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연장 첫 회는 미시적으로 볼 때 실패였다. 무엇보다 연장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했고, 세자와 연잉군의 우애를 강조키 위해 투자한 많은 노력들이 아름답기는 했지만 인현왕후의 죽음 이후 급박한 권력암투의 상황과 겉돌았다. 더욱이 인형왕후의 국상도 생략하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숙의 동이의 숙빈 책봉식마저도 간단히 처리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화려하게 그려낸 세자의 궐 밖 미행은 불만스럽기까지 했다.

분명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만 인현왕후에 쌓인 시청자의 애정을 배려하지 않은 독주였다. 51회 답교놀이와 풍등 날리기를 보면서 느낀 점은 옛 풍습을 잘 재연했다라든지, 저 시절에 풍등이 있기나 했냐는 의문 따위가 아니었다. 저만한 투자라면 차라리 인현의 국상을 그리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았을까 하는 불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인현왕후의 죽음에 재나 뿌린 뽕짝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하늘마저 돕지 않아 비가 쏟아지는 상황이 분명한데도 제작진은 ‘이건 비가 아니다’라고 애써 우기는 웃지 못 할 촌극을 빚어내고 있다. 비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태연하게 옷감을 팔고 있는 아낙이나 그 뒤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행인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당패 장면에서 여자에게 수염만 붙인 점은 오히려 애교로 보아 넘길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 이런 정도는 옥에 티라고도 할 수 없는 소소한 것들이다.

연장으로 돌입한 동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사극의 피할 수 없는 스포일러를 거스르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에 따르면 인현왕후의 사후 2개월 만에 장희빈은 사약을 받는다. 독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판에 박힌 장희빈의 사사 장면은 그동안 대한민국 사극을 통해서 힘 있는 한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동이는 역사의 시점을 어겨가며 장희빈의 죽음을 미룬 채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것은 느닷없는 동이의 화해제안과 장희빈의 갈등이었다. 인현의 죽음과 실질적인 관련여부는 지금으로서는 따질 수 없겠지만 당시로서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방자의 증험들을 너무 쉽게 주고받는 장면들은 역사의 재해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증험을 장희빈이 없앴으면 몰라도 당당히 동이에게 돌려주고 말았기 때문에 결국 무고의 옥으로 가긴 가되 시간만 지체했을 뿐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아무리 장희빈이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고 할지라도 그 증험을 돌려준다는 것은 애초에 동이가 화해의 뜻을 표한 것보다 훨씬 더 현실감도 개연성도 없는 행동에 불과하다. 그런 무모한 행동의 배후에 연잉군을 확실하게 보낼 외통수라도 가졌다면 혹시 모를까 장희빈이 방자의 증험을 돌려준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52회에 뭔가 대단한 것을 터뜨리지 않는 한 동이와 장희빈의 증험 주고받기는 비난을 받고 말 것이다. 또한 그래야 마땅하다.

무고의 옥은 단지 장희빈만의 죽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장희빈의 정치적 배경인 남인 세력의 몰락을 의미한다. 무고의 옥으로 인해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남구만, 유상운, 최석정 등 소론의 중요인물들까지 귀양을 가거나 파면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는 이미 두 달이 지나고도 한 참이 되었는데 무고의 옥은커녕 오히려 연잉군에 대한 하찮은 위기만 오락가락하고 있다.

드라마가 역사의 틀 속에 갇혀있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과 새로운 해석의 장이라는 것까지는 동의할 수 있다. 특히나 동이를 즐겨보는 시청자들에게 이 픽션의 자유는 암묵적인 합의가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기에 의심해볼 여지는 충분하다 할지라도 너무도 명백한 사실에 대한 비틀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현재로서 장희빈의 죽음을 미룬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할 지 짐작하기 어렵다.

현재로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영조의 경종 독살설에 대한 작가의 갈등이 큰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동이의 일대기를 그리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목적이지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죽음 이후 몇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영조의 즉위로 넘어가지 않고는 연장의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그러지 못하고 아직도 장희빈이 살아있는 것은 장희빈이 죽고 난 후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이미 자의건 타의건 인현왕후의 죽음도, 동이의 숙빈 책봉도 가볍게 처리하면서까지 세자와 연잉군의 우애를 강조하는데 집중 투자를 한 이상 앞으로의 진행은 거의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더 이상 장희빈의 죽음을 질질 끌 수도 없는 것이고 결국 경종 즉위 이후 연잉군이 임금에 오르는 과정에서 두 형제의 갈등을 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독살설의 채용이건 혹은 다른 무엇이건 51화의 아름다운 형제애는 그것을 위한 복선이라고 보인다.

실제로 경종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만 즉위 1년 만에 연잉군을 왕세자로 임명하게 되고 곧이어 대리청정이라는 굴욕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형제애는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 이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기대해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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