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개국 당시 윤세영 회장은 '보도국'의 위상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들었다. ‘구색을 맞추는 정도’라고 하면 과한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업성을 중심으로 방송에 접근하려던 의도에 비해 ‘저널리즘’을 정립하려는 의지는 약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윤세영 회장이 출국을 위해 공항을 찾았다고 한다. 사업차 출국이 잦았겠지만 그날 공항 경험은 매우 강렬해 방송사에 대한 그의 인식을 많이 바꾸었다고 한다. 대단히 특별한 경험은 아니었다. SBS 회장 윤세영의 출국과 태영건설 회장 윤세영의 출국이 사뭇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정도였다고 한다.

보통, 언론은 공항에 출입 기자를 둔다. 출입 기자만 해도 공항에서의 대우가 일반인과 다르다. 그런데 출입 기자를 고용한 사주라면 공항 입장에선 상상 그 이상의 힘을 갖는다. 방송사는 언제든 취재를 통해 공항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 공항에서의 경험을 통해 윤세영 회장은 드라마나 예능이 돈을 벌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위상과 힘은 보도에서 나온다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진리를 깨쳤다고 한다.

▲ 지난 10일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 직후 KBS의 전 모 기자가 최문순 의원에게 항의하며 고성을 지르자 최 의원 보좌진을 비롯한 민주당 보좌진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문순 의원 블로그
지난 10일 KBS 정치부의 전 모 기자는 민주당 최문순 의원을 향해 “X만한 새끼”라는 욕설을 하고, 상임위 회의장 앞에서 “도저히 못 참아, 최문순 나오라 그래”라고 고함을 지르는 일이 벌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최문순 의원이 “KBS를 지나치게 깎아 내린 것에 화가 났다”고 한다.

이날, 최문순 의원은 국회에 출석한 KBS 김인규 사장을 향해 “KBS 기자들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와 있냐”, “사장이 국회에 왔다고 기자들을 부른 것 아니냐”, “(김인규 사장이)기자들을 사병처럼 부렸던 것이 한 두 번 아닌데, 이건 군사정권 때나 하던 짓이다” 등의 추궁을 했다.

KBS 전 모기자의 감정 상태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개인은 자신의 소양과 인격의 정도에 따라 행동할 뿐이고, 그에 대한 응당한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면 또 마땅히 져야 할 것이다. 당일, 최문순 의원의 질의는 있는 그대로를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는 유난히 KBS 기자들이 많았다. 일단, 기자가 직접 본 KBS ENG카메라는 2대였다. 최문순 의원실에 따르면, KBS 소속 기자들이 현장에 10여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최문순 의원의 발언을 두고 민주당 소속 보좌관들과 육박전을 감행한 KBS 기자들은 이후 민주당 원내대표실을 ‘항의 방문’했다고 한다. 민주당 보좌관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어떻게 보좌관이 기자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욕을 할 수 있느냐”며 따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세상의 상식은 “어떻게 기자가 국회의원을 향해 욕설을 하고 몸으로 덤빌 수 있는가” 개탄하는 것인데 KBS 기자들의 상식은 그 반대이니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멘트를 빌자면 아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뿐이다.

방송사 사장이 방송국 로고가 박힌 카메라를 대동하고 다닌다면 못할 게 없다. 앞서 보도의 기능에 대해 말하기도 했지만, ‘사회적 협박과 허세’를 부리기에 방송사 카메라만한 것이 없다. 민주당이 소속 의원이 봉변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KBS에 항의하지 않는 이유에는 그 카메라가 자신들에게 칼이 될 수 있다는 일말의 망설임도 분명 있을 것이다.

KBS 기자들의 행태는 지난 1999년 보광그룹 탈세 사건으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검찰에 출두했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 때, 중앙일보 기자들은 검찰 청사 앞에 일렬로 서서 “홍 사장 힘 내세요”라고 외쳤다. 상대가 검찰이 아닌 국회의원으로 바뀌어 표현의 강도가 좀 적나라해졌다는 차이 이외엔 충성을 표현하는 방식과 외침은 기본적으로 똑같다.

중앙일보는 사주가 있는 그리고 취사선택이 가능한 매체다. 그러나 KBS는 공영방송이고, 스스로 KBS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떠드는 매체이다.

자신의 곤란함에 쌍소리로 화답해준 전 모기자의 활극을 통해 김인규 사장이 보도국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됐을까? 김인규 사장에게 KBS의 사회적 위상과 힘이란 국회에 카메라를 대동하고 나타나 수가 틀어지면 뒷골목 조직 수준의 의리를 과시하며 행패를 부리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인지 궁금하고 또 궁금할 뿐이다.

한 선배는 이번 사건을 두고 ‘이러니 신문사들이 기를 쓰고 방송을 하려는 것 아니겠냐’고 냉소했다. 어떤 사주들은 김인규 사장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도 행동대장이 되어 줄 또 다른 전 모 기자들이 널려있지만 단지 카메라가 없을 뿐이라고 아쉬워할 지도 모를 일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민주당에 항의방문을 갔다는 KBS 기자들의 패악을 보며 또 이를 제대로 꾸짖지 않는 언론계의 관대한 풍토를 보며 그저 참담할 뿐이다. 작금의 KBS, 도저히 못 참아 주겠다.

KBS가 민주당 모 보좌관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KBS에는 미디어비평이라는 언론 문제를 다루는 시사프로그램이 있다. 미디어비평에서 시시비비를 다뤄 볼만한 사건으로 이번 KBS기자의 최문순 의원 욕설 파문을 추천한다.

참 민주당이 이번에도 가만히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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