, 사회적 압력이다. 혁신성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실질적으로 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실질적 내용은 아직 잘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고용지표의 둔화로 통치 동력은 유실되고 관료와 기업 의존도는 계속 커지고 있다. 이제 시간이 없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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