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뭐 다들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언에 대한 보수야당의 반응 얘기다. 이해찬 대표가 10.4선언 기념행사를 위해 방북한 자리에서 국가보안법과 장기집권에 대해 언급한 게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해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남북이 종전에서 평화체제로 가려면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 “정권을 뺏기면 (남북교류를) 못하게 되기에 살아있는 한 절대 안 빼앗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 보수야당은 이를 놓고 “남로당 박헌영”까지 언급하며 공격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이해찬 대표 말이 틀린 건 없다. 국가보안법의 전제는 남북이 서로 인정하지 않는 체제 그 자체이다. 때문에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당연히 국가보안법의 존폐를 논해야 한다. ‘간첩’은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형법상의 조항으로 충분히 검거할 수 있다는 게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의 논리다. 따라서 이 발언을 갖고 사회주의 혁명이나 남로당이니 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오버’다. 또 더불어민주당의 항변대로 여당 대표가 재집권 의지를 밝힌 게 국민 무시나 독재 시도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더 생각해볼 것은 남북관계와는 별개로 국가보안법 자체에 독소조항이 있다는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다. 찬양 고무 등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애매한 조항 탓에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꼬투리를 잡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이 그간 폐해로 지적돼온 게 사실이다. 북한을 비하하는 농담을 지속적으로 작성해 온 어느 트위터 이용자가 우리민족끼리 계정 트윗을 리트윗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건은 국가보안법의 본질적 문제를 보여준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만일 북미대화가 기대한대로 진척되지 않아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기로 들어가게 된다면 국가보안법은 현재의 상태로 유지되는 것일까? 이해찬 대표가 꼭 그런 취지로 발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권의 ‘개혁’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이해찬 대표는 20년 집권론도 말하고 30년 집권론도 말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오랫동안 집권하고 싶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권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제대로 된 철학을 갖고 있다면 장기집권의 긍정적 효과를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핵심은 얼마나 오랫동안 집권을 하겠다는 것인지 보다는 그렇게 오래 집권해서 과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상황은 ‘무엇을 하겠다’는 대목에서 점점 불분명해지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 2일엔 중앙 범위를 결정하고 지방이 확정하는 일본식 모델을 언급했다. 최근 취임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를 거들고 있다. 27일 취임하자마자 업종별로 최저임금이 미친 영향 실태조사를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상태지만 최저임금이 경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현실 인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저임금을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적용하면 애초 제도의 취지는 퇴색된다. 차등적용을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은 국토의 넓이나 지역경제권 구성 등이 우리와는 다른 원리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적용 할 경우 도농격차 등의 심화로 부작용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최저임금을 어쩌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과는 달리 기업을 향한 정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또다시 은산분리에 대한 시민단체 등의 태도를 비판했다. “왜 2002년도에 만들어진 현행 은행법상의 은산분리 규제를 단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는 금과옥조라고 생각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도한 금융규제의 문제를 강조하며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과장된 표현이지만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보다도 경쟁력이 낮다. 이런 현실을 초래하게 된 원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주장은 금융산업발전론자들이 늘 내놓는 논리의 반복이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는 우간다를 말하는데, 지난 2015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금융성숙도 조사 결과가 이 주장의 근거이다. 당시 한국은 조사대상 국가 중 87위를 기록해 81위의 우간다에 뒤쳐졌다. 같은 조사에서 르완다는 28위, 프랑스는 29위를 기록했는데 여기까지 본다면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할만 하다. 이 조사는 자국 기업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국가 간 비교는 적합지 않다. 금융시장성숙도 조사라기보다는 해당 국가 기업의 금융에 대한 불만도를 설문조사한 것에 가깝다. “과장된 표현”이라는 단서를 붙이더라도 이런 식으로 인용할 얘기가 아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SK하이닉스 청주공장을 방문해 최태원 회장을 격려하고 규제완화에 대한 소신과 의지를 밝혔다. 최태원 회장은 개인정보 보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8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미중무역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술 인수합병 강화와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정부는 사모펀드 규제 완화 역시 추진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앞서 발언까지 종합하면 ‘큰 그림’이 그려진다.

구조조정을 동반하는 금융 중심의 발전 전략이 불가피하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도만이라도 해야 한다. 복지제도 등 사회안전망 강화와 이를 위해 필요한 증세 논의는 전혀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지경인데 정부 관계자들은 실체도 불분명한 혁신성장의 필요성만을 이런 저런 논리를 들어 강조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20년 집권을 한들 무엇이 바뀌겠나. 이상주의적 수사로 스스로를 포장하면서 정작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정치는 오직 실리만을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반동형성을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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