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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과 스리랑카인이 범인인가또다시 예고된 인재? … 비효율 감수하며 안전에 투자하는 사회, 어떻게 만들 것인가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10.10 09:06

지난 7일 때 아닌 긴급재난문자를 받았다. 고양시 저유소에서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연기가 서울 서북지역에서도 똑똑히 보일 정도였다. 날씨가 좋아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배경에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초현실적 감각은 다음날 스리랑카 국적의 외국인이 긴급 체포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풍등 하나 때문에 그 난리가 났다는데 황당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황당함을 일부 전문가는 확률의 문제로 설명한다. “홀인원 한 상태에서 골프공 꺼낼 때 또 번개에 맞을 정도로 확률이 굉장히 낮은 일”이 일어났다는 거다.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표현으로 하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이다.

매우 낮은 확률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행횟수를 늘리는 게 답이다. 어떤 안전사고가 완전한 우연에 의해 일어났다면 그 이전에 ‘불완전한 우연’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사고의 직전까지 이른 상황이 반복돼왔기 때문에 실제 대형사고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 겹쳐진 우연적 요소들에서 ‘스리랑카인’과 ‘풍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연 얼마나 될까? 초점을 이들에 맞추면 사고는 확률의 문제가 되지만 우연을 가능케 한 또 다른 요인들로 시선을 옮기면 사고는 인재(人災)이며 구조적 문제가 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인재를 만든 구조적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화재감지기는 애초에 없었고 감시를 전담하는 사람이 없는 CCTV는 무용지물이었다. 저유고 주변은 불이 붙을 수 있는 풀밭이었고 유증기 회수 장치는 비용의 문제로 설치되지 않았으며 인근의 주민들은 언제든 풍등 날리기 행사를 할 수 있는 조건에 있었다. 이렇게 보면 풍등과 스리랑카인은 마치 재난을 맞이하는 파티에 그저 초대된 손님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마치 이런 일은 범인이 따로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태도로 언론대응과 구속영장 청구 요청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그 결과 10일 오전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지금 이대로는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인의 행위가 죄가 된다면 당연히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풍등과 스리랑카인을 제외한 나머지 ‘우연적 요소’들이 왜 어떻게 존재하며 또 유지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기왕이 이렇게 됐으니 수사기관이 이 부분에 더 집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안전은 결국 비용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한송유관공사의 지분구조까지 논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한송유관공사는 민관이 합작해 설립한 공기업이었지만 2001년 김대중 정권이 정책적으로 추진한 바에 의하여 민영화됐고 현재는 SK그룹 계열사이다. 당시 공기업 민영화의 명분은 시장원리에 따른 효율성 제고였다. 이렇게 보면 대한송유관공사가 안전에 투자를 소홀히 한 것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규제완화라는 선물을 안겨 주는 게 아니라 안전 문제의 해결을 강제하는 게 지금 정부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7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볼만한 문제는 대한송유관공사가 민영화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경영 전반에서의 효율성 제고는 공기업도 마찬가지로 요구받고 있다. 효율성 문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중요한 기준처럼 언급된다.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사람을 더 적게 쓰고 부채규모를 줄이고 흑자구조를 늘리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사고의 방지를 위해서는 화재감지기 등 장비의 문제도 보완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인력을 더 확충해야 한다. 또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한 매뉴얼 마련과 주기적인 대응 훈련 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들의 인식 수준에서 ‘철밥통’으로 불리며 비효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공기업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도 믿기는 어렵다.

선진국을 추격하는 방식으로 고도성장을 이뤄온 나라답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비효율을 야기하는 원리원칙에 대한 경멸은 사회의 거의 모든 곳에서 드러난다. 쓸데가 없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은 인터넷에 전시될 때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실제 삶을 함께 할 때에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실패’가 곧 죽음이자 퇴출이 되는 사회상에서 이런 경향은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을 매개로 해 더욱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한 암호화폐 투자자의 “5천만원은 있어도 흙수저, 없어도 흙수저”라는 말을 둘러싼 논란이 보여주는 사실도 이런 것들이다. 오직 자산가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비법인 사회에서 ‘정직한 월급’ 따위의 이상은 있지도 않거니와 자산의 형성과 축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비효율을 감수하며 안전에 자원을 투입하는 걸 사회적 상식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안전대진단 등의 활동이 있긴 하지만 실제 개선되는 것이 많지 않아 보여주기식 행사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안전대진단의 대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이미 몇 차례나 보도된 바 있다.

왜 안전대진단은 사고를 막지 못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정치의 근본 문제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안전과 효율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집권세력이 강한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정치적 행위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효율성을 포기해도 실패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공감대를 만드는 것보다는 스리랑카인에게 테러의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입씨름하게 만드는 정치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뿐이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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